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선서와 병사 시절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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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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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병훈련소 입소와 훈련
호송군관의 안내로 병영에 들어서니 군관들과 하사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기 바쁘게 사품 검열이 시작된다. 배낭은 물론 호주머니까지 뒤집고 속옷은 물론 청년동맹 맹원증 케이스까지 샅샅이 뒤졌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건네준 돈과 간식, 기념품 모두를 싹쓸이 해갔다.
장교들과 하사관들은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돌려준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회수당한 돈과 물건을 찾은 군인은 없다.
군대에 입대하자마자 이런 변을 당하니 너무나 어이가 없고 마음이 쓸쓸하여 모두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벌써부터 떠나온 고향과 부모님 형제들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병실(침실)에는 2개 소대 정도의 인원이 잘 수 있도록 2층 연결침대가 놓여 있었다. 잠자리는 볏겨를 넣어 만든 70센티 정도의 매트리스에 베개, 담요, 백포 1장이 고작이었다. 돈과 물건을 뺏긴 억울한 기분과 낯선 잠자리 탓에 뒤척거리며 잠 못 이루는 군인들이 태반이다.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처음으로 듣는 이상한 기상소리가 들린다. ‘중대 기상시간, 중대 기상시간!’
신병들은 일어나며 투덜거린다. 어떤 미친놈이냐고 욕을 하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군인이 되었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놀라 허둥지둥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기상부터 시작되는 일과는 학교를 갓 졸업한 우리에게 너무 생소하고 힘에 부치는 생활이었다.
신병훈련소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일과내무 생활이다.
신병훈련소에는 신병교육을 책임진 장교들과 고정사관들이 있다. 사관들은 한 개 분대씩 책임을 지고 일과를 진행하는데, 경쟁심이 대단했다.
나의 신병분대장은 평안북도 곽산 출신 김영택 중사였다. 분대원들은 그에게 ‘눈택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눈덩이에 살이 있는데다가 눈초리가 매섭고 독살스럽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
군복 착용법, 취침 시 군복 정돈법, 세면도구 정돈과 휴대법, 화장실 및 세면장 대열 인솔법, 침구류 정돈법을 비롯하여 일과내무 생활에 필요한 모든 동작을 부단한 반복으로 교육받고 숙련한다. 끊임없이 강요되는 반복 훈련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자다보니 신병에게는 배고픔보다도 그리운 것이 잠이다.
어느 날, 저녁점검이 다 끝나고 잠자리에 들어 곯아떨어졌는데 갑자기 ‘중대 기상!’ 하는 소리에 놀라 와닥닥 일어났다. 이유는 2층에 있는 3분대의 한 군인이 잠들기 전에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담뱃불을 채 끄지 않아 군복이 담뱃불에 그슬려 병실에 매캐한 연기가 찼던 것이다.
이것을 구실로 잡은 고정사관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한잠도 재우지 않고 침구류 정돈연습을 반복시켰다. 우리는 정치상학과 군사훈련에 지칠 대로 지친데다 잠을 제대로 못자 미칠 것만 같았고 담배를 피운 한 군인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니 죽이고 싶을 만큼 그 군인이 미웠다.
그런데 다음날 점심식사가 끝난 다음 사건이 터졌다. 중대 전체를 고생시킨 장본인이 없어진 것이다.
탈영은 신병대에서 가끔 일어나는 사건이기는 하지만 제때에 수습하지 못하면 상급기관으로부터 비판은 물론 그 누구든 책임지고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있을 만 한데는 다 뒤졌는데 그는 보이지 않았다. 저녁 식사시간이 다가오자 중대장은 수색을 중단하고 대열을 점검했다.
그런데 또 4명의 병사가 보이지 않았다. 저녁식사가 끝났지만 지휘관들은 우리를 더 이상 수색에 동원하지 않았다.
장교들과 사관들은 경비소대 인원과 함께 야간 수색을 벌여 저녁 9시쯤에 후에 없어졌던 4명의 군인을 발견하였다. 돈사 쪽에서 발견했는데 사연은 수색을 하다가 좀 쉰다는 것이 잠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3분대 군인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여단에 사건이 보고되고 여단에서는 경무대(헌병)에 의뢰하였다. 그런데 그는 여단에 보고된 그날 저녁에 중대로 돌아왔다. 분대장한테 매질을 당했지만 그 일로 중대에 집단 처벌은 하지 않았다. 그는 훗날 우리에게 농장마을에 나가 원 없이 잠을 실컷 자고 왔다고 했다.
