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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군사놀이와 "아버지 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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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군인 강세윤
2013-01-28 09:58 2,09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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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0년대 황해남도 해주시 승마동 제3유치원에 다녔다. 3유치원은 1,2유치원과는 달리 해주시 옥계동에 위치하고 있는 인민군 4군단의 군관(장교) 및 노무자 자녀들을 위한 특별전형 유치원이다.


해주시에는 군인 가족을 위한 이와 같은 특별유치원이 몇 군데 있는데 사회에서는 보통 ‘군대유치원’으로 불린다. 일반 사회 유치원에 비하면 비교적 공급이나 유치원 시설 등이 좋은 편이다. 사회 사람들은 대부분 군대유치원을 부러워하는 눈치이다. 그러나 반드시 군인 가족이나 군부대 노무자 가족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일종의 특별한 유치원이고 시설이다.

유치원 원장과 교양원(교사), 노무자(직원) 역시 대부분 군인 가족 여성들이고, 이들의 임명권(인사권)은 군단 정치부 소속 가족부에서 관장한다. 내가 다니던 3유치원은 원장 선생과 교양원 4명, 보육원(식모) 2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80여명의 유치원생이 있었다. 100% 군관 및 노무자 자녀들이었다. 유치원 원장 및 유치원 교양원 선발 기준은 학력과 자격이다. 원장은 반드시 사범대학이나 교원대학을 졸업한 자격증 소지자야 하며, 교양원 중에서도 높은반을 담당하는 선생인 경우 전문대학 이상의 고등교육 이수자여야 한다. 하지만 낮은반 담당 교양원인 경우 3개월~1년의 교양원 양성반(국가인증 전문학교)과 보육원 양성반 졸업자이면 가능하다.

유치원생들은 만 5세 이상의 어린이들인데, 지적장애나, 신체장애 어린이인 경우 10세 미만으로 제한을 두었다. 유치원 교육과정은 낮은반, 높은반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반에 두 개 반씩 있었는데 한 개 반은 대략 20여명의 남녀혼성으로 이루어졌다. 대부분 탁아소를 다니고 유치원에 들어오지만 일부는 집에서 어머니나 할머니의 부양을 받다가 나이가 들어 유치원에 오는 애들도 있다. 유치원 건물은 단층인데, 교무실과 교양실, 교실, 침실, 놀이방, 식당과 창고로 되어 있다. 북한의 모든 유치원은 4월 1일, 개원식을 가장 큰 행사로 치른다. 모든 아이들과 엄마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유치원에서 이날은 낮은반 어린이들의 입성과 함께 낮은반 어린이들을 높은반의 본 학생으로 입학시키는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하다. 북한은 유치원 높은반 1년, 소학교(초등에 해당됨)4년, 고등중학교 6년 과정으로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연령은 만 6세부터 만 17세까지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전국 유치원에 일정한 거주 지역의 어린이들을 담당하여 교육하도록 규정하고 교육 연령의 어린이 명단을 유치원에 발부한다. 해당 유치원은 담당 거주 지역에 따른 책임이 있어서 의무교육 연령은 되었지만 유치원에 나오지 않는 애들을 위해 집을 방문한다.

나의 유치원 시절을 회고하면 이렇다. 오전 9시에 등원하면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선생님을 만나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 현관에 있는 김일성· 김정일 유화작품 앞에서 먼저 인사를 한다. 그 다음 교실에 들어가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가방을 놓고 운동장으로 나와 출석 확인과 아침체조 시간을 갖는다. “아침체조 하자요”의 노랫가락에 맞춰 체조를 하는데, 앞에 선 유치원 교양원 선생님의 체조 동작을 따라한다. 아침체조가 끝나면 교육일정대로 교양실과 교실, 혹은 야외에서 지정된 교육을 받는다.

유치원에서는 원생들의 경쟁심을 유발하기 위해 ‘붉은별 경쟁’ 도표를 만든다. 모든 교육과목에 해당되는데, ‘김일성· 김정일 어린 시절’ 배우기 시간에 답변을 잘 하고, 가갸 표 암기와 같이 공부를 잘 하든지, 남을 도와주거나 웃어른 공경과 같은 좋은 일 하기 등에서 모범인 원생들을 표창하여 붉은 오각별 종이를 이름이 새겨진 경쟁도표란에 붙인다. 또한 저녁에 집에 갈 때 큰 붉은색의 오각별 종이를 가슴에 달아주어 부모님께 자랑하도록 한다. 지금은 종이 사정으로 오각별 표창이 없어졌지만 내가 다니던 시절에는 ‘붉은 별’에 대한 원생들의 관심이 대단하였다.

