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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의 총관, 도덕관, 인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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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8 11:01 1,7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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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김일성은 ‘화’자를 좋아하고 김정일은 ‘관’자를 좋아한다고 한다.
 
김일성은 ‘혁명화’, ‘노동계급화’, ‘신격화’, ‘절대화’ 등 모든 이론을 ‘화’자로 많이 정리하고, 김정일은 ‘혁명적 수령관’, ‘총관’, ‘가치관’, ‘도덕관’, ‘계급관’ 등 ‘관’자 정리를 많이 한다.
 
군인들은 그 ‘화’자와 ‘관’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무조건 암기식으로 정치 술어와 이론을 익혀야 하는데, 분량이 장난이 아니다. 이것이 저것 같고, 저것이 이것 같아 헷갈릴 때가 많다. 그래도 군인이라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납득이 잘 안 되는 내용도 많다. 특히 총관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군인이 없다.
 
총관이란 이론은 총에 대한 견해와 관점이라는 의미인데,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하면서 생겨난 이론이다. 김정일의 총관이론을 집약하면 이렇다. ‘총은 절대로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 총대 위에 정권도, 국가도 인민도 있다. 그래서 총은 혁명가에게 있어서 영원한 동지이고 길동무다’.
 
북한당국은 김정일 총관의 ‘심오한 뜻’을 되새겨 죽을 때까지 손에서 무기를 놓지 않겠다는 철석의 의지를 가지고 총대로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끝까지 싸우려는 투철한 각오가 바로 병사의 총관이라고 설명한다.
 
총관교육은 신병교육 때부터 시작한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엄연히 총은 총으로 보는 것이 당연한데, 쇠붙이로 된 총이 무슨 동지이고 길동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총은 물건인데, 나한테 있다가 남한테도 갈 수 있는 것인데,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니 애완견도 아니고 또 평생 가질 수 있는 물건도 아닌데, 하는 생각에 총관에 대한 설명에 대해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알기 쉽게 가르쳐 달라고 질문하면 잉크가 모자란다거나 가방 줄이 짧다는 소릴 듣기가 일쑤다. 그래서 난 모든 것은 덮어놓고 똘똘 암기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외웠다.
 
2001년 10월 총정치국에서 진행한 선군정치 문답식 경연이 있었다. 암기에서는 그래도 일가견이 있는 나는 중대의 추천으로 사단 경연에 참가하게 되었다. 예하 연대의 대대에서 추천된 군인들이 사단 군인회관에 모여 최종 승부를 가렸다. 나가서 책상 위에 있는 표를 뽑아 거기에 적힌 문제를 연단에 올라가 정의를 얘기하고 다른 부대 군인들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다.
 
같은 대대의 조국진(가명)의 차례가 왔다. 그가 뽑은 표의 문제는 총관에 대한 설명이었다. 연단에 오른 그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암기한 총관이론을 발설했다. 질의응답이 시작됐다. 총관에 대한 정의는 모두가 암기했지만 그 누구나 의문이 많은지라 질문이 쏟아졌다.
 
‘총이 사람도 아닌데, 왜 동지이고 길동무라고 하냐’, ‘총이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뜻이 뭐냐’ 등 평소에 총관에 가졌던 의심을 이번 기회에 해결하려는 심산이다. 내가 생각해 봐도 사단에서 모인 내로라하는 청년군인들의 머리는 그래도 비교적 현명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애써 태연한 자세를 잡은 조국진은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도 총만 있으면 살아날 구멍이 생길 수 있다. 적이 나타나도, 강도가 나타나도 총만 있으면 무섭지 않다. 그래서 동지이고 길동무라고 할 수 있다. 총도 기름을 잘 치고 관리를 잘 하면 고장이 나지 않아 주인이 원할 때 사용할 수 있다. 개도 밥 잘 주고 폭신한 깔개를 깔아주고 정성껏 길들이면 주인을 잘 따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라고 했다.
 
조국진의 답변에 폭소가 터졌다. 앞에서는 총이 분명 동지였는데 갑자기 개로 변한 것이다. 판정 성원들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딩동댕’(합격)으로 평가됐다. 심사 성원이 약간의 수정은 해주었다. 총을 자기 눈동자와 같이 아끼고 사랑한다면 주인이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일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 말이 이 말이고, 이 말이 그 말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론을 가지고 강제적인 정치학습에 시간 소모를 하고 있는 인민군이라고 생각하면 기가 막힐 뿐이다.
 
군인의 도덕관에 대한 일화도 많다.
 
보통 민가에서는 군인의 ‘도덕관’은 ‘도둑관’이라고 한다. 군인의 도덕관은 곧 혁명적 도덕관인데, 정치적 생명체의 최고 수뇌인 수령에 대한 혁명적 의리를 최고의 양심으로 간직하고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고상한 품성과 혁명선배들에 대한 의리로 정의한다.
 
