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사관의 화선입당 (후보당원과 정당원)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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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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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나는 북한의 조선로동당 당원이었다.
인민군 복무 시절에 후보당원을 거쳐 정당원이 되었으나 16년의 당 생활 기록을 뒤로 하고 탈북하여 대한민국의 자유시민이 되었다.
북한군 10년 복무에서 군인들의 가장 큰 소원은 바로 ‘조선로동당 당원의 영예를 지니는 것’이다. 당원과 비당원은 곧 인격과 삶의 차이로 나타난다. 그래서 군인들은 입당을 인생의 최종 목표로 설정하고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좌우명으로 삼는다. 출신 성분이 좋고 힘(빽)센 사람들도 입당을 해야만 간부가 될 수 있다.
나는 1991년 2월 ‘조선로동당’ 후보당원이 되었다. 조선로동당 가입 절차는 소년단, 청년동맹조직생활을 거쳐 검증되고 엄선한 대상들을 당 조직에서 추천하여 1년간의 후보당원 생활을 거쳐 정당원으로 입선시킨다.
입당 대상자 선정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출신 성분과 정치조직 생활경력이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입당을 위한 출신 성분 기준은 전에 비해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친일과 월남자 출신들이 현재의 세대와 촌수가 멀어진데다 부모들의 헌신적인 충성노력이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한 공로가 없는 입당대상자 선정에서는 출신 성분과 가족관계가 여전히 유력한 엄선 기준임에 틀림없다.
나는 군인 출신 성분으로 최우선인데다가 중학교와 전문대의 정치조직 생활경력과 군복무 기간의 헌신적인 충성경력을 인정받아 같은 또래 중에서 가장 먼저 입당 대상자에 선정되었다.
1991년 1월, 대대정치부에서 입당 준비를 하라며 ‘조선로동당 규약’ 이라는 빨간 수첩을 주던 날은 북한에서의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당시 나의 직무는 분대장이었고 계급은 중사, 청년동맹 조직에서는 1초급단체 위원장이었다. 중대는 4개 소대이자 4개의 초급단체로 구성되었다. 중대의 군사 행정조직은 중대, 소대, 분대이고 정치조직으로는 중대 당세포위원회, 중대 청년동맹초급위원회, 소대 초급단체위원회, 분대 초급분조로 세분화되어 있다. 유일조직 체제로 신경 줄 마냥 잘 짜여 있다.
정치조직책임자는 중대 정치지도원이고 청년동맹조직의 간부들은 당 조직에서 선정된 하사관들이다. 일반적으로 군사직무와 정치 조직간부직을 겸직하고 있는 하사관들이 입당의 1차 대상으로 선정된다. 부소대장, 분대장의 직무와 청년동맹 조직의 비서, 혹은 위원직을 함께 수행하는 군인들인 것이다. 나
의 입당 추천을 두고 입당 선배들은 나를 축하했고, 같은 또래 하사관 친구들은 부러워하며 피눈물을 삼켰다. 중대에는 입당을 갈망하는 같은 또래 하사관들이 14명이나 되었다.
부대에서는 우리 또래를 85생, 또는 85패라고 불렀다. 85년도 입대생이 라는 뜻이다. 모두 부분대장 이상급 하사관이었고 청년동맹 조직의 간부를 겸하고 있는 하사관들도 있었다.
서로의 생활경력을 따지면 군사훈련이나 정치조직생활, 분대관리에서 내가 그들보다 앞선 것도 아니다. 정치군사훈련에서 나보다 월등히 앞선 하사관도 있었고 일과 내무생활에서 소대와 분대 관리를 잘 하여 언제나 나보다 많이 표창과 치하를 받은 하사관도 있다. 그들이 나에 비해 못한 것이 있다면 바로 출신 성분인 것이다.
3소대 부소대장 염호철은 나와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는 개인 전투능력 판정에서 언제나 1등이었고 정치조직생활과 내무 규정생활에서도 부대의 모범이었다.