신병 훈련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으면 고참(구대원)들도 신병 훈련만 통과하면 군복무 절반을 먹고 들어간다는 말을 하겠는가.
또 백포에 조선지도가 아니라 세계지도를 그려야 신병을 제대로 받았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너무 힘들고 지쳐 잠잘 때 오줌을 누는 친구들이 꽤 많은데 얼룩이 작게 나면 조선지도고 얼룩이 크게 나면 세계지도다. 나도 그 세계지도를 두 번 그렸다.
신병 훈련은 내무규정 생활의 숙련과 함께 정치・군사상학 및 훈련으로 이어진다. 신병 훈련에서 배우는 과목은 정치상학, 사격, 병기학, 대열, 체육, 행군, 반 화학, 공병을 비롯한 일반훈련 과목이다.
정치상학은 김일성・김정일의 군사상과 이론, 혁명 업적과 같은 위대성 학습이며 수령께 충직한 항일혁명 투사들과 ‘조국해방전쟁’ 참가자들의 투쟁사다.
또한 미・일・남조선의 삼각 군사동맹의 반 공화국 침략의 과거사를 통한 대적의식 고취와 정신교육을 진행한다. 이밖에 사회주의 애국주의 고취, 군민일치, 관병일치, 상하 일치와 같은 도덕정신교육을 진행한다.
정치상학은 대부분 신병훈련소 ‘김일성・김정일 혁명사상교양실’에서 진행된다. 신병훈련소는 대부분 대대 급 병영 규모인데, 200~300명 수용 규모의 교양실을 갖고 있다. 정치상학은 대대 전체 인원이 하는 경우도 있고, 중대별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정치상학은 힘든 육체적 부담이 있는 야외 군사훈련과는 달리 상학실(강의실)에 앉아서 하는 것이어서 편한 것 같지만 충성경력과 잇닿은 정신적 고뇌의 연속이다.
기본은 정치상학 노트 정리인데, 훈련과 반복 동작으로 지친 대부분의 군인들은 정치상학 시간에 잠을 청한다. 하지만 노트 정리를 위해서 누구인가는 반드시 필기를 해야 한다. 군인들은 분대 단위로 순번을 정하여 근무 조직과 같이 필기를 할 병사를 정한다.
정치상학에 대한 북한 군인들의 심리는 연령에 따라 다르다. 보통 신병 훈련소와 구분대의 신참 시절에는 대부분 정치상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군에 오면 으례히 진행하는 보통 상학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복무연한이 지나 노동당 입당을 위한 정치생활 경력을 준비할 시기에 오면 누구나 정치상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다. 군인들은 ‘한방에 인생역전!’이라는 말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얘기하는 ‘한방’과는 의미가 다르다. 북한군에서의 한방은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최고의 충성심을 보일 기회를 잡아 영웅으로 부상하는 것이다.
불붙는 병영에서 인명을 구하는 병사보다는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각병실의 걸린 액자 사진)를 꺼내들고 나오는 병사가 제일가는 충신이고 영웅이다. 그래서 군인들은 ‘고달프고 구질구질한 인생, 한방에 해결하게 불이라도 콱 일어나라! 인생 한번 바꾸고 싶다’는 말을 한다. 또한 김정일을 만날 기회도 있을 수 있으니 좋은 말을 생각해두라는 서로의 충언도 한다.
정치상학은 신병교육대의 정치장교가 진행하지만 간혹 군사지휘관이나 여단이나 사령부에서 파견된 정치장교들이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신병훈련 기간 정치상학의 중점은 ‘최고사령관동지를 위하여 한목숨 바쳐 싸우자!’의 기본 사명과 ‘4대 군사로선’과 ‘5대 훈련방침’과 같은 김일성・김정일의 군사사상과 이론이다. 정신교육의 핵심은 조국과 국민을 지키는 군대보다는 수령과 당을 보위하는 군대라는 사명감을 주입시키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다. 제일 헷갈리는 것은 수령과 조국이다.
알고 있는 조국은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다정한 이웃이 사는 정다운 고향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수령이 곧 조국이라니 표상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수령도 늙어 죽기 마련인데, 그러면 조국도 없어지는 것일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령을 위해 싸워야 하고 죽어도 수령을 위해 죽을 수밖에 없다는 피할 수 없는 군인의 운명 같은 것이었다.
