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수기 (2편)

운영자
2014-07-2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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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 이야기는 한 탈북자의 삶을 사실 그대로 서술한것이며 여러 권으로 나눈다.
[필자는 북한에 있을 당시 어머니를 죽게 만든 범인을 찾아 복수하려고 방황 하던중, 10여명 정도 되는 북한 깡패조직에 가담하게 되며, 갈취, 폭행, 강도, 및 각종범죄를 하게 된다. 이후 한국에 와서도 모 폭력조직에 가담하여 폭력범죄 및 수감생활도 해왔으며 험난한 인생을 살아오던중 ,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지금은 신학의 길을 걷고 있다. 앞으로 필자는 수기 집을 통하여 북한의 깡패 생활과 남한의 생활을,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 구원 받게 된 과정을 서술할 것이다.]
" 구 원 "
필자는 말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중에 그 무엇이라도 다 이유가 있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꽃 한 송이에도 그 의미와 빛깔이 있고 색채가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이 그 삶과 의미야 없겠는가 마는?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독교를 핍박하며 인간을 숭배 하는 저 북한 땅은 인간의 존엄이나 명예, 목숨, 가족 따윈 보잘 것 없으며 소수의 인간들만이 사람이란 대접과 주체사상이라는 허울뿐인 종교 아래 스스로가 인성을 말살시키며 살고 있다. 하나님마저 등 돌린 저 북한 땅은 지구 위에 드러나 있는 지옥이다."
누나는 이제 학교를 갓 졸업한 여동생을 데리고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뛰어다녔다. 지어는 어린나이에 가당치도 않는 술장사에도 손대기 시작하였다. 누나는 술꾼들의 술주정과 외상값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버텨 나갔다.
어린 막내 남동생은 집안 형편이 어렵다나니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산에 나무하러 다니기 시작하였다.
오직 필자만 그대로였다. 그는 배급(식량)을 하나도 안주는 직장을 맨날 정상적으로 출근 하였다.
*남한사람들은 이해 못할 것이다. 왜 일한 대가 도 없는데 일하러 다니는지? 힘들게 사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지? 없다! 당에서 바라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회주의 낙오자가 되며 낙오자는 지탄과 경멸을 받는 자 가 된다. 살아도 오직 당을 위해서 살아야 하며 죽어도 당을 위해서 죽어야한다.
이것은 북한에서 유치원부터 교육하는 사상이다. 오직 김일성과 당을 위해 충성하며 당이 부르면 서슴없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3살부터 죽을 때까지 가르치는 세뇌 교육이며 의무이다.
이것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그 무엇도 용납 되지 않는다. 숨거나 회피는 안 된다. 북한은 일체 모든 것이 점조직으로 되어 있으며 그 조직에는 사상적으로 튼튼히 무장된 당 비서와 사상이 불손한 자들을 다스리는 보안기관 과 경찰기관들이 있다.
북한은 어려서부터 학교진학과 사회진출 모두 조직에서 관리하며 체계화 되어 있다. 학교는 의무적으로 다녀야 하며 결석 하면 그에 해당한 처벌을 받는다.
(북한은 무료교육이라는 틀에 얽매어 있다) 또한 반 학생들로부터 사상교육이라는 집단 구타와 경멸을 받는다. 사회생활도 만찬가지이다.
본인이 소속된 단체에서 생활이 불손하면 그에 따르는 처벌을 받는다. 보안기관에서 선택된 건장한 청년들이 위생시설이 하나도 안 되여 있는 노동단련대의 건물에서 조직생활을 제대로 안하는 남녀 모두를 쓸어 넣고 강 금 및 구타를 한다.
썩은 보리밥 반 그릇에 소금물을 먹이고 낮에는 노역장에서 무차별적으로 일을 시키며 밤에는 감금하고, 자신들은 술놀음에 시간 보내고, 심심하면 노동단련대 기숙사에 들어가 사람들을 패기도하고 지어는 여자들을 성폭행하기도 한다.
이런 사상교육 노동단련을 6개월 동안 하여야 하며 그 안에서의 생활을 잘하면 좀 더 일찍 풀려나오던지 아니면 기간이 연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도 불평불만 못한다. 신고 할 데도 없고 신고하여도 들어줄 사람도 없다. 왜? 그는 신고인이기 전에 당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은 불손분자 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집안이라고 예외는 없다. 누나는 군수품공장에서 일하였는데 잦은 결근으로 인해 누나도 노동단련대에 잡혀 들어가 사상교육이라는 노동단련을 2달간 받았으며 삼촌이 공장에서 간부인덕에 일직 풀려 나왔다.