나는 오각별을 자주 받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붉은 별을 가슴에 달 때만큼은 기분이 최고였다. 오각별을 받지 못한 원생들은 다음날을 기약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간다.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는 최영철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워낙 장난기가 많고 자유분방해서 교양원 선생으로부터 칭찬 한번 들은 적 없고 ‘붉은 별’ 표창도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집에 갈 때마다 오각별을 받고 가는 애를 협박하여 자기가 달고 가곤 하였다. 그에게 오각별을 빼앗긴 애들은 많았지만 고발했다가 매 맞을 것 같아서 대부분 애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오랜만에 오각별 표창을 받았는데, 날 보고 오각별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나도 그와 힘겨루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내놓지 않으면 얻어맞을 것이 뻔했다. 간만에 부모님한테 자랑거리가 생겼다고 내심 좋아했는데 ‘그놈’에게 뺏겼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그때부터 나는 색종이를 가지고 ‘붉은 별’을 만들었다. 유치원을 벗어나 길거리에서는 달지 못하고 집 앞에 도착하면 주위를 살피고 가슴에 ‘붉은 별’을 달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처럼 ‘붉은 별’을 자체로 만들어 단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후에 이 일이 탄로나면서 유치원에서는 유치원 도장을 종이에 찍어 보내곤 하였다.

북한의 유치원 교육에서 아주 독특한 것은 김일성, 김정일의 어린 시절 개인 역사를 공부하는 ‘어린 시절 따라 배우는 시간’이다. 이것은 평양의 간부 자녀들이 다니는 고급유치원이나 시골의 농민 자녀들이 다니는 농촌유치원이나 똑같다. 일주일에 2~3시간 정도 유치원에 고급스럽게 꾸며진 ‘교양실’(수령의 개인역사 전용교실)에서 선생님으로부터 김일성· 김정일의 어린 시절에 관한 동화, 실화, 설명, 영상물 감상 등의 교육을 받는다.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전설적인 얘기도 많이 해준다. “김일성이 태어날 때 하늘에 나라의 대통운을 가져다준다는 샛별이 솟았다” 라든가, “김정일이 태어날 때 백두산 천지에 쌍무지개가 비꼈다” 라든가 하는 신비로운 말들이다.

김일성· 김정일 어린 시절 따라 배우기 시간이면 모든 원생들은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사진액자)앞에서 정중한 자세로 인사를 올리고 선생님의 말을 따라 복창하여 결의도 다진다. 김일성· 김정일 ‘어린 시절 따라 배우기’ 시간이면 모든 원생들은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사진액자) 앞에서 정중한 자세로 인사를 올리고 선생님의 말을 따라 복창하며 결의도 다진다. “나도 경애하는 김일성 원수님처럼 웃어른들을 존경하겠습니다.”, “나도 원수님처럼 선생님과 부모님들을 공경하겠습니다.”, “나도 원수님처럼 동무들과 친하게 지내겠습니다.”, “나는 커서 원수님을 보위하는 호위병이 되겠습니다.” 이런 구호들은 선생님을 따라 너무나 많이 불렀기 때문에 자다가 깨워서 물어봐도 술술 나올 정도이다. 북한의 어느 지역 어떤 유치원에 가서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이 나온다. 그래서 북한은 전체 인민이 하나의 가정이고 한 목소리를 낸다고 선전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군사놀이 시간이다. 두 편으로 갈라 2~30미터 앞에 미군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뛰어가서 몽둥이로 때리고 다시 달려와 다른 애에게 그 몽둥이를 넘겨주는 계주 놀이이다. 부르는 노래는 “꼬마 땅크 나간다. / 우리 땅크 나간다. / 미국놈을 쳐부수고 / 만세만세/공화국기 휘날리며 만세 만세!” 라는 내용의 일종의 아동 군가이다. 군사놀이 시간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항상 있는 편이다. 이 시간에는 첫째도 둘째도 미국놈과 남조선 괴뢰놈을 쳐부수는 증오 사상과 육체 훈련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유치원 시절을 추억하면 맛있는 간식을 먹던 생각도 난다. 유치원에는 ‘급식실’이 따로 없고 각 반의 교실(놀이방)로 운반해서 점심을 먹는다. 모든 어린이들이 식판을 앞에 놓고 원형으로 둘러앉으면 담임선생님이 그 안에서 몇몇 어린이들의 도움을 받아 배식을 한다. 메뉴로는 옥수수밥 한 공기, 미역 혹은 두붓국, 콩나물무침, 삶은 계란, 생선 반찬이 나오며 이틀에 한번 꼴로 식단이 바뀐다.

배식이 모두 끝나면 담임선생님의 선창에 따라 벽에 걸린 김일성의 초상화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 라는 합창으로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조용히 식사를 한다. 이런 구호는 수령이 바뀌면 자동적으로 바뀐다. 김일성이가 죽고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 원수님 고맙습니다!”로 바뀌었고 지금은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 원수님 고맙습니다!”로 바뀌었다. 북한 어린이들은 자기 아버지보다도 김일성을 더 고맙게 생각한다. 자기 아버지는 육체적 생명을 주었지만 수령은 조국과 사회를 만들어 주었기에 당연히 위대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전 조선인민군 중위 강세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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