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명절 정치행사와 특별경계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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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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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 시절에 군인들이 제일 기다리는 날은 휴일과 국가명절이다. 양력설과 음력설, 김일성・김정일 생일(4.15, 2.16), 인민군 창군절(4.25), 광복절(8.15), 청년절(8.28), 공화국 창건절(9.9), 당 창건기념일(10.10), 헌법절(12.27), 전승절(7.27)이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일인 4월 9일, 당 총비서 추대일 10월 8일, 김정일이 105탱크부대를 찾아 선군정치가 시작된 8월 25일, 최고사령관 추대날인 12월 24일도 국가적인 기념일이다. 인민군의 작전요일은 최고사령부의 승인을 받아 총참모부 작전부에서 각 군, 병종사령부에 하달한다. 군단사령부에서도 사・여단별로 작전요일이 다르다.
모든 부대들은 제정된 작전요일에 따라 일과 내무생활과 전투정치 훈련 일정을 잡는다. 7군단과 9군단의 무력은 동계훈련을 시작하는 12월 1일을 기준으로 12월 7일을 작전요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명절 중에서도 음력설과 김일성・김정일 생일, 공화국 창건일과 당 창건일은 큰 명절로 분리하여 2~3일의 휴식과 함께 특별경계령을 발령한다. 2일간 특별경계 근무인 경우 하루는 대대장이 당직이고 다음날은 대대 정치지도원(대대 정치장교)이 당직이다.
특별경계 근무의 목적은 특별경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이다. 물론 지난 6・25전쟁도 휴일에 일어났다며 휴일과 국가명절 연휴를 이용한 적의 도발 가능성에 대해 선전을 하지만 실제는 내부결속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분발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북한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치행사다. 특히 김일성・김정일의 생일은 ‘민족 최대의 명절’로 규정하고 다양한 기념식 및 정치행사 일정이 있다.
1개월 전부터 명절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부대꾸리기 사업과 함께 ‘기념강연회’, ‘중앙기념보고회’ 시청, ‘축전채택모임’, ‘충성의 노래모임’, ‘동상 꽃다발 증정과 사적지 답사’, ‘위대성 영화감상회’, ‘충성의 선서모임’ 등의 정치행사를 집중적으로 진행한다.
모든 정치행사 진행은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김정일 장군의 노래>로 시작되고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리라> 노래로 끝마치는 것이 특징이다. 정치행사는 군인들에게 볼거리나 새로운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군인들은 다른 행사보다 정치행사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있다.
정치행사 참가 여부는 곧 충실성의 경력으로 평가되어 운명을 결정하는 변수임을 누구나 알고 있기에 싫든 좋든 무의식적으로 참가한다. 정치행사에는 근무 성원을 제외한 100% 성원들이 참가한다. 특별히 지정된 행사에는 경계근무 성원들도 교대로 참가시킨다.
행사 참가인원에 대한 장악은 정치부에서 진행하며 장악할 때에는 정치행사 참가 출석부를 가지고 하나하나 출석 체크를 하는 체계를 세우고 있으며 빠진 대상들에 대하여서는 이유와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여 상급단위 정치부에 보고하는 체계를 세우고 있다.
명절 때 실시되는 특별경계근무는 당중앙위원회 근무 요강에 따라 집행된다. 목적은 명절 분위기에 빠져서 긴장이 해이되는 현상을 막고 이 기간에 있을 수 있는 적의 도발이나 행동에 대하여 최대의 전투동원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가 그에 대처한다는 것이다.
2002년 4월 15일, 나는 함경북도 청진시에 있는 9군단 45사단 해안 직속 1대대 5중대에서 특별경계 근무를 수행했던 적이 있다.
군사 일정대로 경계근무를 수행하지만 명절의 경계근무만큼은 싫었던 것 같다. 해안에 따른 특별경계는 경계지대에 대한 순찰과 잠복의 형태로 진행된다. 물론 평상시에도 순찰경계와 잠복근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한 개 소대에 2개의 잠복 초소와 1개의 순찰 경계를 수행한다.
