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중사 수기 "차동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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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이 오면 가끔 북한군 시절 농촌지원 기간의 갖가지 추억들이 떠오른다. 북한군에 복무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했을 일이고 쉽게 잊힐 일이기도 하겠지만 배부른 한국이니 그런 추억 만들기도 어려울 것 같다.
1996년 봄 우리부대는 최고사령관의 명령으로 농촌지원에 동원되었다. 총참모부 전신지시로 집행되던 이전 관례를 떠나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전군에 농촌 지원령을 하달한 것은 최악의 국가 경제난을 군대동원령으로 극복하기 위한 극단의 조치로서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때 우리 중대에서는 병영관리를 위한 한 개 분대 정도의 인원만 내놓고 전원이 농촌지원에 참가하였다. 동계훈련기간 허약환자로 분리되어 훈련에 불참했던 인원들도 예외 없었다.
중대에서는 소대들에서 몸이 허약한 병사들을 따로 뽑아 경리소대를 만들었다. 인원은 23명이었는데, 중대 정치지도원(정치장교)이 경리소대를 맡았고, 나를 비롯한 3명의 사관들이 인원관리와 일과를 집행하였다.
중대 1소대 2분대장이었던 나는 임시로 조직된 경리소대 1분대 분대장 겸 부소대장으로 임명되었다. 경리소대가 하는 일은 모내기에 필요한 모춤 보장과 새끼 꼬기, 점심식사운반, 남새수확 등 농촌의 어르신들이 하는 것들이었다.
중대정치지도원은 중대당원회의를 소집하고 농촌지원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경리소대의 허약군인(영양실조환자)을 농촌지원기간 보양을 하여 부대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중대 병영 안에서는 지휘관들의 불호령에 마지못해 움직이던 허약군인들이었지만 농촌에 도착하니 눈이 금시에 초롱초롱 해지고 동작이 날렵해졌다. 입에 넣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것은 무자기로 먹어버렸다.
도난사고도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리에서 배고픔에 성난 군인들을 달래느라 돼지도 잡아 먹이고 집집마다 두부콩도 거두어 섬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농촌에서는 대대지휘부와 토론하여 야간 순찰대를 조직하였다. 야간 순찰대에는 하사관들이 교대로 동원되었는데, 야간 순찰근무 날에는 오후에만 일하고 오전에는 근무휴식을 주었다.
내 근무순번의 날이 왔다. 야간순찰대는 매일 장교 1명과 하사관 4명, 농촌 청년동맹 간부4명으로 조직되었다. 보통 세 개 팀으로 갈라져 구역을 담당하여 순찰하였는데, 우리팀은 그날 축산반쪽을 담당하였다. 축산반에는 농장 돼지목장과 염소목장이 있었는데, 돼지는 모돈 3마리가 전부였고, 염소는 암염소 한 마리와 새끼 염소 2마리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야간‘특공대’의 공격대상이 분명하여 특별히 경계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우리가 축산반에 도착하니 농촌의 청년간부들이 벌써 경비실에 와있었다. 우리는 순찰에 동원된 중대군인들임을 알리고 그들과 목장의 돼지와 염소마리수를 재확인하고 앞뒤와 측면의 경계구역을 확인하였다.
나는 조가성을 가진 농촌 청년과 ‘특공대’의 습격통로로서는 신통치 않아 보이는, 비교적 안정지대인 정문 쪽을 담당하였고 정문과 담장이 잘 보이는 자리에 잠복 초를 정하였다. 몇 시간이 흘렀지만 별다른 정황은 없었다. 조씨는 열심히 머리방아를 찧더니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그래. 운에 맡기자. 지금까지 목장이 안털렸는데···”
허리를 펴고 잠을 청하려는 순간! 돼지우리 쪽 담장에서 “쿵”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옆에서 자고 있는 조씨를 두들겨 깨었다. 조씨와 나는 전지를 켜고 돼지가 있는 우리로 달려갔다. 돼지우리를 들여다보니 다행히 돼지 3마리는 무사했다.
이렇게 야간 순찰이 끝나고 날이 밝았다. 아침에 목장관리원이 나오자 야간 순찰조는 인계를 하고 목장을 떠났다. 한참 걸어 수백 미터는 가는데, 목장관리원이 소리, 소리를 질렀다. 뒤돌아서 목장에 들어간 우리는 돼지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의사를 데려와 밝힌 돼지의 “사망사인”은 가스에 의한 질식사였다.
돼지의 타살에 대한 수사는 물론 우리 대대에 집중되었고 질타는 그날 밤 야간순찰에 동원되었던 우리에게 쏟아졌다. 더욱이 정문쪽 담장으로 범인이 넘어간 흔적이 발견되면서 모든 공격은 나에게 집중되었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죽은 돼지는 농촌지원자들에게 공급되면서 중대는 돼지고기를 먹었다. 특히 경리소대는 허약군인들이라고 하여 3끼 정도 돼지고기를 공급하였다. 나를 보고 “덕분에 고기 잘 먹었습니다”하며 인사를 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때부터 나에게는 “돼지중사”라는 별명이 붙었고, 중사에서 하사로 강직도 당하고 일년 넘게 중대비판의 중심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 별명이나 비판이 그다지 괴롭거나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그 후 3년이 지났다. 전역을 앞든 어느 날 난 친구와 함께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래며 소주를 마셨다. 그날 내 친구는 몇 년 전 농촌지원기간에 있었던 돼지사건의 전말을 실토하면서 “차동무! 미안하다!”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친구의 뜻밖의 실토에 처음에는 아연해 했지만 어떤 말이던 해야 했다. “참 이왕이면 중대 애들 염소도 먹이지”
그는 경리소대 2분대 분대장이었고 나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북민전 대원 차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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