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인민군 보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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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병사 시절을 겪은 사람이라면 ‘개미사랑’ 이야기를 알 것이다. ‘적지물자’로 빚어진 수많은 에피소드도 알 것이다.
북한군에서 말하는 ‘적지물자’는 남한에서 풍선을 태워 보낸 각종 식료품과 공산품을 가리켜 붙인 말이다. ‘적지물자’는 국가와 국민을 회유하고 공화국의 존엄과 우리 인민의 자존심을 짓밟는 추악한 반공화국 모략 책동의 일환으로 규정한다. 또한 공화국 인민을 상대로 한 세균바이러스와 독성화학물질에 의한 인체 실험이란 엄청난 거짓도 거리낌 없이 말했다.
나는 강원도 세포군에서 군 복무를 하면서 북한 당국의 이런 선전으로 ‘적지물자’에 대한 무서운 공포에 시달렸던 사람이다. 비지땀을 흘리며 고강도 훈련을 하고 나서도 피곤하면 몸을 씻지 않고 누워버렸지만 ‘적지물자’나 전단을 줍는 날만은 몹쓸 병에 걸릴까봐 어김없이 몸을 씻을 정도였다.
90년대 북한에서 수백만 주민이 굶어 죽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하지만 그 많은 죽음 중에는 강원도 군인이 적지 않게 들어 있다. 내가 복무한 대대에서만도 그 시기 영양실조와 질병에 죽은 병사가 수십 명은 된다. 중대에서 죽은 친구들 이름은 아직도 생생하다. 현철이, 영수, 광호, 강철이…
북한군에는 계급과 직급에 따른 병사만의 호칭이 있다. “군단장은 군데군데 떼먹고, 사단장은 사정없이 떼먹고, 연대장은 연속으로 떼먹고, 대대장은 대량으로 떼먹고, 중대장은 중간 중간 떼먹고, 소대장은 소리 없이 떼먹는다.”는 말이다. 병사들에 대한 후방물자와 보급물자가 턱없이 부족해지면서 붙인 별호이다. “전사할 전사, 병 많은 병사, 화 많은 하사, 증오할 중사, 상처 주는 상사, 사정없는 사관장(특무상사)”이라는 호칭도 있다. 이런 별호는 병사의 삶에 대한 불평이고 불만이다.
군복무를 하면서 제일 참기 힘든 것이 배고픈 고생이다. 특히 90년대 군에 나간 사람은 굶주림에서 생사의 언덕을 넘어야 했다. 나도 군에서 통옥수수와 외국에서 수입한 말 사료 한줌에 염장무 몇 쪼가리를 먹으며 몇 년을 버텼다. 영양실조에 걸려 6개월 간 군의소에서 치료도 받았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북한 군인에게 90년대 남한에서 보낸 ‘적지물자’는 대단한 심리전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아무리 배고프고 허기져도 한 끼에 목숨을 버릴 만큼 생에 무관심하지는 않았다. 적들이 보낸 음식을 먹으면 심각한 질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이며 시들시들 말라서 죽게 된다는 당국의 선전이 당분간은 군인의 이성을 지키는데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나흘 굶은 양반은 없다’는 말대로 병사의 이성에도 한계가 있다. 먹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이 입으로 돌격했다. 버섯과 풀뿌리, 개구리와 뱀, 나무껍질 등 짐승이 먹는 모든 것이 병사의 먹이가 되었다. ‘적지물자’도 예외일 수 없었다. 땅에 묻었던 ‘적지물자’를 파내어 사정없이 먹었다.
‘적지물자’를 처음으로 먹기 시작한 부대는 금강관리국 산하 부대였다. 금강산발전소 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이 ‘적지물자’를 먹고 병에 걸려 사망했다는 통보서가 내려왔다. 과장되고 부풀린 점이 있기는 하지만 ‘적지물자’를 먹고 죽은 병사는 많았다. ‘적지물자’에 진짜 독성이 있거나 세균성 바이러스가 있어서가 아니라 음식이 변질되어 썩었기 때문이다. 영양실조에 걸려 면역력이 떨어진 군인들은 식중독에 걸리면 몇 시간 못 버텼다.
하지만 포기할 북한군이 아니다. 그래서 발명된 것이 ‘개미사랑’이다. 금강관리국 산하 515여단에서 발명되었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한 병사가 허기를 참을 길 없어 죽더라도 배불리 먹고 죽겠다는 각오로 ‘적지물자’ 매몰지에 갔다는 것이다. 파묻은 음식물을 꺼내 산속에 들어가 정신없이 먹었다는 것이다. 배불리 먹고 병영에 들어와 잠자리에 누어 지나온 인생을 회고하며 부모님께 속으로 마지막 작별 인사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아픈 데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도 이상해서 점심시간에 매몰지에 다시 갔는데 매몰지에는 개미떼가 득실거렸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 음식을 먹을 때 시큼시큼한 개미도 함께 먹고 병영으로 오면서 몸에 붙은 개미를 한참이나 털어버렸던 생각이 났단다. 그래서 음식물을 여럿 꺼내놓고 실험을 했는데, 변질된 음식에는 개미가 안 붙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발명된 ‘적지물자’ 탐색법이 바로 ‘개미사랑’이다.
‘개미사랑’ 소문은 병사들 속에 급속도로 전파됐다. 병사들은 삽과 곡괭이를 들고 파묻었던 ‘적지물자’를 파헤치고 산과 들을 헤매며 ‘적지물자’ 탐색전을 벌였다. 이때부터 ‘적지물자’는 영양실조 군인의 보양음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북한 군인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적지물자’는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김정일 장군님’께서 병사들이 너무 맛나게 먹는 것이 배가 아파 남한에 보내지 말라는 특별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전 인민군 특무상사 김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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