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선서와 병사 시절 ③ > 인권전문가 논단

✤ 부대배치와 병사생활
 
군인선서 모임이 끝난 후 나를 비롯한 군사전문대 졸업생들은 상등병(현재는 초급병사) 군사 칭호를 받았다. 2년간 군사전문대에서 기초 군사교육과 훈련을 받은 대상들은 신병훈련이 끝나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한 대상보다 한 등급 높은 계급을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모든 행사가 끝나면 여단 대열과 장교가 나와 정식 부대 배치를 한다.
 
신병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부대 직속 단위와 후방 계통이다. 북한군에서는 병사는 위가 좋고, 장교는 아래가 좋다는 말을 한다. 이는 생활면에서 병사들을 직접 데리고 있는 장교가 위 단위의 지도 장교보다 좋고, 병사는 말단 전투단위 보다는 비전투 단위인 위 단위의 직속 독립 사관이 좋다는 말이다.
 
간부 자녀들은 벌써 자신이 어디에 가는지 알고 있는 터라 별로 긴장하지 않지만 나와 같은 신병들은 그래도 조금 나은 곳으로 가기를 기대하며 초조한 심정이다.
 
이런 속사정을 아는지 장교들은 “명령에 움직이는 것이 군인이다. 그 무엇을 원한다면 벌써 군인이 아니다”는 혹독한 말로 신병들의 기대 심리를 묵살한다.
 
우리 신병대에 조경호라는 여단참모장의 조카가 있었다. 그는 벌써 자기는 여단 직속 참모중대에 배치될 것을 알고 있었다. 거기서 조금 복무를 하면 연락병이나 여단정치부 서기, 후방 쪽의 독립 사관으로 발탁될 것이다. 그의 운명은 이미 꽃수레를 탄 것이다.
 
부모를 잘 만난 그가 부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부모를 원망하기는 싫었다. 군에 나오면서 애초에 기대를 안 했던 것이어서 아쉬운 것은 없지만 부모덕에 좋은 곳으로 가는 녀석을 보니 기분은 별로였다.
 
나는 여단 1포병대대에 배치됐다. 대대에 도착하니 대대장과 정치지도원이 맞이하면서 일일이 악수를 건넨다. 그다음 대대 대열참모가 또다시 이름을 거명하며 각 중대별로 우리를 배치하였다.
 
나는 대대지휘부와 30여리 떨어진 4중대 소속 2소대 3분대에 최종 배치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정식 군복무가 시작되었다.
 
병사생활은 군종과 병종에 따라 차이나지만 3년 이상이다. 특수부대 경우에는 13년의 군복무 기간 12년의 병사생활과 1년간의 하사관 경력으로 마무리하는 친구들도 있다. 모든 군인들은 병사생활을 거쳐 하사관이 된다. 하지만 많지는 않지만 10년간 하사관이 못 되고 병사로 전역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 당시 병사의 계급은 전사와 상등병, 하사관 계급은 하사, 중사, 상사, 특무상사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1998년부터 병사 계급을 전사, 초급병사, 중급병사, 상급병사의 4등분으로 개정하였다.
 
병사진급규정은 한 계급에서 6개월 이상 되면 진급을 할 수 있지만 전사에서 초급병사로의 진급 과정은 대부분 1년이 채워져야만 한다. 간혹 전투정치 훈련에서 남보다 특출한 모범을 보였을 때는 포상으로 기한 전 진급을 할 수 있다.
 
나는 군사전문대 졸업 경력으로 상등병의 계급을 달고 병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분대에는 나보다 6개월 정도 앞서 입대한 전사가 있었는데, 나이로는 내가 위지만 군복무에서는 그가 엄연한 선배였다.
 
군 경력자들은 누구나 전사 생활을 마치고 상등병(현재는 초급병사)으로 진급할 때의 기분을 가장 즐겁게 추억한다. 상등병의 군사 칭호를 수여받는 날은 정말 군복무의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진짜 군인이 됐다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마음은 한껏 부푼다.
 
부대에서는 오직 전사에서 상등병으로 진급한 병사들을 위해 별도의 행사를 조직한다. 정치부에서는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기념사진을 찍어 고향에도 보내준다. 지휘관들과 선후배 모두 축하를 해주고 여성 군인들도 방긋이 웃으며 축하를 해준다.
 
난 상등병의 군사칭호를 수여 받고 병사 생활을 시작하다보니 그런 기쁨의 순간을 만끽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군관이 목표였던 나는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병사 생활 3년을 거쳐 ‘김철주포병군관학교’에 추천되었다.
 
