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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전문가논단

목숨을 건 북한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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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7 12:28 1,81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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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0년 11월 평안남도 북창군에서 출생했다. 우리 집 가문은 군인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지난 6・25 전쟁에 참가하여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당시 할아버지는 두 살배기 아들(나의 아버지)을두고 인민군에 징집되어 전쟁에 참여하였다.
 
아버지는 연대 작전참모로 군복무를 하다가 내가 4살 되던 해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나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군대에 가게 되었고 그때가 1997년이었다. 북한에서 이른바‘고난의 행군’을 하던 시기였고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였다.
 
북한의 모든 군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부모님 슬하에서 유치원, 인민학교, 고등중학교 등 교육과정을 마치고 개성시 장풍군에서 5년간 군복무를 하였다. 부대에서는 나를 군관학교에 보내려고 했지만, 나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군복을 입고 죽기가 싫었다. 늦게나마 대학 공부도 하고 싶었고 그나마 자유로운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다.
 
나는 군사복무 기간 심심치 않게 남조선에서 날아오는 전단과 사진, 물자 등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가장 충격적으로 놀랐던 것은 김일성・김정일의 반인민적 만행을 그대로 적어 보낸 탈북자들의 전단이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전단을 보낸 당사자가 바로 공화국에서 살다가 내려간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말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다.
 
자신들은 김정일 독재체제에 더는 살수 없어 사생결단하고 남조선으로 내려간 탈북동지들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공화국에서 선전하던 무상치료, 무료교육, 세금 없는 나라 등이 모두 인민들을 기만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세상 밖을 전혀 모르는 공화국인민들만 알고 있는 황당한 거짓이다. 당신들은 청맹과니와 다름없고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노동당이고 김정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잔인한 독재자라는 것이다.
 
사실 그때부터 나의 정신적 세계관에 변화가 있었다. 김일성・김정일은 결코 인민의 어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엄청난 비밀을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북한의 인민군대 안에는 모두 보위사령부에서 박아 놓은 첩자들이 득실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는 보위부 정보원이다’ 라고 말하지 않지만 왠지 그들의 행동이나 발언을 유심히 들으면 어딘가 모르게 티가 난다.
 
내가 군대생활 5년째가 되는 2003년, 고향에서 전보가 왔는데 어머니가 ‘백혈구 감소증’이라는 병명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병이 무슨 병인지 몰라 부대 군의관에게 찾아가서 들은 내용은 절망적이었다. 일종의 혈액암이다. 쉽게 말하면 마땅한 약이 없고 곧 죽는 병이라는 것이다.
 
나는 부대장에게 고향에 보내주면 올 때 부대목장에서 기를 새끼돼지 한 마리를 가져오겠다고 하였다.(당시에는 새끼돼지 한 마리를 가져오는 병사에게는 15일간 휴가를 주었고, 옥수수 20kg 가져오면 7일간의 휴가를 주었다) 집에 와보니 여동생이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는데 어머니에게 멀건 죽물만 입에 넣어 주고 있었다. 동생은 나를 부둥켜안고 빗물 같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지체할 수 없어 군 인민병원에 찾아가 의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엄마를 살릴 수 있겠냐고. 그랬더니 조선에는 구하기 힘들고 중국에 가면 백혈구 감소증에 맞는 약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군복을 입고 국경지역으로 나오게 되었고 압록강을 넘어 중국으로 왔다. 엄연히 탈북이다. 정치적인 문제이지만 나에게는 오직 나의 어머니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내가 범죄자인지 아닌지는 내 어머니를 살려 놓은 다음에 생각해 볼 일이다.
 
중국에 첫 발을 딛는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족들이 사는 지역에는 한글이 씌어있어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어떤 양심적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군복을 벗으라며 공안이 오면 당장 체포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야 내가 조국과 민족을 등진 배신자가 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중국에서 짧게 머물면서 김일성・김정일의 반동성을 깨달았다. 조선족 사람들은 북한에서 인민들이 굶어 죽는 것은 모두 김정일 때문이라며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나는 처음 내 귀를 의심했고 정신이 벙벙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착한 마음으로 그들의 말을 다시 되새겨 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북한의 곳곳에는 수많은 김일성 동상이 있다. 그것이 모두 귀한 금속인 동으로 만들었다. 그것을 외국에 팔아도 엄청난 돈이다. 또한 그것을 관리하는데도 엄청난 국가 돈을 들이고 있으니 정말 조선 인민은 그런 것들 때문에 못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핀잔과 훈시를 들으며 마냥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어머님의 병과 가정의 딱한 사정에 대해 말했다. 나의 기구한 사연을 모두 들은 조선족 노인은 자기가 모아둔 돈을 꺼내서 아들에게 주며 시내에 데리고 나가 내가 필요한 약을 사줘서 보내라고 하였다. 또 300위안을 주면서 앓는 어머니에게 쌀밥이라도 대접하라는 것이다.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인정이었다.
 
