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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청년근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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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1 11:38 2,08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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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14세에 실탄을 쏴보는 기회를 갖는다. 북한의 중학교 과정에는 군사교육 기간이 별도로 제정되어 있다. 바로 ‘붉은청년근위대’ 생활이다.

 

 ‘붉은청년근위대’는 사로청(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약칭)원 대상으로 만 14세 이상의 중학생들로 조직된 민간 군사조직이다. 1970년 9월 김일성의 지시로 창설됐으며, 북한은 이들을 ‘항일혁명투쟁 시기의 청년의용군과 소년선봉대의 영광스런 계승자’로 지칭한다.

 

‘김일성(김정일· 김정은)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라는 총대의 사명을 처음으로 접하는 시절이다. ‘붉은청년근위대’는 유사시 학교와 마을, 국내의 주요 시설물을 방어하고, 정규군의 보충과 보급물자 공급을 지원하기 위한 민방위 산하 청소년 군사조직이다.

 

북한 학생들은 중학교 4학년에 진학하면 만 14세가 되는데, 노동당 민방위부 소속의 ‘붉은청년근위대’에 입대를 하고 군사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기간은 15일이며 부대 병영과 같이 별도로 꾸려진 곳에서 숙식을 하며 진행한다.

 

훈련소에는 구역 민방위부에서 파견된 고정 군사교관들과 관리 성원들이 있다. 담당 학교가 많다보니, 훈련소는 겨울방학과 여름방학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풀로 가동된다. 근위대 생활은 똑같은 부류의 군복은 아니지만 모두 국방색 군복을 착용하고 진행한다.

 

현역과 다른 것은 계급장이 없고, 규정된 속옷이 아니라 집에서 자체로 준비한 속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군사훈련은 제식동작과 사격이 기본이다. 아침 기상으로부터 저녁 취침에 이르기까지 군인들의 일과와 유사하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가장 많이 하는 훈련은 조준사격 훈련이다. 근위대 훈련의 마지막 총화가 결국 실탄 사격이기 때문이다.

 

100미터 거리의 원형고정 목표에 대한 훈련인데, 교관들은 사격 과녁을 과녁으로 보지 말고 미제의 심장으로 간주하고 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학생들은 ‘자세와 숨 조절, 조문조촉을 맞추는데 신경을 곤두 세워도 맞을지 안 맞을지 모르는데, 미국 놈은 무슨…’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총화 기준이 바로 그것이다.

 

사격은 분대 단위로 나가 쏘는데, 나가기 전에 제정된 대원의 선창에 따라 구호를 외친다.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하자!” 라고 선창하면 대원들은 “소멸하자!”, “소멸하자!”, “소멸하자!” 라는 구호를 연호한다. 이윽고 훈련 교관이 구령을 내린다. “엎드려 사격 준비! 전방 목표물을 향하여! 단발로! 쏴앗!” 사격이 끝나고 판정성원이 수기로 점수를 알려온다. 훈련 평가기준은 우, 량, 급, 낙제의 등급으로 나뉘는데, 25점 이상은 우, 21점~24점은 량, 16~20점은 급, 그 이하는 낙제이다.

판정성원의 수기가 오르내릴 때마다 심장은 콩닥콩닥 뛴다. 한쪽에서는 기쁨의 ‘만세’가, 다른 쪽에서는 슬픔의 울음바다가 터진다. 30점의 최우수 성적을 맞은 학생에 한해서는 3발의 총탄을 더 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한 영광의 최우수상과 기념사진도 찍어준다. 낙제를 맞은 학생들의 근심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원수에 대한 적개심이 문제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최우수상을 받은 학생의 ‘적개심’이다. 그들은 최우수상을 받게 된 소감에서 늘 “원수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안고 적의 심장을 겨누는 심정으로 쏘아 명중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낙제를 받은 학생들의 적개심을 뭉개기 때문이다.

 

나는 다행히 16점이라 ‘급’을 맞아 비판무대는 간신히 피했지만 기분은 낙제를 받은 친구들과 비슷했다. 근위대 생활을 끝내고 집에 도착하여 아버님에게 야단을 맞았다. 아버님은 “남들이 다 맞는 우를 왜 못 맞았냐?”며 분통을 터뜨린다. 또 군대 때 자기 자랑도 하신다. 군대 때 사단사격에서 항상 1등을 양보한 적이 없다고. 그래서 나는 아버님께 물었다. “아버지, 조준할 때 진짜 미국놈이 보입니까?” 그랬더니 불시에 아버님은 따귀를 날렸다. “이놈아,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나의 ‘붉은청년근위대’ 생활은 이렇게 흘러갔다. 군에 입대를 해서도 나의 사격술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우’를 맞아 본 것은 군복무 9년차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도 여전히 나의 눈에는 ‘미국놈’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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