특별경계근무 기간은 잠복조를 4개로 증가하고, 순찰조도 배로 증가하며 횟수도 늘린다. 그날은 대대장이 직일당직 장교로 임명되었고, 사단과 대대에서 급파된 검열 성원 2명이 중대에 있었다. 그들은 순찰조와 함께 잠복초소들을 돌아보고 불시에 해안초소와 감시초소들을 순찰했다.
상급병사였던 나는 분대장과 함께 4호 잠복초소의 경계 근무를 수행하였다.
사실 평상시 잠복근무 성원들은 술을 자주 먹는다. 특별경비 주간이라고 해도 먹을 사람은 다 먹었다. 그날 나는 근무 휴식시간에 분대장의 지시로 부둣가 마을에 내려가 술과 안주를 준비했다. 잠복근무는 보통 3명이 나가는데,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정해진 잠복초소에 은폐하여 경계근무를 수행한다.
잠복초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총을 벗어놓고 술상을 차렸다. 사실 평상시에는 분대장과 구대원만 술을 먹고 제일 막내는 맑은 정신에 근무를 서다가 순찰이 오면 깨우는 식이었는데, 그날은 분대장의 선심으로 모두 술을 마셨다. 나도 그날만큼은 술을 많이 마셨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밝고 새벽 6시가 훌쩍 넘은 때였다. 나는 옆자리에 곯아떨어진 분대장을 깨웠다. 분대장을 깨우고 주변을 살피던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분대장 동지! 총이 없어졌습니다!”
분대장은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총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총은 없었다. 땅에 풀썩 주저앉아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고 있는데 중대장 연락병이 왔다. 빨리 철수하여 중대에 들어오라는 것이다.
중대 마당에 들어서니, 전체 중대가 집결하여 있었다. 중대 앞에는 대좌(대령) 계급을 단 장교가 서 있고 연탁 위에 우리의 총이 놓여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군단에서 45사단을 담당하여 내려온 지도검열 성원이었다. 잘못 걸려든 것이다.
이 사건은 인민무력부와 총정치국까지 보고되어 2년 정도 비판 보고서에 오르내렸다. 그 사건 여파로 중대장과 정치지도원은 강등 처벌을 받았고, 대대장은 엄중경고 처벌을 받았다. 당사자인 우리 분대장은 출당과 함께 처벌 제대되었다.
당시 해안경비대에서 술판은 일상 관례처럼 굳어져 있었지만 특별경계 기간에 일어난 사건이라 정치적 사건으로 엄중히 처리된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 부대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총정치국에서 발부하는 통보 자료를 보면 명절에 술을 먹고 주민들과 집단 구타를 일으킨 사건, 잠복초소에 여성을 불러들인 사건, 근무지를 이탈하여 부락에 내려가 파티를 한 사건 등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그들도 우리 분대장과 마찬가지로 평상시가 아닌 특별경계 기간에 범한 과오로 범죄자, 낙오자로 굴러 떨어져 인생을 망친 것이다.
북한의 가장 큰 국가명절은 김일성・김정일 생일이다. 이날을 ‘민족최대의 명절’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남한의 설날과 추석만큼이나 큰 명절이다.
북한에서는 명절이 단순히 먹고 노는 날이 아니라 정치학습, 공연, 영화 관람 등 행사가 가득한 날이다. 전당, 전민, 전군이 민족최대의 명절인 4월 15일(김일성 생일)과 2월 16일(김정일 생일)을 높은 정치적 열의와 빛나는 노력적 성과로 맞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말로는 당에 대한 충성이라지만 당이 곧 수령이기에 수령에 대한 아첨경쟁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군사복무를 했던 1980년대 중반에는 없었으나 제대 말기인 1990년대 중반에는 12월 24일(김정일의 생모 생일) 행사도 간소하게 시작되었다(지금은 세 사람 즉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 생일 모두 국가명절이다.) 남한에 와서 보니 12월 24일은 크리스마스이브 날이다.