부대는 그의 헌신성과 능력을 인정하여 같은 또래 군인 중에서도 제일 먼저 사관교도(하사관양성교육학교)로 추천하였고 유일하게 부소대장 상사의 직무도 먼저 받았다. 중대 군인들은 그가 제일 먼저 입당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본인 역시 당연히 제일 먼저 입당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중대 군인들과 염호철의 기대는 뒤집혔다. 중대 정치부에서 선정한 입당 선정 대상자는 3명이었는데, 2명은 84년도 선배였고 나만 85생이다.
하지만 나는 입당 대상자로 선정된 것에 대해 그 어떤 미안함이나 부끄러움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끝없이 기뻤고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군인들 속에서 보통 출신 성분을 가리켜 ‘텃밭’이라고 한다. 출신 성분이 좋고 백이 좋은 사람을 가리켜 ‘좋은 텃밭에 떨어진 씨앗’이라고 말했고, 출신 성분이 좋지 않거나 백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불모의 텃밭에 버려진 씨앗’으로 표현했다.
이랬거나 저렇거나 ‘텃밭’이 좋아 남보다 먼저 당 대열에 들어서는 것은 북한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아 자존감을 떨칠 수 있는 계기다.
입당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학습이다. ‘조선로동당 규약’은 물론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김일성·김정일 노작과 위대성 학습을 집중적으로 한다. 또한 부대와 군인들을 위한 ‘좋은 일하기’를 매일같이 해야 한다.
정치부에서는 나에게 입당기간 1소대(1초급 단체) 1분대와 2분대 신병 군인 2명을 대상으로 여가 시간에 개별 지도를 하도록 분공을 주었다. 내용은 그들에게 새 학년도(1990~1991) 최고사령관 훈련 명령에 대한 학습과 함께 정치학습 노트 정리를 잘 하도록 지도해주는 것이다. 훈련 명령에 대한 학습은 사실 형식이지만 정치학습 노트 정리는 잘 해야 하는 부분이다.
군인들이 소지하고 있는 정치학습 노트에는 김일성・김정일 노작, 강연회, 학습회, 방침전달, 문답식, 생활총화, 조직분공 등이 수록된다. 대부분 세 부류로 나누어 정리를 하는데, 김일성・김정일 교시 말씀록과 정치상학노트, 생활총화록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노트 정리에서 중요한 것은 김일성・김정일의 존칭 사용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 라는 존칭 사용은 정치 생활에서 모범과 오점을 판가름하는 시금석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군 입대를 한 초기에는 군사훈련과 병영 생활에 대한 육체적 부담과 새로운 환경에 따른 정신적 피로로 정치학습을 대충하는 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정치학습 노트 정리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정치학습 노트 정리 규정상 김일성의 지시는 반드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로 표기해야 하며, 김정일의 지시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로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병사들은 대부분 존칭을 붙이지 않고 김일성의 훈시는 ‘교시’, 김정일의 훈시는 ‘말씀’으로 간략하게 수록한다. 자필 속도가 안 되어 학습시간에 수록하지 못하는 경우 여가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존칭수록을 보완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병사들인 경우 보완하는 경우가 드물다.병사들이 정치학습 노트 정리를 소홀이 하는 것 때문에 하사관들은 정치조직으로부터 병사들의 정치학습 노트 정리를 지도하는 데 대한 분공을 자주 받는다.
이렇게 입당 준비를 한참 하고 있는 중에 3소대 부소대장 염호철을 만났다. 저녁 점검(취침 전 모임)이 끝나고 염호철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와 부대 주변에 있는 사민부락으로 나갔다.
염호철이 안내하는 집으로 들어가니 이미 약속을 했는지 술상이 우리를 맞는다. 그와 6년간 한 중대에서 생활하면서 술좌석은 처음이다. 같은 신병훈련소를 졸업하고 중대에 배치를 받은 다음부터 친하기보다는 경쟁 상대였다.