그런데 왜 이런 ‘고상’ 하고 ‘위대’한 정의가 도둑관으로 변질된 것일까? 기본 원인은 경제난이다.
 
군에 대한 후방물자와 보급물자가 적어지고 모든 것을 부대 자체로 해결한다는 원칙이 강조되면서 군인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복무한 부대만 해도 김정일을 부대에 한번 모시겠다고 부대 꾸리기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하지만 상부에서 대주는 것을 가지고는 김정일의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부대는‘자력갱생’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자고 호소하면서 예하 부대들에 과제를 우격다짐으로 내려 보낸다. 그러면 군인들은 산과 바다, 벌판과 주민 거주 지역으로 출동하여 돈이 될 만한 모든 것을 걷어온다.
 
또한 혁명선배들을 존경하는 일도 그렇다. 상부에서 내려오는 선배들이 인사만 받으면 좋겠는데 별의별 것을 다 요구한다. 의리를 지키려면 또 도둑질밖에 없다.
 
선배를 섬기는 기준은 어떤 기관인가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총정치국, 보위사령부,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등의 순위로 상납 규모가 줄어든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간부에게 들어가는 진상품은 산삼, 인삼, 산꿀을 비롯한 보약들과 도자기, 고급술, 담배 등이 전부였다. 하지만 90년대부터는 진상품보다는 현찰을 더 좋아했다.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대장으로 근무하면서 나도 상관의 부탁으로 돈을 많이 만들어 보냈다. 1999년 부대에서 지급받는 나의 월 생활비는 110원이다. 당시 담배 한 갑 가격이 700원이었으니 6개월 월급을 모아야 담배 한 갑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상관의 부탁으로 내가 한 번에 마련해야 하는 진상금의 규모는 보통 5만 원을 넘었다.
 
당시 100달러가 북한 돈으로 2~3만 원이니 200달러 정도다. 대부분 집안 사정이 괜찮은 병사들을 휴가차 보내거나 3명의 분대장에게 분할 과제를 주어 돈을 만든다. 도둑질을 하라는 소리는 안 한다. 그저 ‘인민들 속에 들어가 해결하라’는 말을 한다.
 
병사들은 지휘관의 그런 말을 ‘인민들 모르게 도둑질하라’는 말로 받아들인다. 병사들은 도둑질을 하다가 걸리면 지휘관을 팔지 않고 본인이 책임지는 것을 최고의 의리로 간주한다.
 
하지만 가끔 의리 없는 병사들이 생겨 곤경을 겪는 지휘관들이 많다.
 
도둑질을 하다가 사회 민간인에게 잡히면 경무부(헌병)나 군단 검찰서를 통해 부대에 통보가 온다. 나도 소대장 시절에 두 번 정도 군단 검찰에 불려갔었다. 한번은 소대의 중급병사가 한 여성의 자전거를 훔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농장 탈곡장을 소대병사들이 습격한 사건 때문이었다.
 
두 사건 모두 내가 분대장을 통해 돈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 이후로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으로 나는 처벌을 받았고 승진의 기회를 놓쳤다. 보통 소대장 직무는 2년, 길게는 3년 정도지만 그 사건으로 받은 처벌로 나는 5년 동안 소대장의 직무를 수행하였던 것이다.
 
군인의 인생관은 혁명적 인생관이다. 수령께 끝없이 충성하는 길에 군인의 삶과 보람이 있고 최고의 가치가 있다는 것으로 정의한다. 당과 수령을 따르는 길에는 살아도 영광, 죽어도 영광이며 육체적 생명은 죽어도 수령이 준 정치적 생명은 영원히 빛난다는 의미다.
 
수령에게 충성하는 길이 군인이 존재하고 살아갈 이유다. 실제로 수령에 대한 충성이 인생을 평가하는 가치로 규정되는 북한 사회에서 충성은 불가피 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입으로 외우는 인생관과 마음의 인생관은 다르다.
 
누가 인생관에 대해 물어보면 모든 군인들은 순간의 망설임과 주저함이 없이 수령 충성의 인생관을 외워 바친다. 하지만 군인 상호 간에 통하는 인생관은 다르다. 병사 끼리 대화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는 서두가 “솔직히 말해서”와 “우리끼리 말인데” 이다.
 
이론은 이론뿐이고 실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군인들이 이야기하는 인생관은 너무나 단순하고 솔직하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통하는 군인에게 소원이 뭐냐는 질문을 한다면, 병사든 하사관이든 수령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라든가, 정치적 생명을 빛내고 싶다는 식의 이론대로 답하는 군인은 없다. 군인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한 번 만이라도 배불리 먹어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다” 혹은 “외국에 한 번이라도 가보고 죽는 게 소원이다”, “예쁜 처녀와 하룻밤 자보는 게 소원이다”는 말을 들을 것이 뻔하다.
 
<김경찬, 전 인민군 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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