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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망처럼 덮여있는 보위부감시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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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2010-07-31 11:24 4,51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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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대를 뒤덮은 보위부 정보망

인민군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전 시간에 이어 북한 군대 내에 그물망처럼 덮여있는 보위부 감시체계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북한은 보위부와 보안서, 노동당 등 2중 3중의 감시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보위부 정보선이 아주 강합니다. 북한에서는 보위부 정보원을 ‘보위부 스파이’라고 하지요, 저는 1983년부터 근 10년 동안 군대 복무를 하면서 사단 보위부 비밀요원으로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같이 군사복무를 하고 한 가마 밥을 먹던 친구들에게 참으로 미안한 이야기지만, 당시 당에 충실하려고 했던 저의 철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제가 보위부 스파이 노릇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부터입니다. 언젠가는 하루 사단 보위부 지도원이 저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보위지도원은 저에게 이제부터 비밀사업을 하게 되었다는 서약서를 내놓고 지장을 누르라고 했습니다. 물론 제대될 때는 노동당에 입당시키고 상급학교에도 보내주겠다는 약속도 해주더군요. 보위지도원이 아마 저를 택한 것은 아버지가 당시 6군단에서 고급군관으로 있었고, 어머니는 모범당원인데다 삼촌도 큰 공장 부문당 비서를 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저의 임무는 함께 생활하는 군인들의 사상동향을 수집하여 그것을 종이쪽지에 적어 비밀장소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보위지도원과의 연락은 오직 쪽지로 하게 되었는데, 지령내용은 매일 내려오지 않지만, 보고는 매일 했습니다. 쪽지를 넣는 비밀 장소도 자주 바뀌는데 보통 저녁 점검시간 전까지 넣게 되었습니다.

보위지도원들은 아주 민첩합니다. 1990년 여름 언젠가 한번은 외부작업에 나갔다 온 적이 있었습니다. 피곤해서 종이쪽지를 비밀 장소에 넣지 못하고 잠을 자다가 1시경에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써서 넣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병실 앞에 있는 두 번째 평행봉대에 넣고 들어왔는데, 돌아와 누워 생각해보니 약속된 비밀 장소는 세 번째 평행봉 대였습니다. 다시 넣자고 생각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보니 쪽지가 없어졌습니다. 불과 20분도 안 되는 사이였습니다. 그때 잠자리로 들어오면서 나 자신도 감시를 받고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고 보위지도원들은 잠도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보위지도원의 지시 내용은 정치상학을 받으면 누구의 반응은 어떤가, 누구와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사람끼리 서로 친한지 등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대상에게 접근해서 유도질문을 해서 떠보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기 남조선 애들이 올림픽을 한다는데 그 놈들이 뭐 경기장이 그렇게 많아?” 이런 질문을 아무개에게 해보라는 지령이 떨어집니다. 만약 그가 얼결에라도 어떤 대답이 나오면 남조선 삐라나 방송을 몰래 보고 듣는 것으로 간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위부 스파이 노릇을 하는 과정에는 어처구니없는 곤욕을 치를 때도 있었습니다. 1990년 어느 날, 우리 대대에 비상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군관 사택 건설에 동원되었던 우리 분대가 황해남도의 한 농촌마을의 8호 돼지목장을 습격해 돼지를 잡아온 사건이 제기된 적 있습니다.

8호 농장은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김정일과 중앙의 고위간부들에게 올라가는 농산물이나 짐승을 생산하는 곳입니다. 그때 저의 분대가 훔쳐온 돼지는 40kg가량 되었습니다. 훔쳐가지고 오면서 좀 작다고 아쉬워했는데 돌아와 보니 8호 제품 돼지는 30~40kg짜리 돼지가 합격품이라고 합니다. 김정일과 중앙에 올라가는 돼지는 크고 늙은 돼지가 아니라 어린 돼지라는 사실을 그때에야 알았지요.

그때 그 일을 조직한 사람은 저의 분대장이었는데 평양사람이었습니다. 몸집이 우람차고 배짱도 있고, 자기 대원들에게 잘 대해주는 편이었죠. 분대장이 돼지를 습격하고 돌아와 분대원2명을 뽑아 갱도에 들어가 돼지고기를 손질하게 했습니다. 지금생각하면 치사한 일이지만, 나는 동료들이 돼지를 손질하는 동안 밖에 나가 쪽지를 써서 비밀 장소에 넣었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 우리 대대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전체 부대가 모여선 바로 앞에서 우리 분대장이 불려나갔고 우리 분대는 3개월 동안 노동연대에 가서 강제노동을 했습니다. 제가 노동연대로 떠날 때 보위지도원이 저를 조용히 불러 위로했습니다. 당은 동무를 믿고 있으니 아무 내색하지 말고 노동연대에 가서도 누가 불평하는지 살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신상은 고스란히 노동연대 보위지도원에게 인계되었습니다. 3개월간 노동연대 생활을 하면서도 저는 비밀 정보사업을 계속했습니다. 8호 돼지 습격사건을 조직했던 분대장은 강직되었고, 그가 우리 분대 안에 보위부 스파이가 있다고 불만한 사실까지 다 보위지도원에게 들어갔습니다.

노동연대 일은 아주 강도가 센데, 저는 3개월 동안 강제노동을 하면서도 한쪽으로 억울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결국 내가 고발해서 터졌고 나는 고스란히 그 처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게 당에 충실하는 줄 알았고, 조국보위를 잘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제가 북한을 떠난 것도 국가안전보위부 감시망에 걸려 저의동향이 보위부에 보고되어 체포될 위험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지금 저의 방송을 듣고 있는 여러분들 속에도 분명 제가 했던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당신 곁에는 또 다른 정보원이 당신을 감시하고 있을 것입니다. 한 개 분대 안에도 그런 스파이가 몇 명 있습니다.

북한은 인민군대 안에서 반란이 일어날까봐 군인들끼리 서로 믿지 못하게 거미줄처럼 정보망을 늘여놓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보면 나는 조국을 지켜 10년 동안을 산 게 아니라 김정일 한 사람만을 위해 복무한 가병이었다는 씁쓸한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앞으로 여러분들과 나누기로 하고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지금까지 서울에서 리춘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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