“조 동무! 한잔 받소” 염호철이 내 잔에 술을 채웠다. 같은 또래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상사여서 부대 내에서나 개별적인 대화에서나 난 규정대로 존대어를 사용했다. “상사 동지! 전 술을 못합니다”라며 나는 사양했다. 염호철은 “그래, 입당준비를 하는데 흠집 내기 싫다 이거지” 하며 술잔을 혼자 들이켰다.
그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난 술잔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술을 연거푸 들이키며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염호철이 말을 건넸다.
“조 동무! 축하한다. 기념으로 받아” 그가 나에게 건넨 것은 당증 케이스였다. 알루미늄 판으로 만든 것인데, 겉면 중심에는 노동당 마크가 새겨있고 밑에는 ‘조국통일’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작년에 외출하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구한거야. 기념으로 받아” 그 당증 케이스를 받으니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보통 입당 연령에 있는 하사관들은 입당 준비를 위해 당증 케이스와 당증 끈, 당증 보호비닐을 준비한다. 물론 지휘관들이나 입당 선배들에게 기념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당증이 습기 차지 않도록 종이와 비닐로 여러 겹 싸서 케이스에 넣어 몸에 품도록 되어 있다.
연합전술훈련이나 기동훈련 시에는 정치부에서 당증을 모아 공동으로 보관・관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평상시에는 개인이 소지하고 다닌다.
드디어 입당을 위한 본격적인 절차에 들어갔다. 제일 먼저 진행하는 것은 청년동맹 조직의 추천 총회다. 노동당 규약에는 입당은 자원성의 원칙에서 진행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조선노동당 입당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에 대한 엄선을 통하여 조직의 추천과 보증, 당원 1인의 보증에 의해 이루어진다.
본인이 해야 하는 것은 입당청원서와 보증인 의뢰이며, 입당심의 과정을 통과하기 위한 학습과제다. 밤을 새어가며 노동당 규약과 김일성・김정일 노작과 당 정책을 공부한다. 청년동맹과 세포총회를 거쳐 사・여단 당위원회 집행회의 심의까지 분위기는 그야말로 엄숙하다. 나의 입당 과정은 비교적 순조롭게 지나갔다.
- 계속 -
<조신원, 전 인민군 중사>
인민군 복무 시절에 후보당원을 거쳐 정당원이 되었으나 16년의 당 생활 기록을 뒤로 하고 탈북하여 대한민국의 자유시민이 되었다.
북한군 10년 복무에서 군인들의 가장 큰 소원은 바로 ‘조선로동당 당원의 영예를 지니는 것’이다. 당원과 비당원은 곧 인격과 삶의 차이로 나타난다. 그래서 군인들은 입당을 인생의 최종 목표로 설정하고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좌우명으로 삼는다. 출신 성분이 좋고 힘(빽)센 사람들도 입당을 해야만 간부가 될 수 있다.
나는 1991년 2월 ‘조선로동당’ 후보당원이 되었다. 조선로동당 가입 절차는 소년단, 청년동맹조직생활을 거쳐 검증되고 엄선한 대상들을 당 조직에서 추천하여 1년간의 후보당원 생활을 거쳐 정당원으로 입선시킨다.
입당 대상자 선정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출신 성분과 정치조직 생활경력이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입당을 위한 출신 성분 기준은 전에 비해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친일과 월남자 출신들이 현재의 세대와 촌수가 멀어진데다 부모들의 헌신적인 충성노력이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한 공로가 없는 입당대상자 선정에서는 출신 성분과 가족관계가 여전히 유력한 엄선 기준임에 틀림없다.
나는 군인 출신 성분으로 최우선인데다가 중학교와 전문대의 정치조직 생활경력과 군복무 기간의 헌신적인 충성경력을 인정받아 같은 또래 중에서 가장 먼저 입당 대상자에 선정되었다.
1991년 1월, 대대정치부에서 입당 준비를 하라며 ‘조선로동당 규약’ 이라는 빨간 수첩을 주던 날은 북한에서의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당시 나의 직무는 분대장이었고 계급은 중사, 청년동맹 조직에서는 1초급단체 위원장이었다. 중대는 4개 소대이자 4개의 초급단체로 구성되었다. 중대의 군사 행정조직은 중대, 소대, 분대이고 정치조직으로는 중대 당세포위원회, 중대 청년동맹초급위원회, 소대 초급단체위원회, 분대 초급분조로 세분화되어 있다. 유일조직 체제로 신경 줄 마냥 잘 짜여 있다.