온 세계가 예수님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 들떠 있는데 유독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부인 생일에 온갖 충성의 모습들을 보여야 한다.
나도 북한에 있을 때는 정말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태어난 줄 알았다. 아니 나 뿐이 아니라 북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설령 그 진실을 안다고 해도 그 사회에서는 김일성・김정일과 관련하여 어떠한 발언도 함부로 못하는 세상이다. 내가 인민군대 병사 시절에 평양 출신의 어떤 동료가 친구들과의 휴식 시간에 “사실 김정일 장군님의 진짜 고향은 소련이다” 라는 발언을 했었는데 이 친구는 다음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소위 무엇을 좀 아는 척 하는 우쭐한 행동을 보이려고 했던 것인데 그것이 정치적인 실수에 가까운 발언인 줄 그는 몰랐었다.
나는 남한에 와서야 김정일의 고향이 백두산이 아니라 소련이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고 도서관에 가서 많은 서적과 자료를 보면서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눈먼 소경이나 다름없는 북한 주민들만 모르고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김정일은 1941년 2월 16일, 소련 연해주 부근의 보로실로프(지금의 우수리스크) 지역주둔 빨치산 부대에서 아버지 김일성, 어머니 김정숙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당시는 러시아 이름인 김유라였다.
북조선 해방 후 아버지 김일성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랏일로 가족과의 시간이 거의 없었던 7살 때 모친의 사망으로 4살의 여동생 김경희와 졸지에 고아가 된 김정일은 심한 모성애 결핍증과 우울증을 갖고 성장했다. 심지어 자기 동생(슈라)까지도 연못에 빠트려 숨지게 하였다는 설도 있다.
세 살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것이 독재의 잔인성이 됐고 최연소 나이로 공화국과 인민군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는 분명하게 어려서부터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혐오스러운 성격을 가졌다.
김정일이 통치하는 북한에서는 무엇이든 날조할 수 있다. 그곳이 그만의 제국이기에 가능하다. 지난 1982년 2월, 북한은 김정일의 40회 생일을 맞아 공화국 영웅칭호와 훈장을 수여하는 정부 성명을 발표하면서 그의 출생지를 백두산 밀영으로 공식 발표했다.
아무런 해명 없이 하루아침에 그의 출생년도를 41년에서 42년으로 고쳤으며, 이는 김일성의 출생해인 1912년의 2자와 짝수를 맞추려고 의도적으로 고친 것이다. 북한에서는 꺾어지는 해인 5년 10년을 ‘정주년’이라고 하는데 어떤 기념일이든 정주년에는 더욱 크게 지내는 사회적 풍조가 있다.
자칭 21세기 태양이며, 민족의 태양이며, 위인 중의 위인이라는 김정일이다. 그의 고향이라고 하는 백두산 밀영도 미스터리다.
북한 당국은 지난 87년부터 이곳을 김정일 혁명사적지(국가유적지)로 지정하고 귀틀집을 지어 성역화에 나섰다. 후계자로 확실해진 뒤에 이뤄진 백두산 성역화! 이 또한 웃기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김정일이 제 고향이 백두산이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 웃기는 것은 생전의 김일성이 제 아들 김정일의 50살에 즈음하여 지어준 시다.
시 구절은 ‘백두산 마루에 정일봉 솟아 있고 소백수 푸른 물은 굽이쳐 흐르누나. 광명성 탄생하여 어느덧 쉰 돌인가. 문무충효 겸비하니 모두가 우러르네. 만민이 칭송하는 그 마음 한결 같아 우렁찬 환호소리 하늘땅을 뒤흔든다’ 이다.
동서고금에 일국의 통수권을 가진 아버지가 자기 아들 생일에 시를 써서 바쳤다는 전례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도 없는 희한한 일이다.
