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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전문가논단

아날로그 TV를 살려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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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2 10:30 2,23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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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한군 복무시절에 대한민국 드라마를 많이 봤다. 1996년 황해남도 신천군 온천리에서 군복무를 한 나는 10년의 외롭고 힘겨웠던 훈련의 나날보다는 남한TV를 보며 풀 수 없는 거짓과 진실의 교묘한 감정 교차로 갈등과 흥분을 일으켰던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  
 
처음 남한TV를 보게 된 것은 1999년 봄이었다. 부대는 상급기관의 지시로 농촌지원에 동원되었다. 그해 봄철은 기후변동이 많은 탓인지 볏모성장이 늦어졌다. 짧은 시일에 모내기를 끝내기 위한 총 동원령이 내려졌다. 부대는 현장에서 침식을 하며 주야전투를 벌렸다. 농장에서는 군인들의 편의도모를 위해 협동농장 선전실과 작업반 휴계실을 침식장소로 제공했다. 하지만 인원이 많아 일부는 농민들의 개인 주택가에 배치되었다. 그때 내가 속한 분대는 온천협동농장 2작업반 기술준비원의 집을 숙소로 제공받았다.
 
한개분대가 자기는 좁은 방이었지만 그래도 온돌방이라 고향집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당시 나는 상급병사로써 분대에서는 고참병이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밤, 분대장이 갑자기 날 부른다. 그러면서 분대원들을 데리고 땔 나무를 해결해 오라는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갑자기 그런 명령을 받은 나는 의아해 물었다. "오늘밤에 꼭 해야 합니까?" 순간 따귀가 날아왔다. "이섹끼.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
 
나는 분대원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숙소에는 분대장과 부분대장만이 남았다. 우리는 땔나무를 산에서 해결하기 보다는 건너켠 마을에서 해결하기로 결론내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하루종일 논밭에서 고열을 짜며 중노동에 부대낀 우리는 언제 주변을 살필 여유조차 없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 첫번째로 맞다드는 집부터 요정을 냈다. 울바자를 헐고, 새로 세원 줄당콩 대를 사정없이 뽑았다. 미욱한놈이 곰을 잡는다고 다행히 주인들과의 마찰은 없었다. 우리는 무장강행군 때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숙소집을 향해 종행무진했다.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주인집 식구들이 놀라 잠에서 깨워날까 두려워 흠쳐온 널판과 콩대를 뒤뜰안에 조심히 세웠다. 다음 숙소방에 들어가려고 문을 당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이 안으로 잠겨있었다. 순간 속이 울컥 치밀었다. '아니 병사들을 내몰고 벌써 잠들었나?'
 
나는 조용한 소리로 "분대장 동지!, 부분대장 동지!"하며 잠에 든 사관들을 깨워보려 했다. 몇번을 불렀는데도 소식이 없다. 나는 하는수 없이 문을 쾅쾅 두드리며 큰 소리로 불렀다.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부분대장이다.
 
방에 들어서니 분대장은 까치다리를 하고 누워있기는 하지만 잠자던 자세는 아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분대장은 수고했다면서 빨리 자라고 재촉이다. 분대원들은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분대장과 부분대장은 자지 않는다. "나쁜섹끼들"
 
후에 안일이지만 분대장과 부분대장은 그날 주인집과 내통하여 남조선 TV를 보았던 것이다. 나도 며칠 후 그들과 합류했다. 분대장이 나를 합류시킨 이유는 분대장이 어느날 갑자기 아프다는 핑게로 일하던 도중 숙소집으로 갔는데, 대대지휘부에서 인원점검을 하는 통에 내가 숙소집에 데리러 갔다 남한TV를 보는 분대장을 보았기 때문이다.
 
농촌지원전투가 끝난 다음에서 남한TV 시청은 이어졌다. 저녁검검이 끝나고 취침구령이 떨어지면 내가 먼저 나가고, 다음은 부분대장이 나오고, 분대장이 나왔다. 걸어서 1시간 거리에 우리의 아지트가 있었다. 온밤 TV를 보고 새벽녘에 귀대한다. 그런데 보고 싶은걸 봐서 그런지 잠못잔 티는 안난다. 군복무 후반기는 정말 남한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재미에 군복무를 보냈던 것 같다. 주민들도 남한영화에 많이 섬취되어 있었다.
 
내가 한국에 오게된 것도 북한군 시절에 남한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누구한테 듣자니 아날로그 방송에서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하면 북한에서 남한TV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아쉬운 일이다.
 
바램은 아날로그 방식을 살려두는 것이다. 북한 전연군인들과 주민들의 하나의 생명선과도 같은 남한 소식줄이 끊지 말아주길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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