정치조직책임자는 중대 정치지도원이고 청년동맹조직의 간부들은 당 조직에서 선정된 하사관들이다. 일반적으로 군사직무와 정치 조직간부직을 겸직하고 있는 하사관들이 입당의 1차 대상으로 선정된다. 부소대장, 분대장의 직무와 청년동맹 조직의 비서, 혹은 위원직을 함께 수행하는 군인들인 것이다. 나
의 입당 추천을 두고 입당 선배들은 나를 축하했고, 같은 또래 하사관 친구들은 부러워하며 피눈물을 삼켰다. 중대에는 입당을 갈망하는 같은 또래 하사관들이 14명이나 되었다.
부대에서는 우리 또래를 85생, 또는 85패라고 불렀다. 85년도 입대생이 라는 뜻이다. 모두 부분대장 이상급 하사관이었고 청년동맹 조직의 간부를 겸하고 있는 하사관들도 있었다.
서로의 생활경력을 따지면 군사훈련이나 정치조직생활, 분대관리에서 내가 그들보다 앞선 것도 아니다. 정치군사훈련에서 나보다 월등히 앞선 하사관도 있었고 일과 내무생활에서 소대와 분대 관리를 잘 하여 언제나 나보다 많이 표창과 치하를 받은 하사관도 있다. 그들이 나에 비해 못한 것이 있다면 바로 출신 성분인 것이다.
3소대 부소대장 염호철은 나와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는 개인 전투능력 판정에서 언제나 1등이었고 정치조직생활과 내무 규정생활에서도 부대의 모범이었다.
부대는 그의 헌신성과 능력을 인정하여 같은 또래 군인 중에서도 제일 먼저 사관교도(하사관양성교육학교)로 추천하였고 유일하게 부소대장 상사의 직무도 먼저 받았다. 중대 군인들은 그가 제일 먼저 입당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본인 역시 당연히 제일 먼저 입당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중대 군인들과 염호철의 기대는 뒤집혔다. 중대 정치부에서 선정한 입당 선정 대상자는 3명이었는데, 2명은 84년도 선배였고 나만 85생이다.
하지만 나는 입당 대상자로 선정된 것에 대해 그 어떤 미안함이나 부끄러움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끝없이 기뻤고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군인들 속에서 보통 출신 성분을 가리켜 ‘텃밭’이라고 한다. 출신 성분이 좋고 백이 좋은 사람을 가리켜 ‘좋은 텃밭에 떨어진 씨앗’이라고 말했고, 출신 성분이 좋지 않거나 백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불모의 텃밭에 버려진 씨앗’으로 표현했다.
이랬거나 저렇거나 ‘텃밭’이 좋아 남보다 먼저 당 대열에 들어서는 것은 북한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아 자존감을 떨칠 수 있는 계기다.
입당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학습이다. ‘조선로동당 규약’은 물론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김일성·김정일 노작과 위대성 학습을 집중적으로 한다. 또한 부대와 군인들을 위한 ‘좋은 일하기’를 매일같이 해야 한다.
정치부에서는 나에게 입당기간 1소대(1초급 단체) 1분대와 2분대 신병 군인 2명을 대상으로 여가 시간에 개별 지도를 하도록 분공을 주었다. 내용은 그들에게 새 학년도(1990~1991) 최고사령관 훈련 명령에 대한 학습과 함께 정치학습 노트 정리를 잘 하도록 지도해주는 것이다. 훈련 명령에 대한 학습은 사실 형식이지만 정치학습 노트 정리는 잘 해야 하는 부분이다.