북한의 국가명절은 정치행사 일색이다. 내가 군사복무 할 당시 김일성 송시가 나왔는데 그때 모든 부대원들이 이것을 암송하였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의 웬만한 교시는 모두 암송시키는 혁명학습이 따로 있다. 주로 정치상학 시간에 이뤄지며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오직 김일성・김정일 관련 충성맹세, 학습, 강연 등이 우선이지 개인의 오락과 취향에 맞는 유희오락은 뒷전이다. 다른 때도 아닌 충성명절 기간에 개인적인 이기주의 성향이 낀 결함이 나타나면 오래도록 엄중한 비판에 시달려야 한다.
인민군 부대에서는 해마다 동계훈련이 마무리 단계가 되는 2월이 오면 전체 부대원들이 김정일 생일에 즈음하여 ‘충성의 노래모임’에 시달린다. 이것은 북한 군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정치행사다. 군사훈련은 조금 게을러도 정치행사에 게으르면 절대 안 된다.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이것은 각 기관과 단체에서 예술소조를 만들어 노래와 춤, 시 낭송 등으로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는 문화공연이다.
명절을 앞두고 사람들이 노래와 춤으로 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노래와 춤이 모두 김정일과 노동당을 찬양하는 내용들로 가득 찼다. 각 부대 별로 음악적 소질이 있는 군인들로 선출된 임시 예술소조는 이미 한 달 전부터 군사훈련 및 업무 후 노래연습을 하며 2월 초부터는 군사업무와 상관없이 전문적으로 공연 준비를 한다.
공연은 생일날과 혹은 전날에 진행되며 여기에는 부대의 모든 장병들과 군인 가족들도 반드시 참가한다.
‘충성의 노래모임’은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에 즈음하여 있고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의 생일 12월 24일에 즈음하여도 있다. 이런 정치행사를 전문적으로 주관하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일꾼들이다.
그들은 이런 행사를 성의껏 해야 자기들의 업무 실적이 올라가며 승진과 진급이 될 수 있다. 이런 정치일꾼들의 권세는 도도하다. 이들에게 잘못 보이면 평생토록 정치적 열의가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되며 이는 북한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가는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잘 알기에 대부분 이들에게 순종한다. 오히려 여기에 적응 안 된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또 다른 풍경으로 ‘직관선전’이 있다. 자세히 설명하면 각 부대 연병장 입구에 만들어진 대형 선전 벽보판에 김일성・김정일 충성 포스터로 도배가 된다. 또한 수령과 당에 충직한 모범적이고 열성적인 군인들의 사진과 소개 기사로 전시되어 있는데, 이들처럼 모두 당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시기에는 군단 정치부 선전대에서 내려오는 여러 가지 문화행사가 있다. 주로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기록영화와 도서 및 사진 전시회가 그것이다. 각 군단, 사단, 연대 안에 꾸려진 김일성, 김정일 사상연구실에서 충성학습이 다른 때보다 특별히 진행된다.
여기서는 노동당 군사부에서 내려오는 특별 강연이 보통이다. 물론 이것도 모두 의무적으로 청취해야 한다.
여기서는 주로 명절날에 뜻밖의 사고가 발생하여 화재가 나면 우선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보위해야 한다. 모든 군인과 가족들은 오늘의 이 행복에 감사하며 우리 인민들이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사회주의 조국을 철벽으로 지켜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기계적으로 주입시켜 준다.
또한 빠지지 않는 교양은 바로 김일성・김정일의 위대성 학습이다. 동서고금에 위대한 지도자인 혁명의 수령을 모시었기에 조선인민군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미제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용감한 군대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인민군을 타승(압승) 할 군대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한다.
북한에서는 해마다 국가명절이 오면 특별경계근무 기간이 실시된다. 명절 전날 부대원들에게 집중 강연으로 ‘특별경비주간’으로 선포한다.
이 시기에는 우선 정신적으로 김일성・김정일 충성을 더욱 깊이 간직하고 적들의 동태를 예리하게 살펴야 한다. 한마디로 명절이라고 해이된 생활을 하지 말고 김일성 사상학습이라도 더해 충성심을 식히지 말라는 소리다.