나처럼 군관으로 발탁된 군인보다 10년간 한 울타리 안에서 군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군인들에게는 진급에 따른 기쁨만으로 세월의 공백을 충당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나의 군복무 경력의 세부 사항은 이렇다. 신병 4개월, 전사생활 1년, 초급병사 8개월, 중급병사 1년 4개월, 상급병사 2년 6개월(사관교도 6개월 포함), 하사 2년, 중사 1년 9개월로 도합 115개월, 9년 6개월이다. 군 정치생활 경력은 청년동맹 8년 9개월, 후보당 9개월이다.
 
신병 훈련이 끝나고 2군단 직속 운수대대 1중대에 배치를 받고, 그 운수중대에서 근 10여년을 보냈다. 병종은 운전병이다. 중대에 배치 받고 1년이 되어 초급병사로 진급하면서 군단 자동차양성소에서 운전을 배우고 운전면허 4급을 받았다.
 
내가 소속된 운송중대는 평상시 부대의 물자 보급과 건설자재 운송이 기본 임무였다. 차량 한 대에 책임운전사와 보조운전사가 배치되는데, 책임운전사는 100% 하사관과 초기복무 하사관이다. 초기복무 하사관은 남한의 부사관과 유사하다. 복장은 군관들과 같지만 하사, 상사, 중사, 특무상사 계급으로 하사관 계급이다.
 
제일 힘든 시기는 역시 병사 시절이었다. 보조운전사는 말이 운전사지 완전히 머슴이다. 한 개 차량에 1명의 보조운전병이 배치되는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차는 몇 번 타보지도 못하고 차가 들어오면 정비와 수리는 도맡아 해야 하고 부대에서 제기되는 잡일에는 우선적으로 동원된다.
 
우리 대대는 군단 직속으로 전투단위가 아닌 보장단위에 해당되었다. 전투단위에는 군단 운전강습소를 졸업하고 구분대에 배치되면 차량이 공급된다. 처음에는 하사관이 합승하여 1개월간 지도를 하고는 본인이 차량을 맡아 관리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복무한 운송대대는 인원에 비해 차량대수가 적었다. 선배들에게 들은 소리지만 90년도 경제난을 겪으면서 부대 차량이 대폭 줄어들었다고 한다.
 
내가 처음으로 보조운전병으로 배치 받은 차량은 중대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차량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고장이 나고, 엔진 수명이 지나 평지에서도 벌벌거렸다. 책임운전사는 량강도 삼지연군 태생인데, 우리 분대 부분대장이다. 나는 차가 한 번씩 고장 날 때마다 매를 맞았다.
 
2003년 3월, 동계훈련 일정으로 군단 기동훈련이 진행되었다. 대대에서는 기동훈련에 대비하여 차량 점검을 지시하였고, 불량 차량들은 군단 차량 수리소에 수리를 의뢰했다. 대대에서는 우리 차량에 대해 엔진 성능이 좋지 않아 훈련참가 차량에서 제외시켰다.
 
그런데 책임운전사인 부분대장이 정치부에 찾아가 맡겨진 운송을 무조건 보장하겠다며 훈련 참가를 고집했던 것이다. 그는 입당 준비로 충성경력을 쌓아야 할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어 기동 훈련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부분대장의 충성심을 낡은 차량이 봐줄리 없었다. 임무는 황해남도 연안에서 송학산까지 후방 보급물자 운송이었다. 3톤 정도의 물동량을 싣고 두 시간을 달려 송학산 부근 고갯길에 들어서는데 엔진이 멈췄다. 기관 뚜껑을 열어 보니 엔진이 불덩어리다. 엔진오일이 새면서 착통(실린더)이 피스톤을 물었던 것이다.
 
길바닥에서 간단히 손을 볼 일이 아니었다. 뒤따르던 중대 차량들이 연이어 멈춰 섰다. 중대장은 물자를 다른 차량들에 분산･이적할 것을 지시했다. 촉박한 시간이 흘렀다. 부랴부랴 물동량을 옮겨 싣고 차량들은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길바닥에는 고장난 차량과 부분대장, 그리고 나뿐이었다.
 
부분대장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모든 잘못을 내가 뒤집어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무서운 침묵이 흐르고 손에 땀을 쥔 채 눈퉁이가 밤퉁이 되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군단 차 수리소 견인차가 연락을 받고 도착했다. 나는 잽싸게 견인 쇠밧줄을 꺼내 걸었다. 차량 고장으로 중대는 군단훈련판정 총화에서 급(훈련판정기준: 우, 량, 급, 낙제)이라는 낙후한 점수를 받고 비판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불똥이 나한테도 튀었다. 참모부와 정치부에 들어가 욕을 먹은 부분대장이 며칠은 조용히 있다 했더니 나한테 트집을 걸었다. 차고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차량이 수리소에 가서 없기에 며칠 동안 청소를 안 했는데 제대로 걸린 것이다. 얼마나 얻어 터졌는지, 한 보름 정도 어혈이 갔다.
 
