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전방 군인들의 '남조선 노래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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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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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함경북도 길주군 태생인 나는 고등중학교(남한의 중학교 고등학교 합친 것)에서 남조선에 대해 이렇게 교육을 받았다.
<미제의 식민지인 남조선에는 우리의 것이 별로 없다. 모두 외국 것이 판을 친다. 물건과 상품은 물론이고 노래와 영화 등 문화도 전부 미국놈들 것이 넘쳐나고 있다.
설령 남조선 노래나 영화가 만들어져도 민족의 전통성과 구미에 맞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입맛에 맞게 만든다. 미국이나 일본에 영화나 노래를 팔아야 하니까 그들의 비위에 맞게 만든다는 것이다.
배우들도 미국식으로 화장을 하고 미국식으로 춤을 춘다. 가수들도 얼굴을 서양식으로 수술해야만 공연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고 무대에도 설 수 있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북한 주민은 남한 노래를 너무 좋아한다. 학생도 부르고 일반 주민도 부르고 군인도 부른다.
물론 알고 부르기보다는 남한 노래인지 모르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북한 군인들이 남한 노래에서 제일 많이 부르는 것은 <이등병의 편지>다. 하지만 북한에서의 제목은 <떠나는 그날의 맹세>다. 대부분 군인들은 ‘칠보산음악악단’에서 작사 작곡한 노래로 알고 있다.
물론 노래가사에는 ‘이등병’이라는 단어 대신 ‘상등병’이라는 북한병사의 직명을 쓴다. 이 노래는 90년대 후반기 전연 군인들에 의해 사회에 보급되었다고 한다. 전방에서 남한 대북방송을 하도 듣다보니 저도 모르게 따라 불렀고, 군을 전역하고 사회에 나와 전파했다는 것이다.
나는 군에 가기 전에 이 노래를 배웠다. 군 입대를 앞둔 연령의 학생들이 제일 많이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나도 중학교 친구들과이 노래를 접하고 군 입대를 축하하는 파티에서 불렀다. 누가 선창해서 부르면 모두 합창으로 따라 부를 정도로 익숙한 노래다.
남한 노래의 급속한 전파는 90년대 말, 남한 드라마와 영화가 대대적으로 유입되면서부터다. 새것에 민감하고 진취성이 강한 중학교 학생들부터 남한 노래를 배운다. 녹음카세트와 CD판도 남한 노래를 담으면 가장 비싼 가격으로 거래됐다. 물론 암거래 형식이지만 워낙 선호하는 학생이 많아 급물살을 타고 팔려나갔다.
학생들의 송별회나 파티에서는 ‘남조선’ 노래가 빠지는 경우가 없을 정도였고, 남한 노래를 모르면 멋쩍을 정도로 만연되었다. 또 중학교 학생들은 보안당국의 통제를 피할 수 있는 여건도 좋았고, 설사 걸린다고 하더라도 미성년이라는 조건으로 법적 처벌을 피해갈 수 있었다.
물론 부모가 연대 책임으로 처벌을 받았지만 법적 처벌보다는 비판이나 철직 정도의 처벌이어서 간부만 아니면 무서운 처벌도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 익힌 남한 노래는 군에서도 이어진다. 물론 학생 때보다는 부를 기회가 적고 통제가 심하지만 그래도 믿는 놈들끼리 모이면다 불렀다. 2006년, 내가 하사로 있던 시기에 중대에서 4명의 병사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유는 분대가 모여서 생일파티를 했는데, 모두 남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함께 파티를 한 군인 중에 보위부 스파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때 그들이 부른 노래 중 생각나는 것이 <보고싶다>다. 그때 사회에서는 남한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대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그들도 그 드라마를 시청했던 것 같다. 조사결과에 군에 나오기 전에 배웠다고 하는걸 봐서는 그렇다.
그들은 3개월이라는 노동연대(군대 내 강제노동 단련대) 처벌을 받고 부대에 돌아왔다. 그 정도의 처벌로 끝난 것은 ‘남조선’ 노래인줄 모르고 불렀다고 잡아뗐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노래가 하도 많이 돌아 어느 것이 남한 노래이고, 어느 것이 연변노래인지 본인 자체도 모르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남한 노래임을 알았지만 말하는 순간 인생을 종칠 수 있다는 생각에 딴전을 피운 것이다.