따라서 다른 때와 달리 보초근무도 2인 1조로 늘어나며 군관들은 모두 부대에 나와 군인들과 함께 충성의 오락(김일성・김정일 찬가를 부르는 모임)으로 시간을 보낸다. 북한군에서 명절은 오직 김일성・김정일 충성 잔치다.
<윤태남, 전 인민군 상사>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일인 4월 9일, 당 총비서 추대일 10월 8일, 김정일이 105탱크부대를 찾아 선군정치가 시작된 8월 25일, 최고사령관 추대날인 12월 24일도 국가적인 기념일이다. 인민군의 작전요일은 최고사령부의 승인을 받아 총참모부 작전부에서 각 군, 병종사령부에 하달한다. 군단사령부에서도 사・여단별로 작전요일이 다르다.
모든 부대들은 제정된 작전요일에 따라 일과 내무생활과 전투정치 훈련 일정을 잡는다. 7군단과 9군단의 무력은 동계훈련을 시작하는 12월 1일을 기준으로 12월 7일을 작전요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명절 중에서도 음력설과 김일성・김정일 생일, 공화국 창건일과 당 창건일은 큰 명절로 분리하여 2~3일의 휴식과 함께 특별경계령을 발령한다. 2일간 특별경계 근무인 경우 하루는 대대장이 당직이고 다음날은 대대 정치지도원(대대 정치장교)이 당직이다.
특별경계 근무의 목적은 특별경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이다. 물론 지난 6・25전쟁도 휴일에 일어났다며 휴일과 국가명절 연휴를 이용한 적의 도발 가능성에 대해 선전을 하지만 실제는 내부결속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분발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북한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치행사다. 특히 김일성・김정일의 생일은 ‘민족 최대의 명절’로 규정하고 다양한 기념식 및 정치행사 일정이 있다.
1개월 전부터 명절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부대꾸리기 사업과 함께 ‘기념강연회’, ‘중앙기념보고회’ 시청, ‘축전채택모임’, ‘충성의 노래모임’, ‘동상 꽃다발 증정과 사적지 답사’, ‘위대성 영화감상회’, ‘충성의 선서모임’ 등의 정치행사를 집중적으로 진행한다.
모든 정치행사 진행은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김정일 장군의 노래>로 시작되고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리라> 노래로 끝마치는 것이 특징이다. 정치행사는 군인들에게 볼거리나 새로운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군인들은 다른 행사보다 정치행사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있다.
정치행사 참가 여부는 곧 충실성의 경력으로 평가되어 운명을 결정하는 변수임을 누구나 알고 있기에 싫든 좋든 무의식적으로 참가한다. 정치행사에는 근무 성원을 제외한 100% 성원들이 참가한다. 특별히 지정된 행사에는 경계근무 성원들도 교대로 참가시킨다.
행사 참가인원에 대한 장악은 정치부에서 진행하며 장악할 때에는 정치행사 참가 출석부를 가지고 하나하나 출석 체크를 하는 체계를 세우고 있으며 빠진 대상들에 대하여서는 이유와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여 상급단위 정치부에 보고하는 체계를 세우고 있다.
명절 때 실시되는 특별경계근무는 당중앙위원회 근무 요강에 따라 집행된다. 목적은 명절 분위기에 빠져서 긴장이 해이되는 현상을 막고 이 기간에 있을 수 있는 적의 도발이나 행동에 대하여 최대의 전투동원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가 그에 대처한다는 것이다.
2002년 4월 15일, 나는 함경북도 청진시에 있는 9군단 45사단 해안 직속 1대대 5중대에서 특별경계 근무를 수행했던 적이 있다.
군사 일정대로 경계근무를 수행하지만 명절의 경계근무만큼은 싫었던 것 같다. 해안에 따른 특별경계는 경계지대에 대한 순찰과 잠복의 형태로 진행된다. 물론 평상시에도 순찰경계와 잠복근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한 개 소대에 2개의 잠복 초소와 1개의 순찰 경계를 수행한다.
