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사령부 훈련 판정과 軍의 충성 경쟁

운영자
2014-05-18 13:08
1,740
0
본문
인민군에서 최상의 훈련 검열은 바로 최고사령부 훈련 판정이다. 이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전투정치훈련 명령에 대한 총화사업이다.
항상 긴장감 속에 진행되는 인민군의 훈련은 최고사령관의 훈련 명령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최고사령부 훈련 판정은 동계훈련(1기 훈련)과 하계훈련(2기 훈련)에 대한 총화사업으로 진행하는 경우와 1년 동안 종합적인 훈련판정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훈련 종료 시기에 인민무력부에서는 최고사령부 훈련 명령에 따른 훈련판정 요강을 작성한다.
총참모부에서는 판정 계획을 수립하여 군・병종 사령부에 전신 지시로 하달한다. 훈련판정 성원은 인민무력부와 총참모부, 총정치국의 합동 인원으로 구성된다.
무력부에서 작성한 훈련판정 요강을 보면 부대의 군관, 군인들의 정치사상적 준비 정도와 정치사업 실태, 군사훈련 집행에 따른 전투동원 준비 상태, 부대의 후방사업, 부대꾸리기 등 부대 안의 전반 사업을 검열하고 판정하도록 되어 있다. 최고사령부 훈련판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최고사령관을 모시는 안전보위사업이다.
우선 김정일을 임의의 순간에 부대에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가가 기본이다. 여기서 핵심은 무기, 탄약, 폭발물의 수량 실사와 상태에 대한 검열이다. 그 다음 정치부 각 부서의 사업 실태를 조사하고 김정일의 지시와 총정치국 지시의 집행정형 상태를 총화 한다.
나는 1998년 3월, 중대장으로 있을 때 최고사령부 훈련판정을 받았다. 그 해가 나에게는 군에서의 마지막 해이기도 했다. 90년대 들이닥친 국가적인 경제난은 군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부대는 동계훈련에 진입했다. 하지만 당시 어느 부대를 막론하고 군사정치훈련 일정을 집행한 단위는 드물다.
부대마다 영양실조에 걸린 허약 환자들이 차고 넘쳤고 모든 운송수단은 가동을 멈췄다. 중대에는 무단탈영자들이 절반이 넘는 날도 있었다. 매일 일어나는 도난사고와 무단 탈영으로 장교들은 훈련 일정 보다는 탈영자 호송이나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다녔다.
나도 그때 보름이 멀다하고 탈영자를 찾아 출장을 다녔다. 3월 21일 저녁이었다. 중대에 비상소집이 발령됐다. 대대지휘부로부터 최고사령부 훈련판정 성원들이 군단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기 때문에 언제인가 들이닥칠 일이라고 생각은 했다.
나는 중대에서 온 연락병의 호출을 받고 자택에서 부대로 나왔다. 저녁 11시 30분경이었는데 저녁 점검시간 후 30분이 지난 시점이다. 병영에 있는 중대 인원은 40% 정도밖에 안됐다. 중대 86명중 62명이 저녁점검에 참가를 했는데, 30명 정도의 군인들만 병영에 남고 나머지는 무단 탈영을 한 것이다.
온밤을 밖에서 떨며 처벌을 받다가 새벽 4시경에야 병영으로 들어왔다. 정치지도원과 장교들은 모두 중대군인들을 찾아 밤길을 떠났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아침 기상시간이 다가오자 밖에 나갔던 군인들이 하나 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온밤 도둑질을 다니거나 주민거주 지역에 나가 잤던 것이다.
첫 비상소집부터 잘못 걸려든 것이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대대 상학 준비검열 모임에 참가하니 대대장은 오늘부터 여단 전체가 최고사령부 훈련판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매해 있는 훈련판정이기는 하지만 첫 단추를 잘 못 꿰서 그런지 마음이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이 터졌다. 무기와 탄약, 수류탄 실사를 했는데 수류탄 4발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총탄도 50발정도 모자랐다. 여단 보위부와 군단 보위부까지 동원되어 없어진 수류탄과 분실된 실탄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수류탄은 찾았지만 실탄은 찾지 못하였다.
수류탄은 2소대 하사관이 감추었는데 이유는 고기잡이용으로 쓰려 했던 것이다. 실탄은 누구인가 도둑사냥을 하려고 뽑았겠는데 끝내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당시 대대에서까지 병기참모와 짜고 훈련용 실탄을 조절하여 불법 사냥을 하는 일도 있었고 중대 장교들도 단독으로 실탄을 꺼내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사냥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검열 성원들에게 적발된 실탄분실 사건은 김정일 신변 보호의 허점으로 연결되면서 정치적 문제로 번졌다. 누구든 책임을 져야 한다. 당시 나는 중대 관리를 잘못하고 중대 군인들이 사고를 많이 친 것으로 하여 두 차례의 엄중경고 처벌을 받은 상태였다. 나는 그해 6월 제대명령을 받았다.