훗날 나도 그들에게서 그 노래를 배웠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여러 번 불렀다. 남한에 와서 생활하면서 가끔 노래방에 가는데, 다른 노래는 가사를 보고 하지만 그 노래만은 보지 않고도 가사를 외우고 있다.
군인들은 <홍도야 울지 마라> <아침이슬>도 많이 부른다. 90년대 대북방송을 한창 할 때 최전방 부대에서 군사복무를 했던 군인치고 남조선 노래 두세 곡쯤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전방부대에서 10년간 있다 보면 남한노래 몇 개 정도는 자다 깨도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된다. 하지만 군인들은 속으로는 불러도 정치지도원이나 보위지도원이 무서워 함부로 아는 척을 안 한다.
내가 98년 군에 입대하여 전연부대에 배치 받았을 때에는 대북방송이 없었다. 하지만 분대장, 부분대장 급의 선임들은 남한 노래를 알고 있었다. 그들이 그때 자주 불렀던 노래가 <사랑의 미로>였다. 내가 누구한테 배웠냐고 했더니 ‘남조선 최 동무에게 배웠다’고 한다. 최 동무는 남한의 최진희다.
중대장이나 소대장과 같은 군 지휘관들도 그 노래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안 썼다. 오히려 군인들이 콧노래로 남한 노래를 부르면 주변을 살펴보다가 ”야! 정치지도원 온다!”고 소리쳐 알려줄 정도였다.
남한에 와보니 북한의 유행가들이 있었다. 노래방에 가면 <휘파람> <축배를 들자> 등의 북한 노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처음에는 노래방 주인에게 이렇게 노골적으로 북한 노래를 불러도 되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노래방 주인은 “남한에서도 옛날에는 북한 노래 못 불렀어. 하도 세상이 바뀌어 이제는 부를 사람은 부르라고 하는데,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어” 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북한도 언젠가는 바뀌어 남한 노래를 마음껏 불러볼 날이 올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봤다.
이영철, 전 인민군 상사
<미제의 식민지인 남조선에는 우리의 것이 별로 없다. 모두 외국 것이 판을 친다. 물건과 상품은 물론이고 노래와 영화 등 문화도 전부 미국놈들 것이 넘쳐나고 있다.
설령 남조선 노래나 영화가 만들어져도 민족의 전통성과 구미에 맞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입맛에 맞게 만든다. 미국이나 일본에 영화나 노래를 팔아야 하니까 그들의 비위에 맞게 만든다는 것이다.
배우들도 미국식으로 화장을 하고 미국식으로 춤을 춘다. 가수들도 얼굴을 서양식으로 수술해야만 공연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고 무대에도 설 수 있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북한 주민은 남한 노래를 너무 좋아한다. 학생도 부르고 일반 주민도 부르고 군인도 부른다.
물론 알고 부르기보다는 남한 노래인지 모르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북한 군인들이 남한 노래에서 제일 많이 부르는 것은 <이등병의 편지>다. 하지만 북한에서의 제목은 <떠나는 그날의 맹세>다. 대부분 군인들은 ‘칠보산음악악단’에서 작사 작곡한 노래로 알고 있다.
물론 노래가사에는 ‘이등병’이라는 단어 대신 ‘상등병’이라는 북한병사의 직명을 쓴다. 이 노래는 90년대 후반기 전연 군인들에 의해 사회에 보급되었다고 한다. 전방에서 남한 대북방송을 하도 듣다보니 저도 모르게 따라 불렀고, 군을 전역하고 사회에 나와 전파했다는 것이다.
나는 군에 가기 전에 이 노래를 배웠다. 군 입대를 앞둔 연령의 학생들이 제일 많이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나도 중학교 친구들과이 노래를 접하고 군 입대를 축하하는 파티에서 불렀다. 누가 선창해서 부르면 모두 합창으로 따라 부를 정도로 익숙한 노래다.