특별경계근무 기간은 잠복조를 4개로 증가하고, 순찰조도 배로 증가하며 횟수도 늘린다. 그날은 대대장이 직일당직 장교로 임명되었고, 사단과 대대에서 급파된 검열 성원 2명이 중대에 있었다. 그들은 순찰조와 함께 잠복초소들을 돌아보고 불시에 해안초소와 감시초소들을 순찰했다.
상급병사였던 나는 분대장과 함께 4호 잠복초소의 경계 근무를 수행하였다.
사실 평상시 잠복근무 성원들은 술을 자주 먹는다. 특별경비 주간이라고 해도 먹을 사람은 다 먹었다. 그날 나는 근무 휴식시간에 분대장의 지시로 부둣가 마을에 내려가 술과 안주를 준비했다. 잠복근무는 보통 3명이 나가는데,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정해진 잠복초소에 은폐하여 경계근무를 수행한다.
잠복초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총을 벗어놓고 술상을 차렸다. 사실 평상시에는 분대장과 구대원만 술을 먹고 제일 막내는 맑은 정신에 근무를 서다가 순찰이 오면 깨우는 식이었는데, 그날은 분대장의 선심으로 모두 술을 마셨다. 나도 그날만큼은 술을 많이 마셨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밝고 새벽 6시가 훌쩍 넘은 때였다. 나는 옆자리에 곯아떨어진 분대장을 깨웠다. 분대장을 깨우고 주변을 살피던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분대장 동지! 총이 없어졌습니다!”
분대장은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총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총은 없었다. 땅에 풀썩 주저앉아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고 있는데 중대장 연락병이 왔다. 빨리 철수하여 중대에 들어오라는 것이다.
중대 마당에 들어서니, 전체 중대가 집결하여 있었다. 중대 앞에는 대좌(대령) 계급을 단 장교가 서 있고 연탁 위에 우리의 총이 놓여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군단에서 45사단을 담당하여 내려온 지도검열 성원이었다. 잘못 걸려든 것이다.
이 사건은 인민무력부와 총정치국까지 보고되어 2년 정도 비판 보고서에 오르내렸다. 그 사건 여파로 중대장과 정치지도원은 강등 처벌을 받았고, 대대장은 엄중경고 처벌을 받았다. 당사자인 우리 분대장은 출당과 함께 처벌 제대되었다.
당시 해안경비대에서 술판은 일상 관례처럼 굳어져 있었지만 특별경계 기간에 일어난 사건이라 정치적 사건으로 엄중히 처리된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 부대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총정치국에서 발부하는 통보 자료를 보면 명절에 술을 먹고 주민들과 집단 구타를 일으킨 사건, 잠복초소에 여성을 불러들인 사건, 근무지를 이탈하여 부락에 내려가 파티를 한 사건 등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그들도 우리 분대장과 마찬가지로 평상시가 아닌 특별경계 기간에 범한 과오로 범죄자, 낙오자로 굴러 떨어져 인생을 망친 것이다.
북한의 가장 큰 국가명절은 김일성・김정일 생일이다. 이날을 ‘민족최대의 명절’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남한의 설날과 추석만큼이나 큰 명절이다.
북한에서는 명절이 단순히 먹고 노는 날이 아니라 정치학습, 공연, 영화 관람 등 행사가 가득한 날이다. 전당, 전민, 전군이 민족최대의 명절인 4월 15일(김일성 생일)과 2월 16일(김정일 생일)을 높은 정치적 열의와 빛나는 노력적 성과로 맞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말로는 당에 대한 충성이라지만 당이 곧 수령이기에 수령에 대한 아첨경쟁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군사복무를 했던 1980년대 중반에는 없었으나 제대 말기인 1990년대 중반에는 12월 24일(김정일의 생모 생일) 행사도 간소하게 시작되었다(지금은 세 사람 즉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 생일 모두 국가명절이다.) 남한에 와서 보니 12월 24일은 크리스마스이브 날이다.
온 세계가 예수님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 들떠 있는데 유독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부인 생일에 온갖 충성의 모습들을 보여야 한다.