군사상학은 별도로 꾸려진 상학실과 야외에서 진행한다. 군사 상학실에는 병기 구조와 전투 장비의 구조와 같은 게시물이 전시되어 있다.
제일 힘든 것이 행군과 대열훈련, 반 화학훈련이었다. 제일 힘든 행군훈련은 중량 20킬로의 배낭을 메고 자동소총과 예비탄창 등 개인전투 장비를 휴대하고 구보로 달려 4km 거리를 20분에 통과를 해야 하는 ‘무장 강행군’이었다. 신병훈련소와는 달리 일반 구분대에서는 4킬로 무장 강행군을 보장하기 위한 대열 편성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군은 연대 이상급을 부대, 그 이하는 구분대라고 한다.
대열의 제일 앞에는 균형적인 속도 조절을 할 수 있는 3~5년차 군인들을 세우고 그 다음 줄은 갓 입대한 병사들, 그 뒤로는 단련된 고참(구대원)들을 배치한다. 신병들이 힘들어하면 뒤의 선임들이 등 뒤를 밀어주거나 배낭을 덜어준다.
하지만 신병훈련소에서의 ‘무장 강행군’은 군 경험이 없는 신입병사뿐이어서 오직 자기의 힘으로 이겨내야만 한다. 목에서 쇠 비린내가 나고 군복은 땀에 젖고 발을 디딜 때마다 땀방울이 빗물처럼 땅에 떨어진다. 훈련이 끝나면 군복은 소금기로 하얗게 얼룩이 지고 얼굴에서는 소금가루가 쌓여 털어낼 정도다. 옷에는 짠 냄새가 푹 밴다.
반 화학훈련은 방독면을 쓰고 무기와 장비를 휴대한 채 4km 구간을 30분 동안에 도착하여야만 ‘우’를 받을 수 있다.
반 화학훈련 도중에 졸도하는 병사들이 많아 군의소(의병소) 후송 차량이 동행한다. 신병교육을 담당한 군관이나 하사관들이 대열의 앞뒤에 배치되어 훈련을 보장한다. 대부분 30분을 경과하여 40분~50분대에 들어온다.
보통 100명 정도의 중대가 반 화학훈련을 진행하면 30~40% 정도의 인원이 탈락되어 군의소(의병소) 차량 신세를 진다. 대열 훈련 역시 만만치 않다. 정보행진, 평보행진, 제식동작 등 대열 동작의 하나하나를 끊임없는 숙련의 방법으로 해결한다.
훈련이 끝나면 근육 통증으로 다리가 저리고 모든 근육이 팽창되어 살짝 다치기만 해도 고통의 전륜이 일어난다.
나는 그나마 군사전문대 2년 과정에 전술, 사격, 체육, 대열을 비롯하여 기초적인 군사훈련과동작을 배운 후라 다른 신병들보다는 한참 선생이었다.
나는 이런 힘겨운 4개월의 신병훈련 과정을 거쳐 드디어 기본전투단위에 배치받기에 앞서 여단 군인회관에 모여 군인선서를 다졌다.
군인선서는 정면에 군기(부대기)를 반출하여 놓고 한 군인이 선서문을 읽으면 전체 군인들이 따라 읽는 식으로 진행하고 한 사람씩 나와 서명을 한다. 군에 입대하여 군종, 병종에 따른 부대 배치는 신병훈련소에서 군인선서를 한 다음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북한군 군인선서 내용은 대략 이렇다.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으로서
항일의 빛나는 혁명 전통을 이어받은 영웅적 조선인민군에 입대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미일제국주의자들과 남조선괴뢰도당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가지고
전투정치훈련에 적극 참가함으로써 사회주의 조국을 철옹성 같이 보위할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
나는 10대 준수 사항을 구현하여 모든 군무생활을 군사규정과 교범의 요구대로 조직진행하며
국가 비밀, 당 조직비밀, 군사비밀을 철저히 준수하겠습니다.
나는 전투정치훈련에 빠짐없이 참가하여 열심히 공부하여 자신을 ‘일당백’의 싸움꾼, 조국통일의 결사대로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의 생명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이 선서에 끝까지 충실할 것을 맹세하며 만약 이를 위반할 때에는 조국과 인민 앞에 엄격한 법적 제재를 받겠다는 것을 엄숙히 서약합니다.”
