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진을 깔창으로 사용했던 여군의 운명

운영자
2010-10-2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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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신발을 말리기 위해 500원 크기의 김일성 사진이 붙어있는 신문을 깔창으로 사용했던 여군은 군 보위부로 끌려간 후 소식이 없었다]
장마철이었던 7~8월 폭우가 쏟아지던 속에서 간호중대가 산에서 담가훈련(전시에 부상자들을 후송하기위한 도구)을 진행했다. 군복은 모두 젖어 있었지만 육중한 남성 환자들을 담가에 싣고 산판을 뛰어 다녔다.
늦게까지 참모군의 지시에 따라 훈련을 마치고 중대병실로 들어온 순간 큰 일이 벌어졌다. 병실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던 도중 누군가 벗어놓은 신발깔창에서 500원 동전 크기의 김일성 사진이 실린 신문종이가 발견된 것이다.
갈아 신을 신발이 없어 젖은 신발에 신문지를 깔아서 물기를 빼서 신으려고 했던 누군가의 소행, 하지만 이것을 발견한 중대 간호원이 잽싸게 정치부에 신고를 하면서 정치부장이 탄 지프차와 보위부장 지프차, 그리고 참모부에서도 우르르 군의소로 모여들었다.
그때까지 그 신발을 방에 깍듯이 보관하고 있던 군의소장이 서슬 푸른 눈으로 그 여대원까지 증거물과 함께 지휘부 군관들 앞에 내놓았다.
그 대원의 이름은 최금화, 중대의 귀염 등이었고, 신입병사시절을 금방 마치고 17호 야전병원 간호원 강습도 금방 끝낸 어린 대원이었다.
어린 대원에게 이리떼처럼 모여든 정치부장과 보위부, 참모부 지휘관들은 죽어라, 썩어져라 욕바가지를 퍼 부으며 “수령님의 사진이 담긴 신문을 제일 더럽고 치사한 신발 깔창에 깔고 다니는 의도는 무엇인가?”고 다그쳤다. ,
어린대원은 “저는 고의적인 의도가 아니라 예비신발이 없습니다. 입대하면서 받은 단화(여군단화)도 구 대원들이 모두 뺏어 신어서 이 운동화 하나로 버티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아 신을 신발이 없어서 젖은 신발을 빨리 말려보려는 생각에 신문지를 깔았을 뿐입니다. 절대로 저는 다른 의도가 없었습니다.”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지휘부에서 올라온 군관들은 “저 쌍 간나, 우리 수령님의 사진을 어디다 깔고 다녀? 저게 사람 년이야? 구더기 같은 년이지” 등의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을 연거푸 쏟아냈다.
울고 불며 그런 것이 아니었고, 신문을 확인하지 못한 죄를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던 그 대원은 한 참후 보위부에서 올라온 보위부 중대 차에 짐이 담긴 배낭과 함께 실렸다. 이후 어린 대원의 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어린 대원이 없어진 이후 아침 상학시간에 불리던 대원의 이름도 출석부에서 살라졌다.
그때부터 우리 간호중대에 들어오는 일체 잡지와 신문들은 중대 선동원이 개별 수거하여 따로 건사했고, 김일성이 사진이 들어있는 신문은 나무함을 만들어 보관하고, 나머지 신문들만 불쏘시개로 사용했다.
그 어린대원이 군 보위부로 실려 간 이후, 모든 간호중대의 사람들은 각성을 높여 불쏘시개를 할 신문을 찾아도 김일성이 사진이 깨알만 한 것이라도 나올세라 검사하고 또 검사했다.
탈북민 여성
장마철이었던 7~8월 폭우가 쏟아지던 속에서 간호중대가 산에서 담가훈련(전시에 부상자들을 후송하기위한 도구)을 진행했다. 군복은 모두 젖어 있었지만 육중한 남성 환자들을 담가에 싣고 산판을 뛰어 다녔다.
늦게까지 참모군의 지시에 따라 훈련을 마치고 중대병실로 들어온 순간 큰 일이 벌어졌다. 병실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던 도중 누군가 벗어놓은 신발깔창에서 500원 동전 크기의 김일성 사진이 실린 신문종이가 발견된 것이다.
갈아 신을 신발이 없어 젖은 신발에 신문지를 깔아서 물기를 빼서 신으려고 했던 누군가의 소행, 하지만 이것을 발견한 중대 간호원이 잽싸게 정치부에 신고를 하면서 정치부장이 탄 지프차와 보위부장 지프차, 그리고 참모부에서도 우르르 군의소로 모여들었다.
그때까지 그 신발을 방에 깍듯이 보관하고 있던 군의소장이 서슬 푸른 눈으로 그 여대원까지 증거물과 함께 지휘부 군관들 앞에 내놓았다.
그 대원의 이름은 최금화, 중대의 귀염 등이었고, 신입병사시절을 금방 마치고 17호 야전병원 간호원 강습도 금방 끝낸 어린 대원이었다.
어린 대원에게 이리떼처럼 모여든 정치부장과 보위부, 참모부 지휘관들은 죽어라, 썩어져라 욕바가지를 퍼 부으며 “수령님의 사진이 담긴 신문을 제일 더럽고 치사한 신발 깔창에 깔고 다니는 의도는 무엇인가?”고 다그쳤다. ,
어린대원은 “저는 고의적인 의도가 아니라 예비신발이 없습니다. 입대하면서 받은 단화(여군단화)도 구 대원들이 모두 뺏어 신어서 이 운동화 하나로 버티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아 신을 신발이 없어서 젖은 신발을 빨리 말려보려는 생각에 신문지를 깔았을 뿐입니다. 절대로 저는 다른 의도가 없었습니다.”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지휘부에서 올라온 군관들은 “저 쌍 간나, 우리 수령님의 사진을 어디다 깔고 다녀? 저게 사람 년이야? 구더기 같은 년이지” 등의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을 연거푸 쏟아냈다.
울고 불며 그런 것이 아니었고, 신문을 확인하지 못한 죄를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던 그 대원은 한 참후 보위부에서 올라온 보위부 중대 차에 짐이 담긴 배낭과 함께 실렸다. 이후 어린 대원의 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어린 대원이 없어진 이후 아침 상학시간에 불리던 대원의 이름도 출석부에서 살라졌다.
그때부터 우리 간호중대에 들어오는 일체 잡지와 신문들은 중대 선동원이 개별 수거하여 따로 건사했고, 김일성이 사진이 들어있는 신문은 나무함을 만들어 보관하고, 나머지 신문들만 불쏘시개로 사용했다.
그 어린대원이 군 보위부로 실려 간 이후, 모든 간호중대의 사람들은 각성을 높여 불쏘시개를 할 신문을 찾아도 김일성이 사진이 깨알만 한 것이라도 나올세라 검사하고 또 검사했다.
탈북민 여성
댓글목록3
수호님의 댓글
김정일암살님의 댓글
저는 남한사람이에요 일반인이구요
정이리킬러님의 댓글
수령 사진을 훼손했다고 인민의 사상을 의심하다니...
전 세계 초등학생들한테 윗 글 내용 들려주면
뭐라고 답할까?
지구촌에 이런 전무후무한 나라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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