나도 북한에 있을 때는 정말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태어난 줄 알았다. 아니 나 뿐이 아니라 북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설령 그 진실을 안다고 해도 그 사회에서는 김일성・김정일과 관련하여 어떠한 발언도 함부로 못하는 세상이다. 내가 인민군대 병사 시절에 평양 출신의 어떤 동료가 친구들과의 휴식 시간에 “사실 김정일 장군님의 진짜 고향은 소련이다” 라는 발언을 했었는데 이 친구는 다음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소위 무엇을 좀 아는 척 하는 우쭐한 행동을 보이려고 했던 것인데 그것이 정치적인 실수에 가까운 발언인 줄 그는 몰랐었다.
나는 남한에 와서야 김정일의 고향이 백두산이 아니라 소련이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고 도서관에 가서 많은 서적과 자료를 보면서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눈먼 소경이나 다름없는 북한 주민들만 모르고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김정일은 1941년 2월 16일, 소련 연해주 부근의 보로실로프(지금의 우수리스크) 지역주둔 빨치산 부대에서 아버지 김일성, 어머니 김정숙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당시는 러시아 이름인 김유라였다.
북조선 해방 후 아버지 김일성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랏일로 가족과의 시간이 거의 없었던 7살 때 모친의 사망으로 4살의 여동생 김경희와 졸지에 고아가 된 김정일은 심한 모성애 결핍증과 우울증을 갖고 성장했다. 심지어 자기 동생(슈라)까지도 연못에 빠트려 숨지게 하였다는 설도 있다.
세 살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것이 독재의 잔인성이 됐고 최연소 나이로 공화국과 인민군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는 분명하게 어려서부터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혐오스러운 성격을 가졌다.
김정일이 통치하는 북한에서는 무엇이든 날조할 수 있다. 그곳이 그만의 제국이기에 가능하다. 지난 1982년 2월, 북한은 김정일의 40회 생일을 맞아 공화국 영웅칭호와 훈장을 수여하는 정부 성명을 발표하면서 그의 출생지를 백두산 밀영으로 공식 발표했다.
아무런 해명 없이 하루아침에 그의 출생년도를 41년에서 42년으로 고쳤으며, 이는 김일성의 출생해인 1912년의 2자와 짝수를 맞추려고 의도적으로 고친 것이다. 북한에서는 꺾어지는 해인 5년 10년을 ‘정주년’이라고 하는데 어떤 기념일이든 정주년에는 더욱 크게 지내는 사회적 풍조가 있다.
자칭 21세기 태양이며, 민족의 태양이며, 위인 중의 위인이라는 김정일이다. 그의 고향이라고 하는 백두산 밀영도 미스터리다.
북한 당국은 지난 87년부터 이곳을 김정일 혁명사적지(국가유적지)로 지정하고 귀틀집을 지어 성역화에 나섰다. 후계자로 확실해진 뒤에 이뤄진 백두산 성역화! 이 또한 웃기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김정일이 제 고향이 백두산이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 웃기는 것은 생전의 김일성이 제 아들 김정일의 50살에 즈음하여 지어준 시다.
시 구절은 ‘백두산 마루에 정일봉 솟아 있고 소백수 푸른 물은 굽이쳐 흐르누나. 광명성 탄생하여 어느덧 쉰 돌인가. 문무충효 겸비하니 모두가 우러르네. 만민이 칭송하는 그 마음 한결 같아 우렁찬 환호소리 하늘땅을 뒤흔든다’ 이다.
동서고금에 일국의 통수권을 가진 아버지가 자기 아들 생일에 시를 써서 바쳤다는 전례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도 없는 희한한 일이다.
북한의 국가명절은 정치행사 일색이다. 내가 군사복무 할 당시 김일성 송시가 나왔는데 그때 모든 부대원들이 이것을 암송하였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의 웬만한 교시는 모두 암송시키는 혁명학습이 따로 있다. 주로 정치상학 시간에 이뤄지며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오직 김일성・김정일 관련 충성맹세, 학습, 강연 등이 우선이지 개인의 오락과 취향에 맞는 유희오락은 뒷전이다. 다른 때도 아닌 충성명절 기간에 개인적인 이기주의 성향이 낀 결함이 나타나면 오래도록 엄중한 비판에 시달려야 한다.