처벌제대가 아닌 생활제대(업무상 사정이 있는 전역)였다. 힘들고 고달픈데다가 너무 불안해 더 이상 군에 있을 자신감이 없었다. 하여 군단 간부에 뇌물상납까지 하며 ‘제대 작전’을 추진했다. 군사훈련판정은 부대의 전투동원준비상태와 군인들의 전투능력 판정이 기본이다.
정치부와 참모부, 후방부 등 각 지휘부서와 중대전투단위의 동원 능력과 상태를 판정한다. 인민군 전체 훈련판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최고사령부 훈련판정이다. 왜냐하면 이것을 잘 받는가, 못 받는가에 따라 지휘관, 정치책임자의 전투지휘 능력과 정치사업 능력이 평가되기 때문이다.
군사지휘관들과 정치책임자들은 최고사령부 훈련판정을 통과하고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최대의 노력과 심혈을 기울인다. 특히 최고사령부 훈련판정 결과는 성과와 결함 부분을 종합하여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되기 때문에 실제로 운명의 행운과 몰락의 시금석이나 같은 것이다.
최고사령부 훈련판정 결과가 좋게 나오느냐, 나쁘게 나오느냐 하는 것은 최고사령관에게 기쁨을 드리느냐, 심려를 끼치느냐 하는 운명적인 문제다. 결과는 훈련판정 성원들의 손끝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지휘관들은 최고사령부 훈련판정을 받기 위해 1개월 전 부터 판정 성원들에게 상납할 뇌물마련에 바쁘다.
뇌물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질적으로 준비하는가에 따라 판정 결과의 승패가 달려 있다. 판정 성원들에게 상납한 뇌물은 군인들의 보급 및 후방물자에서 충당된다. 그러다보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군인들에게 돌아간다.
대대는 최고사령부 훈련판정 준비를 위해 해마다 여단으로부터 별도의 과제를 받는다. 내가 상급으로부터 빠지지 않고 받은 과제는 마른 오징어였다. 바다에 나가서 잡는 것이 아니라 돈을 만들어 사야 한다.
이를 위해 대대는 겨울용 화목을 많이도 팔았다. 또한 대대에 잘 사는 집 자녀들을 골라 물자구입 명분으로 휴가를 주어 오징어와 돈을 걷어 들였다. 훈련판정 성원들 대부분이 평양 사람들이다 보니 수산물에 오금을 못 썼던 것이다.
<김광일, 전 인민군 대위>
항상 긴장감 속에 진행되는 인민군의 훈련은 최고사령관의 훈련 명령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최고사령부 훈련 판정은 동계훈련(1기 훈련)과 하계훈련(2기 훈련)에 대한 총화사업으로 진행하는 경우와 1년 동안 종합적인 훈련판정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훈련 종료 시기에 인민무력부에서는 최고사령부 훈련 명령에 따른 훈련판정 요강을 작성한다.
총참모부에서는 판정 계획을 수립하여 군・병종 사령부에 전신 지시로 하달한다. 훈련판정 성원은 인민무력부와 총참모부, 총정치국의 합동 인원으로 구성된다.
무력부에서 작성한 훈련판정 요강을 보면 부대의 군관, 군인들의 정치사상적 준비 정도와 정치사업 실태, 군사훈련 집행에 따른 전투동원 준비 상태, 부대의 후방사업, 부대꾸리기 등 부대 안의 전반 사업을 검열하고 판정하도록 되어 있다. 최고사령부 훈련판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최고사령관을 모시는 안전보위사업이다.
우선 김정일을 임의의 순간에 부대에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가가 기본이다. 여기서 핵심은 무기, 탄약, 폭발물의 수량 실사와 상태에 대한 검열이다. 그 다음 정치부 각 부서의 사업 실태를 조사하고 김정일의 지시와 총정치국 지시의 집행정형 상태를 총화 한다.
나는 1998년 3월, 중대장으로 있을 때 최고사령부 훈련판정을 받았다. 그 해가 나에게는 군에서의 마지막 해이기도 했다. 90년대 들이닥친 국가적인 경제난은 군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부대는 동계훈련에 진입했다. 하지만 당시 어느 부대를 막론하고 군사정치훈련 일정을 집행한 단위는 드물다.
부대마다 영양실조에 걸린 허약 환자들이 차고 넘쳤고 모든 운송수단은 가동을 멈췄다. 중대에는 무단탈영자들이 절반이 넘는 날도 있었다. 매일 일어나는 도난사고와 무단 탈영으로 장교들은 훈련 일정 보다는 탈영자 호송이나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다녔다.
나도 그때 보름이 멀다하고 탈영자를 찾아 출장을 다녔다. 3월 21일 저녁이었다. 중대에 비상소집이 발령됐다. 대대지휘부로부터 최고사령부 훈련판정 성원들이 군단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기 때문에 언제인가 들이닥칠 일이라고 생각은 했다.
