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치장교의 양성과 ‘조선인민군당위원회’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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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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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직업군인을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장성급의 군 지휘관에 대한 꿈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군에서는 군사지휘관보다 정치장교를 원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유는 군대조직이라고 해도 군권보다는 당권이 기본이고 군 간부보다는 정치 간부가 직업상 안정적이고 권세가 높기 때문이다.
물론 부대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고에 대한 책임 처벌로 인생을 종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행정적인 사고에 비하면 그래도 양호한 수준이다.
나도 군에 갈 때까지만 해도 군단장 급은 아니더라도 사・여단장 급의 장성급 군 지휘관이 목표였다. 하지만 군복무를 하면서 나의 목표는 바뀌었다. 이는 부모님의 바람이기도 했다.
아버님은 농촌에서 리 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을 했는데 내가 군에 입대할 때부터 직업군인이 되어 농촌을 떠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 농촌 청년들이 도시로 대거 빠지면서 농촌 인력은 대폭으로 줄었다. 80년대 들어서면서 농촌 자녀는 대학을 졸업하든,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하든지 무조건 농촌으로 배치하는 것을 당의 방침과 노동행정규정으로 명시해 놓았다.
도시에 직업을 잡고 있던 사람들도 이와 같은 방침으로 농촌에 돌아왔다. 농촌에서 빠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업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농촌 자녀들은 도시에 비해 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으며 특히 직업군인에 대한 꿈을 많이 가진다.
하지만 도시에 비해 농촌 자녀가 직업군인이 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출생 성분(출생 당시 부친의 직업에 따라 군인, 노동, 농민, 사무원의 출생 성분으로 구분됨)이 농민은 북한에서 군인과 노동계급 다음가는 후진계급의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직업군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것은 형님이 직업군인이고, 큰아버지와 4촌 형 두 명이 직업군인이었기 때문이다.
군복무 7년차인 1993년, 나는 여단정치부의 호출을 받았다.
사실 며칠 전에 대대 정치부로부터 정치대학 추천자들에 대한 최종 심의를 여단에서 진행할 것이라는 암시를 받았었다.
여단에 도착한 심의대상자들은 정치부의 안내로 ‘김일성・김정일 혁명력사 연구실’에 들어섰다. 초조한 마음으로 면접 순번을 기다리는데 호출을 받았다. 방에 들어서니 여단 정치위원(정치조직책임자)과 여단 간부과장을 비롯한 여단 정치부 간부들이 심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차렷 자세로 도착보고를 하고 간부과장이 가리키는 좌석에 앉았다.
여단 간부과장은 대대정치부에서 올려 보낸 나의 정치조직생활 평정서와 추천 내용을 큰 소리로 낭독했다. 낭독이 끝나자 여단 정치위원이 먼저 질문한다.
“왜 정치대학을 지망했나?”
예상했던 질문이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를 정치사상적으로 목숨으로 옹호 보위하는 전초병이 되고 싶어 지망했습니다”
제일 까다로웠던 질문은 여단 조직부장의 질문이었다.
“허 동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당 조직에 털어놓지 못한 잘못이 뭐요?” 하는 질문이었다.
나의 학창시절은 물론 군복무 기간의 전 과정에 대한 생활 자료를 빠짐없이 가지고 있는 정치부 앞에서 없다고 하면 당을 속이는 일이 될 것이고, 또 있다고 하자니 어느 계선에서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나는 한참 만에 1991년 동계훈련기간에 있었던 사건을 털어놓았다. 야외훈련에 나가 술을 먹은 사건이었다. 다행히 들키지 않아 지금까지 비밀로 지켜오던 일이었다.
그런데 조직부장은 이미 그 사건을 알고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되어 누구와 함께 술을 먹었는지 사건 전말을 환히 꿰고 있는 것이다.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도 나의 솔직한 반성이 좋은 평판을 받았다.
대대정치부의 추천, 여단 당위원회의 심의 과정을 거쳐 나는 1993년 10월에 김일성정치대학에 입학하였다.
정치 간부양성 원칙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기본 척도로 보도록 되어 있는데 기본은 정치생활경력과 성분이 좋아야 한다. 물론 빽(뇌물과 안면)도 중요하고 기회도 잘 타야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것은 갖추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군 간부 추천에서 가족친척 관계는 가장 기본적이다. 군 간부와 정치 간부, 보위간부에 따라 고려되는 촌수가 다르다. 보위장교의 경우에는 친가 8촌, 외가 4촌까지이며 정치장교와 군사장교는 등급과 직무에 따라 고려하는 촌수가 늘어난다.
같은 등급의 정치장교와 군사장교인 경우 정치장교의 신분 관계를 더 많이 따진다. 군의 정치장교양성은 총정치국에서 관장하며 정치대학과 군・병종 사령부의 정치군관학교에서 전문교육을 실시한다.
또한 사회대학의 정치학부 졸업생들 중 성분이 좋은 사람들을 군에 입대시켜 정치장교 인력을 보충하는 경우도 있다.