인민군 부대에서는 해마다 동계훈련이 마무리 단계가 되는 2월이 오면 전체 부대원들이 김정일 생일에 즈음하여 ‘충성의 노래모임’에 시달린다. 이것은 북한 군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정치행사다. 군사훈련은 조금 게을러도 정치행사에 게으르면 절대 안 된다.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이것은 각 기관과 단체에서 예술소조를 만들어 노래와 춤, 시 낭송 등으로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는 문화공연이다.
명절을 앞두고 사람들이 노래와 춤으로 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노래와 춤이 모두 김정일과 노동당을 찬양하는 내용들로 가득 찼다. 각 부대 별로 음악적 소질이 있는 군인들로 선출된 임시 예술소조는 이미 한 달 전부터 군사훈련 및 업무 후 노래연습을 하며 2월 초부터는 군사업무와 상관없이 전문적으로 공연 준비를 한다.
공연은 생일날과 혹은 전날에 진행되며 여기에는 부대의 모든 장병들과 군인 가족들도 반드시 참가한다.
‘충성의 노래모임’은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에 즈음하여 있고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의 생일 12월 24일에 즈음하여도 있다. 이런 정치행사를 전문적으로 주관하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일꾼들이다.
그들은 이런 행사를 성의껏 해야 자기들의 업무 실적이 올라가며 승진과 진급이 될 수 있다. 이런 정치일꾼들의 권세는 도도하다. 이들에게 잘못 보이면 평생토록 정치적 열의가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되며 이는 북한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가는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잘 알기에 대부분 이들에게 순종한다. 오히려 여기에 적응 안 된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또 다른 풍경으로 ‘직관선전’이 있다. 자세히 설명하면 각 부대 연병장 입구에 만들어진 대형 선전 벽보판에 김일성・김정일 충성 포스터로 도배가 된다. 또한 수령과 당에 충직한 모범적이고 열성적인 군인들의 사진과 소개 기사로 전시되어 있는데, 이들처럼 모두 당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시기에는 군단 정치부 선전대에서 내려오는 여러 가지 문화행사가 있다. 주로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기록영화와 도서 및 사진 전시회가 그것이다. 각 군단, 사단, 연대 안에 꾸려진 김일성, 김정일 사상연구실에서 충성학습이 다른 때보다 특별히 진행된다.
여기서는 노동당 군사부에서 내려오는 특별 강연이 보통이다. 물론 이것도 모두 의무적으로 청취해야 한다.
여기서는 주로 명절날에 뜻밖의 사고가 발생하여 화재가 나면 우선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보위해야 한다. 모든 군인과 가족들은 오늘의 이 행복에 감사하며 우리 인민들이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사회주의 조국을 철벽으로 지켜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기계적으로 주입시켜 준다.
또한 빠지지 않는 교양은 바로 김일성・김정일의 위대성 학습이다. 동서고금에 위대한 지도자인 혁명의 수령을 모시었기에 조선인민군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미제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용감한 군대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인민군을 타승(압승) 할 군대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한다.
북한에서는 해마다 국가명절이 오면 특별경계근무 기간이 실시된다. 명절 전날 부대원들에게 집중 강연으로 ‘특별경비주간’으로 선포한다.
이 시기에는 우선 정신적으로 김일성・김정일 충성을 더욱 깊이 간직하고 적들의 동태를 예리하게 살펴야 한다. 한마디로 명절이라고 해이된 생활을 하지 말고 김일성 사상학습이라도 더해 충성심을 식히지 말라는 소리다.
따라서 다른 때와 달리 보초근무도 2인 1조로 늘어나며 군관들은 모두 부대에 나와 군인들과 함께 충성의 오락(김일성・김정일 찬가를 부르는 모임)으로 시간을 보낸다. 북한군에서 명절은 오직 김일성・김정일 충성 잔치다.
<윤태남, 전 인민군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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