나는 약과 돈을 가지고 다시 북한에 들어가 어머니께 드렸다. 다시 부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어떻게 죽어가는 어머니를 두고 부대로 간단 말인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름지기 부대에서도 약속된 날짜가 지났으니 소동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군대에 가서 5년간 복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어머니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하나뿐인 여동생도 지금 거지꼴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때는 어떻게 될까? 나는 또 고향에 와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남들처럼 시장에 나가 하루하루 벌어서 근근이 연명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니 불쑥 ‘도망가자!’는 말이 나도 몰래 튀어나왔다. 나는 동생에게 “중국에 있는 할아버지가 자기한테 오면 우리 엄마 병 고쳐준다고 했어. 우리 엄마 병을 고치고 다시 고향으로 오자!” 고 했다.
 
순간 동생은 “아니, 그럼 중국으로 가자고? 그건 조국을 배신하는 것이나 같아” 하며 거절하였다. 내가 또 말했다. “아니 엄마 병 고치면 꼭 조국으로 오자. 와서 장군님께 충성하자. 중국에는 먹을 것 입을 것이 많아서 우리 엄마 병을 빨리 고칠 거야” 하며 달래자 여동생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었다.
 
나는 다음날 시장에 나가 돈이 될 만한 물건은 모두 팔았다. 텔레비전, 재봉기, 고성기 등등. 나는 밤중으로 어머니를 업고 국경지대로 이동을 하였다.
 
나는 국경경비대원한테 준비한 돈을 내놓으며 터놓고 말을 했다. 어머니의 병이 위급해 중국에 있는 친척집에 가서 병 치료를 하려고 한다고 했다. 경비대 친구도 내 등에 업힌 어머니를 보더니 길을 안내했다.
 
강가에서 경비대 군인과 헤어지면서 어머니 병 치료를 끝내면 나오겠다고 하고, 나올 때 돈도 많이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군인은“난 후에 보자는 말 안 믿습니다. 그리고 난 그쪽을 넘긴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습니다. 통일된 다음 볼 수 있으면 봅시다!”라고 말했다.
 
워낙 넘어가는 사람마다 다시 나온다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본인이 보낸 사람이 중국에서 북송되어 나와 자기를 탈북에 협조했다고 불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강을 건너 전번에 신세졌던 조선족 노인 집으로 갔다. 그 노인의 도움으로 우리 가족은 남한에서 왔다는 목사님을 만났다. 그 목사님 덕분에 우리는 한국으로 무사히 오게 되었다.
 
남조선에 와서 제일 먼저 내 가슴속에 다가온 것은 어린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거리낌없이 뛰어다니는 밝고 건강한 모습과 말쑥한 차림을 한 여성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이었다. 바로 이런 모습들이 진정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구나 하고 생각되었다.
 
남한의 오늘을 일군 국민 모두에게 진심으로 자랑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는 이런 세상에 총을 겨누었던 사람인데 모든 죄를 용서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국민의 자격을 주었으니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의 땅 남한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많다. 그들 중에 남한에서 오라고 해서 오는 이는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누군가 초청해서 오는 것도 아니요, 강제로 와서 살라고 해서 온 것도 아니요, 모두 자발적으로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도착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북한 인민군은 모두 정신병자들이다. 오로지 김일성・김정일 밖에는 세상에 누구도 아무 것도 모르고 산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조선노동당이다. 북한에서 노동당은 김정일, 지금은 김정은이다. 인민의 군대를 수령의 군대라고 하는 정신 나간 군대가 세상 어느 나라에 있을까?
 
그리고 군사 복무를 10년씩이나 시키는 목적도 오로지 체제 유지를 위해서다. 한창 먹고 힘을 내는 젊은 혈기를 군대 안에 꽁꽁 묶어 놓고 다른 행위(반체제 생각이나 행동)를 못하게 하는 것이다. 죽으나 사나 혁명임무, 수령결사옹위, 노동당 수호, 썩어빠진 남조선해방, 미제침략자 타도 등의 구호만을 외치고 또 외친다.
 
배수만, 전 인민군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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