- 계속 -
<김영운, 전 인민군 중사>
호송군관의 안내로 병영에 들어서니 군관들과 하사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기 바쁘게 사품 검열이 시작된다. 배낭은 물론 호주머니까지 뒤집고 속옷은 물론 청년동맹 맹원증 케이스까지 샅샅이 뒤졌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건네준 돈과 간식, 기념품 모두를 싹쓸이 해갔다.
장교들과 하사관들은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돌려준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회수당한 돈과 물건을 찾은 군인은 없다.
군대에 입대하자마자 이런 변을 당하니 너무나 어이가 없고 마음이 쓸쓸하여 모두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벌써부터 떠나온 고향과 부모님 형제들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병실(침실)에는 2개 소대 정도의 인원이 잘 수 있도록 2층 연결침대가 놓여 있었다. 잠자리는 볏겨를 넣어 만든 70센티 정도의 매트리스에 베개, 담요, 백포 1장이 고작이었다. 돈과 물건을 뺏긴 억울한 기분과 낯선 잠자리 탓에 뒤척거리며 잠 못 이루는 군인들이 태반이다.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처음으로 듣는 이상한 기상소리가 들린다. ‘중대 기상시간, 중대 기상시간!’
신병들은 일어나며 투덜거린다. 어떤 미친놈이냐고 욕을 하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군인이 되었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놀라 허둥지둥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기상부터 시작되는 일과는 학교를 갓 졸업한 우리에게 너무 생소하고 힘에 부치는 생활이었다.
신병훈련소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일과내무 생활이다.
신병훈련소에는 신병교육을 책임진 장교들과 고정사관들이 있다. 사관들은 한 개 분대씩 책임을 지고 일과를 진행하는데, 경쟁심이 대단했다.
나의 신병분대장은 평안북도 곽산 출신 김영택 중사였다. 분대원들은 그에게 ‘눈택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눈덩이에 살이 있는데다가 눈초리가 매섭고 독살스럽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
군복 착용법, 취침 시 군복 정돈법, 세면도구 정돈과 휴대법, 화장실 및 세면장 대열 인솔법, 침구류 정돈법을 비롯하여 일과내무 생활에 필요한 모든 동작을 부단한 반복으로 교육받고 숙련한다. 끊임없이 강요되는 반복 훈련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자다보니 신병에게는 배고픔보다도 그리운 것이 잠이다.
어느 날, 저녁점검이 다 끝나고 잠자리에 들어 곯아떨어졌는데 갑자기 ‘중대 기상!’ 하는 소리에 놀라 와닥닥 일어났다. 이유는 2층에 있는 3분대의 한 군인이 잠들기 전에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담뱃불을 채 끄지 않아 군복이 담뱃불에 그슬려 병실에 매캐한 연기가 찼던 것이다.
이것을 구실로 잡은 고정사관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한잠도 재우지 않고 침구류 정돈연습을 반복시켰다. 우리는 정치상학과 군사훈련에 지칠 대로 지친데다 잠을 제대로 못자 미칠 것만 같았고 담배를 피운 한 군인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니 죽이고 싶을 만큼 그 군인이 미웠다.
그런데 다음날 점심식사가 끝난 다음 사건이 터졌다. 중대 전체를 고생시킨 장본인이 없어진 것이다.
탈영은 신병대에서 가끔 일어나는 사건이기는 하지만 제때에 수습하지 못하면 상급기관으로부터 비판은 물론 그 누구든 책임지고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있을 만 한데는 다 뒤졌는데 그는 보이지 않았다. 저녁 식사시간이 다가오자 중대장은 수색을 중단하고 대열을 점검했다.
그런데 또 4명의 병사가 보이지 않았다. 저녁식사가 끝났지만 지휘관들은 우리를 더 이상 수색에 동원하지 않았다.
장교들과 사관들은 경비소대 인원과 함께 야간 수색을 벌여 저녁 9시쯤에 후에 없어졌던 4명의 군인을 발견하였다. 돈사 쪽에서 발견했는데 사연은 수색을 하다가 좀 쉰다는 것이 잠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3분대 군인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여단에 사건이 보고되고 여단에서는 경무대(헌병)에 의뢰하였다. 그런데 그는 여단에 보고된 그날 저녁에 중대로 돌아왔다. 분대장한테 매질을 당했지만 그 일로 중대에 집단 처벌은 하지 않았다. 그는 훗날 우리에게 농장마을에 나가 원 없이 잠을 실컷 자고 왔다고 했다.