나는 중대에서 온 연락병의 호출을 받고 자택에서 부대로 나왔다. 저녁 11시 30분경이었는데 저녁 점검시간 후 30분이 지난 시점이다. 병영에 있는 중대 인원은 40% 정도밖에 안됐다. 중대 86명중 62명이 저녁점검에 참가를 했는데, 30명 정도의 군인들만 병영에 남고 나머지는 무단 탈영을 한 것이다.
온밤을 밖에서 떨며 처벌을 받다가 새벽 4시경에야 병영으로 들어왔다. 정치지도원과 장교들은 모두 중대군인들을 찾아 밤길을 떠났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아침 기상시간이 다가오자 밖에 나갔던 군인들이 하나 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온밤 도둑질을 다니거나 주민거주 지역에 나가 잤던 것이다.
첫 비상소집부터 잘못 걸려든 것이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대대 상학 준비검열 모임에 참가하니 대대장은 오늘부터 여단 전체가 최고사령부 훈련판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매해 있는 훈련판정이기는 하지만 첫 단추를 잘 못 꿰서 그런지 마음이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이 터졌다. 무기와 탄약, 수류탄 실사를 했는데 수류탄 4발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총탄도 50발정도 모자랐다. 여단 보위부와 군단 보위부까지 동원되어 없어진 수류탄과 분실된 실탄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수류탄은 찾았지만 실탄은 찾지 못하였다.
수류탄은 2소대 하사관이 감추었는데 이유는 고기잡이용으로 쓰려 했던 것이다. 실탄은 누구인가 도둑사냥을 하려고 뽑았겠는데 끝내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당시 대대에서까지 병기참모와 짜고 훈련용 실탄을 조절하여 불법 사냥을 하는 일도 있었고 중대 장교들도 단독으로 실탄을 꺼내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사냥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검열 성원들에게 적발된 실탄분실 사건은 김정일 신변 보호의 허점으로 연결되면서 정치적 문제로 번졌다. 누구든 책임을 져야 한다. 당시 나는 중대 관리를 잘못하고 중대 군인들이 사고를 많이 친 것으로 하여 두 차례의 엄중경고 처벌을 받은 상태였다. 나는 그해 6월 제대명령을 받았다.
처벌제대가 아닌 생활제대(업무상 사정이 있는 전역)였다. 힘들고 고달픈데다가 너무 불안해 더 이상 군에 있을 자신감이 없었다. 하여 군단 간부에 뇌물상납까지 하며 ‘제대 작전’을 추진했다. 군사훈련판정은 부대의 전투동원준비상태와 군인들의 전투능력 판정이 기본이다.
정치부와 참모부, 후방부 등 각 지휘부서와 중대전투단위의 동원 능력과 상태를 판정한다. 인민군 전체 훈련판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최고사령부 훈련판정이다. 왜냐하면 이것을 잘 받는가, 못 받는가에 따라 지휘관, 정치책임자의 전투지휘 능력과 정치사업 능력이 평가되기 때문이다.
군사지휘관들과 정치책임자들은 최고사령부 훈련판정을 통과하고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최대의 노력과 심혈을 기울인다. 특히 최고사령부 훈련판정 결과는 성과와 결함 부분을 종합하여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되기 때문에 실제로 운명의 행운과 몰락의 시금석이나 같은 것이다.
최고사령부 훈련판정 결과가 좋게 나오느냐, 나쁘게 나오느냐 하는 것은 최고사령관에게 기쁨을 드리느냐, 심려를 끼치느냐 하는 운명적인 문제다. 결과는 훈련판정 성원들의 손끝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지휘관들은 최고사령부 훈련판정을 받기 위해 1개월 전 부터 판정 성원들에게 상납할 뇌물마련에 바쁘다.
뇌물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질적으로 준비하는가에 따라 판정 결과의 승패가 달려 있다. 판정 성원들에게 상납한 뇌물은 군인들의 보급 및 후방물자에서 충당된다. 그러다보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군인들에게 돌아간다.
대대는 최고사령부 훈련판정 준비를 위해 해마다 여단으로부터 별도의 과제를 받는다. 내가 상급으로부터 빠지지 않고 받은 과제는 마른 오징어였다. 바다에 나가서 잡는 것이 아니라 돈을 만들어 사야 한다.
이를 위해 대대는 겨울용 화목을 많이도 팔았다. 또한 대대에 잘 사는 집 자녀들을 골라 물자구입 명분으로 휴가를 주어 오징어와 돈을 걷어 들였다. 훈련판정 성원들 대부분이 평양 사람들이다 보니 수산물에 오금을 못 썼던 것이다.
<김광일, 전 인민군 대위>
댓글목록0
댓글 포인트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