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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가르치는 ‘미일침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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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1 13:05 1,79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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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김일성 가문을 가장 위대하고 혁명적인 가정, 외세의 침략에 가장 적극적으로 맞서 싸운 영웅으로 묘사한다. 북한에서 가리키는 ‘미일침략사’는 김일성 가문의 투쟁 역사와 함께 공존한다.
 
내가 북한에서 자라면서 받은 미국의 침략역사는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부터 시작된다.
 
내용은 미국이 조선을 탐내 대동강 하류를 타고 평양 인근까지 들어와 주민을 살육하고 노략질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일성의 증조할아버지인 김응우가 평양 시민들을 불러 일으켜 ‘셔먼호’를 불태워 대동강에 수장시켰다는 내용이다.
 
역사책에 김응우가 1845년생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21살의 나이에 의병 대장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북한에서 ‘셔먼호’ 격침에 대한 영화를 제작했는데, 김응우로 나오는 사람은 분명 늙은 의병장이다.
 
지금 생각하면 21살의 나이에 평양 시민 전체를 아우르는 의병장이었다는 사실 자체도 의심스럽지만 생물학적 나이에 비해 늙은 주역을 내세워 광적인 우상화 영화를 만든 배경이 더더욱 의심스럽다. 너무 젊은 사람을 내세우기가 멋쩍었던 것 같다.
 
미국의 침략역사를 보여주는 기록영상물도 많다.
 
인디언을 멸살시키고 그 무덤 위에 세워진 미국의 역사는 참혹한 전쟁과 침략의 역사로 교육한다.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 전쟁에서 이길 때마다 새겨진 것이 성조기의 별의 개수라고 교육한다.
 
조선에 대한 미국의 침략역사는‘셔먼호’로 시작하여 선교사에 의한 종교역사, 남조선강점과 6・25전쟁, 미군 주둔과 남조선 식민지로 이어진다. 시작은 19세기 말, 조선을 무력으로 집어 삼키려고 ‘셔먼호’간첩선을 파견했지만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를 대장으로 하는 평양 시민의 노도와 같은 항거에 겁을 먹고 침략계획을 철회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꾼 계획이 종교라는 것이다. 조선에 많은 선교사를 파견하여 미국을 하나님으로 구세주로 찬양하는 종교를 퍼뜨려 침략의 발판을 닦으려 했다는 것이다. 미국 선교사들은 조선에서 앞에서는 구세주 행세를 했지만 가는 곳마다 병원과 교회를 지어 놓고 수많은 조선인을 인체 실험과 피를 뽑아 살해했다고 한다.
 
나도 학창시절 <승냥이>라는 영화에서 미국 선교사들의 치떨리는 만행에 분노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불쌍하여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전쟁영화를 보면서도 주민을 살육하고 어린이의 가슴에 총을 쏘고 너털웃음을 짓는 미군에 대한 분노와 복수의 마음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포악하고 제일 강대국이라고 우쭐대던 미국이 위대한 김일성 가문에 의해 ‘셔먼호’의 격침과 6・25전쟁의 대참패와 같은 수치의 역사를 기록했다고 선전한다.
 
6・25전쟁은 조선에 대한 미국의 침략사에서 가장 많이 취급된다. 아시아 침략의 전초 기지로 조선을 지목한 미국이 38선을 고안해 냈고 핵폭탄으로 일본을 항복시키는 대가로 남한을 점령하고 침략 계획을 세워 6・25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또한 6・25전쟁의 패전을 만회하려고 남조선을 신식민지로 전락시켰고 미군 주둔과 군 지휘권을 거머쥐고 현재도 침략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이다.
 
12년간 군 복무를 하면서 북한 당국이 가리킨 미국의 침략역사를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전역을 한 다음 사회에서 남한에 대한 실상을 알면서부터 그렇게 포악한 미국의 식민지라는 남한이 저렇게 발전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쫄쫄 굶주리는 양반보다는 머슴이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북한의 말대로 남한이 미국의 식민지라도 잘 사니까 부럽다는 의미였다.
 
북한이 전하는 조선에 대한 일제 침략역사는 ‘임진왜란’의 과거사와‘청일전쟁’으로 시작하는 근대사로 이어진다.
 
일본은 수백 년 전부터 조선에 대한 침략전쟁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참화를 들씌운 숙적이며 36년의 식민지 강점을 강요하고 국민의 피땀과 고혈을 짜낸 극악한 원수이며, 지금도 ‘대동아공영권’의 침략 야망을 위해 군국주의 제패를 꾀하는 철천지원수로 주장한다.
 
북한이 가리키는 일본 침략사와 남한에서 알게 된 일본 침략사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도 있다. 임진왜란의 명장 소개에서 이순신보다는 평양성의 김응서 장군을 더 내세운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만든 <평양성 사람들>이라는 사극을 보더라도 김응서 장군이 평양성을 강점한 소소배라는 적 장군을 무찔러 일본 패전을 이끌었다고 묘사한다.
 
근대사에서 가장 많이 취급하는 것은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다. 이유는 일제 강점시기가 날조된 김일성 일가의 반일투쟁사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김일성 일가와 연관된 반일투쟁사는 곧 교과서이고 법이다. 일제의 침략성, 반동성, 악랄성, 잔인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반드시 김일성 가문의 애국주의와 혁명성, 헌신성, 투쟁 업적을 함께 인식해야만 한다.
 
일본에 항복한 을사오적이나 일제가 감행한 역사적 사실은 비교적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일제 침략에 항거한 반일투쟁사는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한다. 일제를 반대하는 3.1운동 봉기도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이 ‘조선국민회’를 만들어 선두에서 지휘를 했고, 7살의 김일성도 참가했다고 주장한다.
 
김일성은 14살에 나라를 찾겠다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갔으며, 15살의 어린나이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여 무장투쟁 노선을 제기했으며, 18세에 ‘조선혁명군’과 공산당 조직을 만들었으며 20세에 ‘항일인민유격대’를 창건했다고 선전한다. 또한 김일성의 조부와 외조부, 양친, 동생을 비롯한 온 가문은 반일혁명사에 특출한 공헌을 한 애국자로 지칭한다.
 
물론 리준, 안중근과 일제침략에 항거한 독립군 대장들과 의병장들에 대한 반일열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전하기는 하지만 모두 수령의 탁월한 영도를 받지 못해 실패한 패전 장군으로 매도한다. 오직 김일성만이 올바른 지도사상과 노선을 제기하여 반일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북한 주민은 없다. 아니 인정해서가 아니라 부정할 수 없는 운명에 순종할 수밖에 없다.
 
내가 군복무를 하던 2002년 사단 군의소(의병소) 군의관 한명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진 사건이 있었다. 북한에서 배워준 반일투쟁사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간밤에 정치범으로 이송되었던 것이다.
 
후에 안 일이지만 군의관은 김일성의 부친이 ‘조선국민회’를 결성한 것이 아니며 3.1운동을 지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포했다는 죄로 정치범이 된 것이다. 어디서 그런 역사 내용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아도 아는 체를 말아야 했다.
 
이렇듯 북한은 미・일 침략사를 김일성 가문의 반미・반일 투쟁사와 결합하여 진행한다. 하지만 미・일 침략사는 옳든 아니든 정설은 없고 상상으로 역사를 만들어도 별 문제는 없지만 반미・반일사만은 정해진 교과서대로 인식해야 하고 믿어야 한다. 진실보다는 필요한 것을 쫓는 것이 살아야 할 이유이고 덕이기 때문이다.
 
<황호남, 전 인민군 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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