신병 훈련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으면 고참(구대원)들도 신병 훈련만 통과하면 군복무 절반을 먹고 들어간다는 말을 하겠는가.
또 백포에 조선지도가 아니라 세계지도를 그려야 신병을 제대로 받았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너무 힘들고 지쳐 잠잘 때 오줌을 누는 친구들이 꽤 많은데 얼룩이 작게 나면 조선지도고 얼룩이 크게 나면 세계지도다. 나도 그 세계지도를 두 번 그렸다.
신병 훈련은 내무규정 생활의 숙련과 함께 정치・군사상학 및 훈련으로 이어진다. 신병 훈련에서 배우는 과목은 정치상학, 사격, 병기학, 대열, 체육, 행군, 반 화학, 공병을 비롯한 일반훈련 과목이다.
정치상학은 김일성・김정일의 군사상과 이론, 혁명 업적과 같은 위대성 학습이며 수령께 충직한 항일혁명 투사들과 ‘조국해방전쟁’ 참가자들의 투쟁사다.
또한 미・일・남조선의 삼각 군사동맹의 반 공화국 침략의 과거사를 통한 대적의식 고취와 정신교육을 진행한다. 이밖에 사회주의 애국주의 고취, 군민일치, 관병일치, 상하 일치와 같은 도덕정신교육을 진행한다.
정치상학은 대부분 신병훈련소 ‘김일성・김정일 혁명사상교양실’에서 진행된다. 신병훈련소는 대부분 대대 급 병영 규모인데, 200~300명 수용 규모의 교양실을 갖고 있다. 정치상학은 대대 전체 인원이 하는 경우도 있고, 중대별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정치상학은 힘든 육체적 부담이 있는 야외 군사훈련과는 달리 상학실(강의실)에 앉아서 하는 것이어서 편한 것 같지만 충성경력과 잇닿은 정신적 고뇌의 연속이다.
기본은 정치상학 노트 정리인데, 훈련과 반복 동작으로 지친 대부분의 군인들은 정치상학 시간에 잠을 청한다. 하지만 노트 정리를 위해서 누구인가는 반드시 필기를 해야 한다. 군인들은 분대 단위로 순번을 정하여 근무 조직과 같이 필기를 할 병사를 정한다.
정치상학에 대한 북한 군인들의 심리는 연령에 따라 다르다. 보통 신병 훈련소와 구분대의 신참 시절에는 대부분 정치상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군에 오면 으례히 진행하는 보통 상학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복무연한이 지나 노동당 입당을 위한 정치생활 경력을 준비할 시기에 오면 누구나 정치상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다. 군인들은 ‘한방에 인생역전!’이라는 말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얘기하는 ‘한방’과는 의미가 다르다. 북한군에서의 한방은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최고의 충성심을 보일 기회를 잡아 영웅으로 부상하는 것이다.
불붙는 병영에서 인명을 구하는 병사보다는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각병실의 걸린 액자 사진)를 꺼내들고 나오는 병사가 제일가는 충신이고 영웅이다. 그래서 군인들은 ‘고달프고 구질구질한 인생, 한방에 해결하게 불이라도 콱 일어나라! 인생 한번 바꾸고 싶다’는 말을 한다. 또한 김정일을 만날 기회도 있을 수 있으니 좋은 말을 생각해두라는 서로의 충언도 한다.
정치상학은 신병교육대의 정치장교가 진행하지만 간혹 군사지휘관이나 여단이나 사령부에서 파견된 정치장교들이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신병훈련 기간 정치상학의 중점은 ‘최고사령관동지를 위하여 한목숨 바쳐 싸우자!’의 기본 사명과 ‘4대 군사로선’과 ‘5대 훈련방침’과 같은 김일성・김정일의 군사사상과 이론이다. 정신교육의 핵심은 조국과 국민을 지키는 군대보다는 수령과 당을 보위하는 군대라는 사명감을 주입시키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다. 제일 헷갈리는 것은 수령과 조국이다.
알고 있는 조국은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다정한 이웃이 사는 정다운 고향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수령이 곧 조국이라니 표상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수령도 늙어 죽기 마련인데, 그러면 조국도 없어지는 것일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령을 위해 싸워야 하고 죽어도 수령을 위해 죽을 수밖에 없다는 피할 수 없는 군인의 운명 같은 것이었다.