나의 병사 시절은 이렇게 흘러갔다.
 
병사계급 진급은 중대에서 하사관들이 전역하는 수에 따라 조금은 다르지만 특별한 사고가 없으면 복무연한에 따라 자연히 올라간다. 외부에서는 계급으로 상하가 구분되지만 부대 내에서의 전사와 초급병사, 중급병사, 상급병사의 차이는 크지 않다. 복무연한의 차이로만 보일 뿐이다.
 
제일 큰 차이는 상급병사와 하사의 차이다. 하사는 개개인의 병사가 아닌 부하를 거느린 상관이며 지휘관이기 때문이다.
 
훗날 나는 5년간의 병사생활을 뒤로 하고 사관교도를 졸업하고 사관이 되어 부분대장과 분대장의 직무를 수행했다. 사관이 되어보니 좋은 것도 있지만 누구를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즐겁지만은 않았다.
 
북한군에서 조직이라고 보면 조선노동당조직과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조직이 있다. 인민군 군관들과 병사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런 정치조직에 가입되어 항시적으로 조직의 지도와 통제, 감시를 받고 있다. 현재 북한군 안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반란과 사상적 동요가 일어나지 않은 원인이 바로 이러한 정치조직 시스템이라고 본다.
 
군단에서부터 소대에 이르기까지 그물망처럼 촘촘히 짜인 정치조직에서 인민군 병사들은 조직의 규정대로만 생활해야 한다.
 
북한군 중대(독립소대)에는 청년동맹비서라는 직무를 가진 군인이 있다. 소대에는 사관장이 청년동맹비서를 겸임한다. 청년동맹비서의 직속상관은 대대정치부 청년지도원이다.
 
사관장은 청년동맹조직생활 정형에 대하여 청년지도원에게 매일 사업보고를 통하여 보고하는 제도가 있다. 이에 대하여 대대청년지도원은 자기 상급 단위인 연대, 여단에 층층으로 보고하고 대책하는 절차를 가지고 있다. 대대 이상 단위들에는 청년동맹조직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으며 위원으로 중요 간부들이 포진되어 청년동맹위원회 조직구성을 이루고 있다.
 
청년동맹조직생활은 매주 토요일을 계기로 청년동맹조직 생활총화를 진행한다. 생활총화에서는 각자 군인들이 한 주간 생활에서 나타난 결함에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놓고 전체 군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총화하고 자기 총화(자아비판)가 끝나면 다른 군인의 결함에 대하여 상호 비판을 하는 제도다.
 
상호비판의 목적은 동료 군인이 다른 사상(노동당과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따뜻이 손잡아 혁명의 길로 이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야 말로 군인들을 서로 감시하게 만든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군인들은 절대 잡생각(자본주의 생각이 나 외국생활 상상 등)을 할 시간조차도 없다. 한 주에도 김일성·김정일 정치학습, 강연, 군사학습 등이 끊이지 않고 거기서도 제일 힘든 것이 바로 김일성･김정일 교시암송이다. 여단 정치부에서 특이한 부문의 교시는 암송하도록 지시가 내려오며 이것은 절대적으로 관철해야 하는 의무다.
 
그리고 월 마지막 주에는 월 생활총화를 진행하는데 총화 형식은 한 달 동안 제일 결함이 많은 군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사상투쟁의 형식으로 강도 높게 진행된다.
 
분기마다 분기 생활총화, 연말이면 연간 생활총화 등이 있다. 또한 분공을 군인들에게 주어 월 마지막 주에 분공수행 정형을 총화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조직생활 정형을 항시적으로 통제한다.
 
분공은 주로 김일성･김정일연구실 청소, 교양실 관리 등이며 여기에도 항상 점수가 있다. 다시 말해 김일성･김정일 관련 시설을 정중한 마음으로 깨끗이 청소하면 점수가 높다. 이외에도 청년군인특성 교양 모임을 통해 군무생활을 잘한 군인들의 군무생활에서 나타난 자료를 가지고 다른 군인들을 교양하는 데 이용한다.
 
청년동맹조직 생활총화 같은 경우에도 매번 결함이 반복되다보니 생활총화의 질적 수준은 점점 떨어지고 형식이나 갖추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상호비판을 하는 경우에도 비판을 준비하자면 주간에 다른 군인들의 모든 행동을 감시해야 한다.
 
북한군은 이러한 시스템을 통하여 군인들이 각자가 서로의 모든 행동을 상시적으로 감시하는 체계를 세워 놓았다. 바로 이러한 시스템이 있기에 북한군에서는 사소한 쿠데타나 폭동 같은 것이 절대 일어 날 수가 없다.
 
- 끝 -
 
<김영운, 전 인민군 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