수산부업은 군 간부 돈 주머니 불리기 > 인권전문가 논단

본문 바로가기

인권전문가논단

수산부업은 군 간부 돈 주머니 불리기

profile_image
청송
2010-07-31 11:25 3,604 0

본문

수산부업은 군 간부 돈주머니 불리기

인민군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군사복무 10년을 거슬러 가노라면 추억도 많고 후배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도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인민군대에서 벌이는 수산부업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인민군에서는 군인들의 물질생활수준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부대 단위로 부업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부대기 농사에서 가축, 온실, 양어, 수산업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부업이 있지요.

1987년도에 인민군적으로 외화벌이 기관들이 대대적으로 세워지던 때와 비슷하게 우리 사단도 수산부업 허가를 받고 황해남도 옹진군 남해리 사곳이라는 곳에 수산부업기지를 꾸렸습니다. 옹진군 사곳이라는 곳은 2차례의 서해교전이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국가보위부, 보안성, 호위사령부를 비롯한 특수기관 외화벌이 사업소들이 빼곡히 들어 앉아 ‘고기보다 사람이 더 많다’는 소리가 나오지만, 당시에는 군부 산하 수산기지는 우리 사단을 포함해 3개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연대는 물론 대대까지 자체 수산부업을 하고 있지만 내가 있던 80년대까지만 해도 사단, 여단급 부대들만 수산부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부업조에 망라되려고 군인들은 난리입니다. 왜냐면 북한에서는 물고기를 잡으면 최소한 배고픈 걱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수산 부업조에 망라되었는데, 86년도 서해갑문 건설에 동원되었을 때 약간의 잠수기술을 배운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물속 깊이 25m에 들어가서 해삼과 생복을 땄습니다. 우리가 사용한 잠수기는 배에 설치된 펌프 공기압축기로 산소를 생산해서 고무 호수를 통해 잠수공에게 보내주는 중국식 잠수기였습니다. 우리 수산부업조는 병기공급장을 포함해 모두 9명이었는데 5명이 잠수공이었습니다.

부업조는 먹기는 괜찮게 먹는데 고생도 많았습니다. 해삼과 생복을 따기 위해 하루에 5~6번씩 물속에 들어가 망태기에 부지런히 잡아넣습니다. 한번 들어가서 보통 1시간 40분에서 2시간가량 있는데, 하루에 10시간가량 물속에 들어가 있자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잠수이야기를 하자니 나와 잠수를 하던 강명호라는 친구 생각이 납니다. 그는 50m 수심에 들어가 잠수를 하다가 방광이 마비되면서 남자구실을 영원히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남보다 일을 많이 해서 빨리 입당해서 대학에도 가겠다던 친구였는데, 잠수를 많이 해서 질소중독성 질병에 걸려 그만 고환이 터지게 됐습니다. 수심 10m씩 내려갈 때마다 수압은 대기압보다 1기압씩 올라가는데 고환이 수축되면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그가 병에 걸려 영예군인 1급 진단을 받고 입당도 하고 갔지만, 아무리 입당을 하고 영예군인이 된들 그의 일생은 버린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그럼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잡은 물고기들이 어디로 갈까요?

우리는 잠수해서 해삼과 생복을 땄고, 그물을 쳐서 전어와 꽁치, 꽃게잡이도 하고 조개도 캤습니다. 이렇게 잡은 해삼과 생복, 대합조개들은 군부 산하 외화벌이 기관에서 걷어갔고, 그물로 잡은 공치와 전어 등은 소금을 쳐서 말리었다가 부대에 올려가곤 했습니다.

 

그때 생산물은 지금에 비하면 정말 많았습니다. 한번 잠수해서 70kg짜리 망태기에 해삼을 가득 채울 정도였으니까 돈으로 계산하면 굉장한 가치입니다. 하긴 그때 우리가 잠수하던 지역은 군부대 위수구역이기 때문에 사민들이 절대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사단 후방부에서는 열흘이 멀다하게 차를 내려 보냅니다.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성어 철에는 2~3일에 한 번씩 내려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꾸 올려 보냈는데도 내가 어쩌다 부대에 들어가면 대원들이 물고기를 좀 먹자고 성화입니다. 진짜 말을 들어보니 대원들은 명절날에야 물고기 대가리 구경이나 하고 여느 날에는 국물도 먹지 못합니다. 우리가 생산한 수산물을 모두 군관들이 나눠가지고 인민무력부에 뇌물로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정일이 우리 사단 정찰 대대를 방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정찰 대대 창고에는 우리가 올려 보낸 말린 물고기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관은 김정일이 잘 꾸려진 대대후방시설과 창고에 쌓여 있는 물고기를 보면서 군인들에게 후방공급을 잘해준다고 치하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왔다 간 다음 대대장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갔고, 정치지도원도 승진했습니다.

그때 수산부업에 참가 했던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모두 코웃음을 쳤습니다. 물론 그때는 허풍을 떠는 부대 간부들을 흉보았지요. 장군님을 속인다고요.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보니 김정일 자신은 군인들의 생활이 한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대 식당보다는 예술선전대를 먼저 찾고, 병실보다는 전호를 먼저 찾아갑니다.

 

내용보다는 형식을 더 좋아하고 속보다는 겉이 화려한데서 만족을 느끼는 사령관이었습니다. 최고 사령관이 이러니 지금도 먹지 못하고 10, 20대에 영양실조에 걸린 군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거기에 군관들도 허풍이 들어찼습니다. 김정일이 군부대 식당을 돌아볼 때는 음식이 가득한데, 그가 간 다음에는 염장무우와 나일론 국물이 차려집니다.

 

결국 우리부대에서 한다는 수산부업은 윗 간부들의 낯내기나 하고 사단, 군단 장성들의 돈주머니나 채워주는 노예노동이었습니다.

제가 남한에 와서 군부대 안보강연을 하면서 여기 군인들과 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많습니다. 여기 군인들이 먹는 식사 질은 북한군 사단장이 먹는 수준과 같습니다. 하전사들은 이밥을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돼지고기와 생선은 먹기 싫을 정도입니다. 오히려 고기보다는 야채를 더 선호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조국을 통일하겠다는 군대가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노동당에서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없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면서 아직도 실천하지 못하는데 사실 노동당이 바라는 사회가 남한이 아닌가 싶습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세월이 가면 통일도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때가면 북한의 군인들도 배고픔을 덜어버리고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는 그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럼 그날을 약속하며 오늘 시간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리춘남입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적용하기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게시판 전체검색
다크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