군사상학은 별도로 꾸려진 상학실과 야외에서 진행한다. 군사 상학실에는 병기 구조와 전투 장비의 구조와 같은 게시물이 전시되어 있다.
제일 힘든 것이 행군과 대열훈련, 반 화학훈련이었다. 제일 힘든 행군훈련은 중량 20킬로의 배낭을 메고 자동소총과 예비탄창 등 개인전투 장비를 휴대하고 구보로 달려 4km 거리를 20분에 통과를 해야 하는 ‘무장 강행군’이었다. 신병훈련소와는 달리 일반 구분대에서는 4킬로 무장 강행군을 보장하기 위한 대열 편성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군은 연대 이상급을 부대, 그 이하는 구분대라고 한다.
대열의 제일 앞에는 균형적인 속도 조절을 할 수 있는 3~5년차 군인들을 세우고 그 다음 줄은 갓 입대한 병사들, 그 뒤로는 단련된 고참(구대원)들을 배치한다. 신병들이 힘들어하면 뒤의 선임들이 등 뒤를 밀어주거나 배낭을 덜어준다.
하지만 신병훈련소에서의 ‘무장 강행군’은 군 경험이 없는 신입병사뿐이어서 오직 자기의 힘으로 이겨내야만 한다. 목에서 쇠 비린내가 나고 군복은 땀에 젖고 발을 디딜 때마다 땀방울이 빗물처럼 땅에 떨어진다. 훈련이 끝나면 군복은 소금기로 하얗게 얼룩이 지고 얼굴에서는 소금가루가 쌓여 털어낼 정도다. 옷에는 짠 냄새가 푹 밴다.
반 화학훈련은 방독면을 쓰고 무기와 장비를 휴대한 채 4km 구간을 30분 동안에 도착하여야만 ‘우’를 받을 수 있다.
반 화학훈련 도중에 졸도하는 병사들이 많아 군의소(의병소) 후송 차량이 동행한다. 신병교육을 담당한 군관이나 하사관들이 대열의 앞뒤에 배치되어 훈련을 보장한다. 대부분 30분을 경과하여 40분~50분대에 들어온다.
보통 100명 정도의 중대가 반 화학훈련을 진행하면 30~40% 정도의 인원이 탈락되어 군의소(의병소) 차량 신세를 진다. 대열 훈련 역시 만만치 않다. 정보행진, 평보행진, 제식동작 등 대열 동작의 하나하나를 끊임없는 숙련의 방법으로 해결한다.
훈련이 끝나면 근육 통증으로 다리가 저리고 모든 근육이 팽창되어 살짝 다치기만 해도 고통의 전륜이 일어난다.
나는 그나마 군사전문대 2년 과정에 전술, 사격, 체육, 대열을 비롯하여 기초적인 군사훈련과동작을 배운 후라 다른 신병들보다는 한참 선생이었다.
나는 이런 힘겨운 4개월의 신병훈련 과정을 거쳐 드디어 기본전투단위에 배치받기에 앞서 여단 군인회관에 모여 군인선서를 다졌다.
군인선서는 정면에 군기(부대기)를 반출하여 놓고 한 군인이 선서문을 읽으면 전체 군인들이 따라 읽는 식으로 진행하고 한 사람씩 나와 서명을 한다. 군에 입대하여 군종, 병종에 따른 부대 배치는 신병훈련소에서 군인선서를 한 다음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북한군 군인선서 내용은 대략 이렇다.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으로서
항일의 빛나는 혁명 전통을 이어받은 영웅적 조선인민군에 입대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미일제국주의자들과 남조선괴뢰도당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가지고
전투정치훈련에 적극 참가함으로써 사회주의 조국을 철옹성 같이 보위할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
나는 10대 준수 사항을 구현하여 모든 군무생활을 군사규정과 교범의 요구대로 조직진행하며
국가 비밀, 당 조직비밀, 군사비밀을 철저히 준수하겠습니다.
나는 전투정치훈련에 빠짐없이 참가하여 열심히 공부하여 자신을 ‘일당백’의 싸움꾼, 조국통일의 결사대로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의 생명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이 선서에 끝까지 충실할 것을 맹세하며 만약 이를 위반할 때에는 조국과 인민 앞에 엄격한 법적 제재를 받겠다는 것을 엄숙히 서약합니다.”
- 계속 -
<김영운, 전 인민군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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