- 계속 -
<허원국, 전 인민군 대위>
하지만 북한군에서는 군사지휘관보다 정치장교를 원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유는 군대조직이라고 해도 군권보다는 당권이 기본이고 군 간부보다는 정치 간부가 직업상 안정적이고 권세가 높기 때문이다.
물론 부대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고에 대한 책임 처벌로 인생을 종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행정적인 사고에 비하면 그래도 양호한 수준이다.
나도 군에 갈 때까지만 해도 군단장 급은 아니더라도 사・여단장 급의 장성급 군 지휘관이 목표였다. 하지만 군복무를 하면서 나의 목표는 바뀌었다. 이는 부모님의 바람이기도 했다.
아버님은 농촌에서 리 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을 했는데 내가 군에 입대할 때부터 직업군인이 되어 농촌을 떠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 농촌 청년들이 도시로 대거 빠지면서 농촌 인력은 대폭으로 줄었다. 80년대 들어서면서 농촌 자녀는 대학을 졸업하든,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하든지 무조건 농촌으로 배치하는 것을 당의 방침과 노동행정규정으로 명시해 놓았다.
도시에 직업을 잡고 있던 사람들도 이와 같은 방침으로 농촌에 돌아왔다. 농촌에서 빠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업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농촌 자녀들은 도시에 비해 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으며 특히 직업군인에 대한 꿈을 많이 가진다.
하지만 도시에 비해 농촌 자녀가 직업군인이 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출생 성분(출생 당시 부친의 직업에 따라 군인, 노동, 농민, 사무원의 출생 성분으로 구분됨)이 농민은 북한에서 군인과 노동계급 다음가는 후진계급의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직업군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것은 형님이 직업군인이고, 큰아버지와 4촌 형 두 명이 직업군인이었기 때문이다.
군복무 7년차인 1993년, 나는 여단정치부의 호출을 받았다.
사실 며칠 전에 대대 정치부로부터 정치대학 추천자들에 대한 최종 심의를 여단에서 진행할 것이라는 암시를 받았었다.
여단에 도착한 심의대상자들은 정치부의 안내로 ‘김일성・김정일 혁명력사 연구실’에 들어섰다. 초조한 마음으로 면접 순번을 기다리는데 호출을 받았다. 방에 들어서니 여단 정치위원(정치조직책임자)과 여단 간부과장을 비롯한 여단 정치부 간부들이 심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차렷 자세로 도착보고를 하고 간부과장이 가리키는 좌석에 앉았다.
여단 간부과장은 대대정치부에서 올려 보낸 나의 정치조직생활 평정서와 추천 내용을 큰 소리로 낭독했다. 낭독이 끝나자 여단 정치위원이 먼저 질문한다.
“왜 정치대학을 지망했나?”
예상했던 질문이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를 정치사상적으로 목숨으로 옹호 보위하는 전초병이 되고 싶어 지망했습니다”
제일 까다로웠던 질문은 여단 조직부장의 질문이었다.
“허 동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당 조직에 털어놓지 못한 잘못이 뭐요?” 하는 질문이었다.
나의 학창시절은 물론 군복무 기간의 전 과정에 대한 생활 자료를 빠짐없이 가지고 있는 정치부 앞에서 없다고 하면 당을 속이는 일이 될 것이고, 또 있다고 하자니 어느 계선에서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나는 한참 만에 1991년 동계훈련기간에 있었던 사건을 털어놓았다. 야외훈련에 나가 술을 먹은 사건이었다. 다행히 들키지 않아 지금까지 비밀로 지켜오던 일이었다.
그런데 조직부장은 이미 그 사건을 알고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되어 누구와 함께 술을 먹었는지 사건 전말을 환히 꿰고 있는 것이다.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도 나의 솔직한 반성이 좋은 평판을 받았다.
대대정치부의 추천, 여단 당위원회의 심의 과정을 거쳐 나는 1993년 10월에 김일성정치대학에 입학하였다.
정치 간부양성 원칙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기본 척도로 보도록 되어 있는데 기본은 정치생활경력과 성분이 좋아야 한다. 물론 빽(뇌물과 안면)도 중요하고 기회도 잘 타야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것은 갖추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군 간부 추천에서 가족친척 관계는 가장 기본적이다. 군 간부와 정치 간부, 보위간부에 따라 고려되는 촌수가 다르다. 보위장교의 경우에는 친가 8촌, 외가 4촌까지이며 정치장교와 군사장교는 등급과 직무에 따라 고려하는 촌수가 늘어난다.
같은 등급의 정치장교와 군사장교인 경우 정치장교의 신분 관계를 더 많이 따진다. 군의 정치장교양성은 총정치국에서 관장하며 정치대학과 군・병종 사령부의 정치군관학교에서 전문교육을 실시한다.
또한 사회대학의 정치학부 졸업생들 중 성분이 좋은 사람들을 군에 입대시켜 정치장교 인력을 보충하는 경우도 있다.
- 계속 -
<허원국, 전 인민군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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