군인들이 소지하고 있는 정치학습 노트에는 김일성・김정일 노작, 강연회, 학습회, 방침전달, 문답식, 생활총화, 조직분공 등이 수록된다. 대부분 세 부류로 나누어 정리를 하는데, 김일성・김정일 교시 말씀록과 정치상학노트, 생활총화록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노트 정리에서 중요한 것은 김일성・김정일의 존칭 사용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 라는 존칭 사용은 정치 생활에서 모범과 오점을 판가름하는 시금석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군 입대를 한 초기에는 군사훈련과 병영 생활에 대한 육체적 부담과 새로운 환경에 따른 정신적 피로로 정치학습을 대충하는 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정치학습 노트 정리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정치학습 노트 정리 규정상 김일성의 지시는 반드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로 표기해야 하며, 김정일의 지시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로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병사들은 대부분 존칭을 붙이지 않고 김일성의 훈시는 ‘교시’, 김정일의 훈시는 ‘말씀’으로 간략하게 수록한다. 자필 속도가 안 되어 학습시간에 수록하지 못하는 경우 여가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존칭수록을 보완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병사들인 경우 보완하는 경우가 드물다.병사들이 정치학습 노트 정리를 소홀이 하는 것 때문에 하사관들은 정치조직으로부터 병사들의 정치학습 노트 정리를 지도하는 데 대한 분공을 자주 받는다.
이렇게 입당 준비를 한참 하고 있는 중에 3소대 부소대장 염호철을 만났다. 저녁 점검(취침 전 모임)이 끝나고 염호철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와 부대 주변에 있는 사민부락으로 나갔다.
염호철이 안내하는 집으로 들어가니 이미 약속을 했는지 술상이 우리를 맞는다. 그와 6년간 한 중대에서 생활하면서 술좌석은 처음이다. 같은 신병훈련소를 졸업하고 중대에 배치를 받은 다음부터 친하기보다는 경쟁 상대였다.
“조 동무! 한잔 받소” 염호철이 내 잔에 술을 채웠다. 같은 또래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상사여서 부대 내에서나 개별적인 대화에서나 난 규정대로 존대어를 사용했다. “상사 동지! 전 술을 못합니다”라며 나는 사양했다. 염호철은 “그래, 입당준비를 하는데 흠집 내기 싫다 이거지” 하며 술잔을 혼자 들이켰다.
그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난 술잔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술을 연거푸 들이키며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염호철이 말을 건넸다.
“조 동무! 축하한다. 기념으로 받아” 그가 나에게 건넨 것은 당증 케이스였다. 알루미늄 판으로 만든 것인데, 겉면 중심에는 노동당 마크가 새겨있고 밑에는 ‘조국통일’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작년에 외출하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구한거야. 기념으로 받아” 그 당증 케이스를 받으니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보통 입당 연령에 있는 하사관들은 입당 준비를 위해 당증 케이스와 당증 끈, 당증 보호비닐을 준비한다. 물론 지휘관들이나 입당 선배들에게 기념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당증이 습기 차지 않도록 종이와 비닐로 여러 겹 싸서 케이스에 넣어 몸에 품도록 되어 있다.
연합전술훈련이나 기동훈련 시에는 정치부에서 당증을 모아 공동으로 보관・관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평상시에는 개인이 소지하고 다닌다.
드디어 입당을 위한 본격적인 절차에 들어갔다. 제일 먼저 진행하는 것은 청년동맹 조직의 추천 총회다. 노동당 규약에는 입당은 자원성의 원칙에서 진행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조선노동당 입당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에 대한 엄선을 통하여 조직의 추천과 보증, 당원 1인의 보증에 의해 이루어진다.
본인이 해야 하는 것은 입당청원서와 보증인 의뢰이며, 입당심의 과정을 통과하기 위한 학습과제다. 밤을 새어가며 노동당 규약과 김일성・김정일 노작과 당 정책을 공부한다. 청년동맹과 세포총회를 거쳐 사・여단 당위원회 집행회의 심의까지 분위기는 그야말로 엄숙하다. 나의 입당 과정은 비교적 순조롭게 지나갔다.
- 계속 -
<조신원, 전 인민군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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