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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전문가논단

김일성동상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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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2012-07-24 13:02 2,18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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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4년 북한독재의 원흉인 김일성이 급사했다.

 

남한주민들은 김일성과 김정일 사망에 대해 북한주민들이 흘리는 눈물에 대한 의문이 많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인간의 초보적인 자유마저 짓밟은 독재자의 죽음에 대해 인간이라면 응당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역대 적으로 살아서 악한은 죽어서도 악한이다. 김일성이 죽으니 사망행사로 북한주민들이 죽을 맛이다. 그 당시 나는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구역에 있는 6군단 24고사포여단 소속 1대대 하사관이었다. 특별경계령이 하달되어 경계근무시간이 증가하고 낮에는 근무휴식도 없이 행사에 동원되었다. 여단에서는 추도행사를 위하여 대대별로 참가일자와 시간을 정해놓고 동상참배를 의무화 시켰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포항구역에 있는 김일성동상을 찾았다.

 

날씨도 사람 잡기에 맞춤이다. 후덕 찌군 한데다 때 없이 비는 퍼붓고 폭염도 뒤따랐다. 빗물에 젖으면서도 손에 둔 우산을 펴는 사람이 없다. 더위에 쓰러지면서도 양산이나 태양모를 쓰는 이도 없다. 충성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걸리면 인생을 종치기 때문이다. 참기 어려운 고문 같은 행사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지쳐갔다. 사회 병원에는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부대에도 환자들이 늘었다. 부대에서는 몸이 허약한 군인들을 뽑아 부대 경계근무를 세웠다. 평상시 건강을 뽐내던 군인들도 모두 환자 흉내에 열성이다. 나는 워낙에 몸이 약했지만 백이 없어 행사조로 밀렸다.

 

94년 7월 29일이다. 우리 대대는 저녁 9시부터 동상참배이다. 보통 동상참배는 1시간30분 정도 걸리는데, 선차 순으로 화환 꽃바구니와 꽃송이를 들고 기다란 대열 속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졸다가 옆으로 넘어지는 이들이 가끔 보인다. 그래도 낮보다는 밤 시간이 좋았다. 눈을 감고 졸수도 있고, 가끔은 화장실을 핑계로 쉴 수도 있다. 1시간 정도 기다렸는데, 갑자기 동상앞쪽에서 “야. 야”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무슨 일이 터졌다. 동상 앞에 많은 사람들이 분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술렁인다. 잠시 후 나도 내막을 들었다. 한 주민이 술에 만취되어 동상참배를 하다가 오줌을 누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완전히 빼놓고 말이다. “저런 정신 나간 놈, 죽자고 환장을 했군”, “살기가 괴로운가 보군” 등의 욕설이 난무하다.

 

나도 미친놈이라 욕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당사자의 운명에 대해 걱정하는 이는 없었다. 어떻게 되었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도 없다. 또한 그것이 취중의 실수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절대로 실수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김부자에 대한 막말이나 행동이기 때문이다.

 

총살, 아니면 정치범수용소! 둘 중 하나가 그에게 정해진 운명이었다.

 

북한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명백했던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왜 사무친 원한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그것은 내가 세상을 알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인간 세상에 왔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친구들과 통일된 이후 북한에 들어가 동상 하나만 접수하여 로에 녹여 제 가격에 팔기만 하면 한 미천 마련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북한에서 이런 말을 했다면 나는 벌써 저세상 사람이다. 참 인생이 어려운 것 같아도 즐겁다. 한때는 내가 밟혔지만 이제는 내가 밟을 수 있으니 말이다.

 

북한에 세워진 수백 개의 김일성, 김정일 동상은 결코 단순한 기념물이나 금속물을 입힌 조각품이 아니다. 이는 인간에게 공포와 두려움이며 수시로 닥치는 재항이다. 인간 그 자체를 부정하고 증오하는 독재의 상징물이 없어지는 그 날이 바로 진정한 통일의 날이며 인간 자유해방의 날이다.

 

북민전 대원 송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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