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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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군관의 안내로 병영에 들어서니 군관들과 하사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기 바쁘게 사품 검열이 시작된다. 배낭은 물론 호주머니까지 뒤집고 속옷은 물론 청년동맹 맹원증 케이스까지 샅샅이 뒤졌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건네준 돈과 간식, 기념품 모두를 싹쓸이 해갔다.
장교들과 하사관들은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돌려준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회수당한 돈과 물건을 찾은 군인은 없다. 군대에 입대하자마자 이런 변을 당하니 너무나 어이가 없고 마음이 쓸쓸하여 모두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벌써부터 떠나온 고향과 부모님 형제들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병실(침실)에는 2개 소대 정도의 인원이 잘 수 있도록 2층 연결침대가 놓여 있었다.
잠자리는 볏겨를 넣어 만든 70센티 정도의 매트리스에 베개, 담요, 백포 1장이 고작이었다. 돈과 물건을 뺏긴 억울한 기분과 낮선 잠자리 탓에 뒤척거리며 잠 못 이루는 군인들이 태반이다.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처음으로 듣는 이상한 기상소리가 들린다. ‘중대 기상시간, 중대 기상시간!’ 신병들은 일어나며 투덜거린다. 어떤 미친놈이냐고 욕을 하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군인이 되었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놀라 허둥지둥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기상부터 시작되는 일과는 학교를 갓 졸업한 우리에게 너무 생소하고 힘에 부치는 생활이었다.
신병훈련소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일과내무 생활이다. 신병훈련소에는 신병교육을 책임진 장교들과 고정사관들이 있다. 사관들은 한 개 분대씩 책임을 지고 일과를 진행하는데, 경쟁심이 대단했다. 나의 신병분대장은 평안북도 곽산 출신인데 김영택 중사였다. 분대원들은 그에게 ‘눈택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눈덩이에 살이 있는데다가 눈초리가 매섭고 독살스럽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 군복 착용 법, 취침 시 군복 정돈 법, 세면도구 정돈과 휴대 법, 화장실 및 세면장 대열 인솔법, 침구류 정돈법을 비롯하여 일과내무 생활에 필요한 모든 동작을 부단한 반복으로 교육받고 숙련한다. 끊임없이 강요되는 반복 훈련으로 잠을 제대로 못자다보니 신병에게는 배고픔보다도 그리운 것이 잠이다.
어느 날, 저녁점검이 다 끝나고 잠자리에 들어 곯아떨어졌는데 갑자기 ‘중대 기상!’ 하는 소리에 놀라 와닥닥 일어났다. 이유는 2층에 있는 3분대의 한 군인이 잠들기 전에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담뱃불을 채 끄지 않아 군복이 담뱃불에 그슬려 병실에 매캐한 연기가 찼던 것이다. 이것을 구실로 잡은 고정사관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한잠도 재우지 않고 침구류 정돈연습을 반복시켰다.
우리는 정치상학과 군사훈련에 지칠 대로 지친데다 잠을 제대로 못자 미칠 것만 같았고 담배를 피운 한 군인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니 죽이고 싶을 만큼 그 군인이 미웠다.
그런데 다음날 점심식사가 끝난 다음 사건이 터졌다. 중대 전체를 고생시킨 장본인이 없어진 것이다. 탈영은 신병대에서 가끔 일어나는 사건이기는 하지만 제때에 수습하지 못하면 상급기관으로부터 비판은 물론 그 누구든 책임지고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있을 만 한데는 다 뒤졌는데 그는 보이지 않았다. 저녁 식사시간이 다가오자 중대장은 수색을 중단하고 대열을 점검했다. 그런데 또 4명의 병사가 보이지 않았다. 저녁식사가 끝났지만 지휘관들은 우리를 더 이상 수색에 동원하지 않았다.
장교들과 사관들은 경비소대 인원과 함께 야간 수색을 벌여 저녁 9시쯤에 후에 없어졌던 4명의 군인을 발견하였다. 돈 사 쪽에서 발견했는데 사연은 수색을 하다가 좀 쉰다는 것이 잠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3분대 군인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여단에 사건이 보고되고 여단에서는 경무대(헌병)에 의뢰하였다. 그런데 그는 여단에 보고된 그날 저녁에 중대로 돌아왔다. 분대장한테 매질을 당했지만 그 일로 중대에 집단 처벌은 하지 않았다. 그는 훗날 우리에게 농장마을에 나가 원 없이 잠을 실컷 자고 왔다고 했다.
신병 훈련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으면 고참(구대원)들도 신병 훈련만 통과하면 군복무 절반을 먹고 들어간다는 말을 하겠는가. 또 백포에 조선지도가 아니라 세계지도를 그려야 신병을 제대로 받았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너무 힘들고 지쳐 잠잘 때 오줌을 누는 친구들이 꽤 많은데 얼룩이 작게 나면 조선지도고 얼룩이 크게 나면 세계지도이다.
나도 그 세계지도를 두 번 그렸다. 신병 훈련은 내무규정 생활의 숙련과 함께 정치· 군사상학 및 훈련으로 이어진다. 신병 훈련에서 배우는 과목은 정치상학, 사격, 병기학, 대열, 체육, 행군 반 화학, 공병을 비롯한 일반훈련 과목이다.
(다음호에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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