여동생은 아빠가 다니던 공장에 취직하였기에 결근을 하여도 당 비서가 눈감아 주었다. 하지만 필자만은 열심히 출근하였다. 그는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어머니가 화병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오직 일터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
나라에서 쌀을 주던 안주던 굶어도 출근하는 것은 당연하듯이 생활하였다. 어머니가 화병으로 돌아 가시던 날 피눈물을 훌렸다.
일제 강점기 때 외할머니는 지주의 첩으로 일남이녀를 낳고 살았었다. 해방이 되고 북한에서 지주 청산을 하던 날 외할아버지는 금은보화를 모두 걸머쥐고 첩을 버리고 본처와 형제 9남매와 같이 남한땅으로 도망 가셨다.
지주 첩의 자녀로서 어머니는 시댁에서 많은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살아오셨다. 친할아버지가 독립 운동가이시며 친가 모두 공산당 골수분자들이다보니 어머니의 시집살이는 비참하였으며 너무나도 힘든 생활 이였다.
일가친척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도 어머니는 어미닭이 병아리를 보호 하듯이 자녀들을 감싸않고 몸부림치며 살아오셨다. 그런 어머니가 생전에 웃음한번 크게 웃어도 못보고 한 많은 세상을 등지고 자녀들마저 버리고 저세상으로 가셨다.
약 한 첩 마음껏 써보지도 못하고 누구한데 속 시원히 원망 한번 못해보시고 화병으로 그토록 고단했던 삶을 마치신 것이다.
화병이란 한마디로 스트레스를 말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속으로 썩혀야하며 과부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한마디대꾸 없이 자녀들만 바라보며 살아오시던 어머니!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오셨으면 화병으로 인해 돌아가신단 말인가?
죽을 때마저도 자녀들에게 해가 미칠 가봐 유언 한마디 없이 그냥 묵묵히 자식들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고 눈도 못 감으시고 운명하시던 어머니!
세상이 저주스럽다.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이 미워졌고 모두 때려죽이고 싶었다.
어머니를 땅에 묻던 날 4남매가 모여앉아 서로 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것을 본 동네 사람들은 손가락질 하였다.
어미를 잡아먹고도 뭐가 좋아서 웃고 있냐고 뒤에서 욕을 하였다. 하지만 그때 벌써 어린 4남매는 인생의 무의함을 경험한 것이다.
오늘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지 않으면 언제 다시 이런 날이 올지 모른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누나23살, 필자는 21살, 여동생19살, 남동생17살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으나 그 웃음은 너무나 서글펐다. 그날 이후부터 그 집에는 웃음이 없었다.
누나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여동생에게만 조용히 말을 남기고 행방불명되었다. 필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출근을 하지 않았고, 방구석에서 칼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13cm 정도 되는 칼날에 자루를 맞추고 칼집까지 만들었다. 그의 목적은 하나였다. 오직 사기꾼들을 찾아 죽여서 어머니의 한 을 풀어 드리는 것이다. 자신에게 싸움꾼 기질이 있다는 것을 안건 한참 뒤의 일이다. 하더니 되더라, 싸우니까 이기더라, 물러서지 않고 악착같이 덤벼드니 살아남더라.
그의 싸움 성향은 정해졌다. 두 번 맞더라도 한번 때릴 각오로 덤빈다. 얼굴이 묵사발 되고 오장 육부가 끊어질 정도로 아파도 독기를 품고 덤벼든다. 한 가지는 분명히 알려준다. 이기려면 죽여야 한다는 것. 죽이지 않고는 싸움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이제는 어머니도 없고 가정은 풍지 박살이 나고 의지할 되도 없는데 살아서 무엇 하랴.
비웃는 자, 멸시하는 자, 모두 죽도록 흠씬 두들겨 팼다.
싸움기술은 점점 늘었다. 싸움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흠뻑 빠져 들었다. 그럴수록 그이싸움은 치열 해졌다. 사람을 병신도 만들어보았고 병신 되도록 맞아도 보았다.
(다음에 계속)
탈북자 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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