남한 노래의 급속한 전파는 90년대 말, 남한 드라마와 영화가 대대적으로 유입되면서부터다. 새것에 민감하고 진취성이 강한 중학교 학생들부터 남한 노래를 배운다. 녹음카세트와 CD판도 남한 노래를 담으면 가장 비싼 가격으로 거래됐다. 물론 암거래 형식이지만 워낙 선호하는 학생이 많아 급물살을 타고 팔려나갔다.
학생들의 송별회나 파티에서는 ‘남조선’ 노래가 빠지는 경우가 없을 정도였고, 남한 노래를 모르면 멋쩍을 정도로 만연되었다. 또 중학교 학생들은 보안당국의 통제를 피할 수 있는 여건도 좋았고, 설사 걸린다고 하더라도 미성년이라는 조건으로 법적 처벌을 피해갈 수 있었다.
물론 부모가 연대 책임으로 처벌을 받았지만 법적 처벌보다는 비판이나 철직 정도의 처벌이어서 간부만 아니면 무서운 처벌도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 익힌 남한 노래는 군에서도 이어진다. 물론 학생 때보다는 부를 기회가 적고 통제가 심하지만 그래도 믿는 놈들끼리 모이면다 불렀다. 2006년, 내가 하사로 있던 시기에 중대에서 4명의 병사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유는 분대가 모여서 생일파티를 했는데, 모두 남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함께 파티를 한 군인 중에 보위부 스파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때 그들이 부른 노래 중 생각나는 것이 <보고싶다>다. 그때 사회에서는 남한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대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그들도 그 드라마를 시청했던 것 같다. 조사결과에 군에 나오기 전에 배웠다고 하는걸 봐서는 그렇다.
그들은 3개월이라는 노동연대(군대 내 강제노동 단련대) 처벌을 받고 부대에 돌아왔다. 그 정도의 처벌로 끝난 것은 ‘남조선’ 노래인줄 모르고 불렀다고 잡아뗐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노래가 하도 많이 돌아 어느 것이 남한 노래이고, 어느 것이 연변노래인지 본인 자체도 모르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남한 노래임을 알았지만 말하는 순간 인생을 종칠 수 있다는 생각에 딴전을 피운 것이다.
훗날 나도 그들에게서 그 노래를 배웠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여러 번 불렀다. 남한에 와서 생활하면서 가끔 노래방에 가는데, 다른 노래는 가사를 보고 하지만 그 노래만은 보지 않고도 가사를 외우고 있다.
군인들은 <홍도야 울지 마라> <아침이슬>도 많이 부른다. 90년대 대북방송을 한창 할 때 최전방 부대에서 군사복무를 했던 군인치고 남조선 노래 두세 곡쯤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전방부대에서 10년간 있다 보면 남한노래 몇 개 정도는 자다 깨도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된다. 하지만 군인들은 속으로는 불러도 정치지도원이나 보위지도원이 무서워 함부로 아는 척을 안 한다.
내가 98년 군에 입대하여 전연부대에 배치 받았을 때에는 대북방송이 없었다. 하지만 분대장, 부분대장 급의 선임들은 남한 노래를 알고 있었다. 그들이 그때 자주 불렀던 노래가 <사랑의 미로>였다. 내가 누구한테 배웠냐고 했더니 ‘남조선 최 동무에게 배웠다’고 한다. 최 동무는 남한의 최진희다.
중대장이나 소대장과 같은 군 지휘관들도 그 노래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안 썼다. 오히려 군인들이 콧노래로 남한 노래를 부르면 주변을 살펴보다가 ”야! 정치지도원 온다!”고 소리쳐 알려줄 정도였다.
남한에 와보니 북한의 유행가들이 있었다. 노래방에 가면 <휘파람> <축배를 들자> 등의 북한 노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처음에는 노래방 주인에게 이렇게 노골적으로 북한 노래를 불러도 되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노래방 주인은 “남한에서도 옛날에는 북한 노래 못 불렀어. 하도 세상이 바뀌어 이제는 부를 사람은 부르라고 하는데,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어” 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북한도 언젠가는 바뀌어 남한 노래를 마음껏 불러볼 날이 올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봤다.
이영철, 전 인민군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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