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수기 (1편)

본문
" 구 원 "
이 이야기는 한 탈북자의 삶을 사실 그대로 서술한것이며 여러 권으로 나눈다.
[필자는 북한에 있을 당시 어머니를 죽게 만든 범인을 찾아 복수하려고 방황 하던중, 10여명 정도 되는 북한 깡패조직에 가담하게 되며, 갈취, 폭행, 강도, 및 각종범죄를 하게 된다. 이후 한국에 와서도 모 폭력조직에 가담하여 폭력범죄 및 수감생활도 해왔으며 험난한 인생을 살아오던중 ,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지금은 신학의 길을 가고 있다. 앞으로 필자는 수기 집을 통하여 북한의 깡패 생활과 남한의 생활을,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 구원 받게 된 과정을 서술할 것이다.]
필자는 말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중에 그 무엇이라도 다 이유가 있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꽃 한 송이에도 그 의미와 빛깔이 있고 색채가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이 그 삶과 의미야 없겠는가 마는?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독교를 핍박하며 인간을 숭배 하는 저 북한 땅은 인간의 존엄이나 명예, 목숨, 가족 따윈 보잘 것 없으며 소수의 인간들만이 사람이란 대접과 주체사상이라는 허울뿐인 종교 아래 스스로가 인성을 말살시키며 살고 있다. 하나님마저 등 돌린 저 북한 땅은 지구 위에 드러나 있는 지옥이다."
제1장, 무정한 세상
압록강. 이강은 중국과 북한의 경계선이며 탈북자들의 유일한 탈출로이기도 하다. 때는 1999년 8월, 장마철이라 강물은 불어 여느 때보다 강 수위가 올라갔으며 물은 광산에서 채석을 씻어 혼탁하기 그지없는 어느 날.
반자동총을 멘 군인 두 명이 강둑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철로를 걷고 있다. 몸이 왜소한 군인은 무엇이 즐거운지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그보다 키가 큰 군인은 총을 추슬러 메면서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으나 눈은 쉴 새 없이 강변을 훑고 있다.
그들이 지나가고 얼마 안 있어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키가 작은 사내가 수풀을 헤치고 나온다. 그는 저 멀리에서 걸어가는 군인들의 뒤 모습을 슬쩍 쳐다보고는 곧 강가로 내려간다. 강가에 도착한 그는 옷을 적시면 안 된다는 듯이 옷을 벗어들고 물로 들어섰다.
용기 있게 한손에 옷을 들고 한손으로 수영 할 듯이 압록강에 뛰어들었던 그는 생각 외로 강물이 깊어서 인지 잠시 망설이다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듯 수영하기 시작했다.
한손으로 수영을 하며 반대편으로 나아가던 그는 중간에서 갑자기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물살이 빠른데 왼손에 옷을 들었으니 그 옷이 물살에 밀려 목에 감긴 것이다. 허우적이며 한번 물을 먹기 시작 하더니 정신을 못 차리고 연속 물을 들이키더니 끝내는 떠내려가고 말았다.
시커먼 흙탕물을 정신없이 먹으며 온갖 몸부림을 치며 물살과 맞섰으나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며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사람은 죽게 되면 지나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했던가? 더 이상 발버둥 칠 힘이 없고 정신은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잃어가는 정신 속에 그동안 살아오던 추억들이 눈앞에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량강도의 어느 시내 마을.
다른 집들은 하모니카 주택이나 이 집은 도로가 옆에 나란히 있는 큰집이다. 집은 왜정 때 단독주택이여서 그런지 크고 고급스럽다.
집 옆에는 70~80년은 살아온 듯한 버드나무가 가지를 내리우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창가에는 아름다운 꽃 들이 터 밭을 이루고 있다. 여느 가정과 다름없이 이집에도 아이들이 웃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오히려 다른 집보다 더 시끄럽다고 표현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집은 양부모와 자식이 4명이나 되는 대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1994년, 절세의 태양이며 신으로 군림하던 김일성이 죽기 전까지는 그래도 이집은 동네에서 부유한 축에 속하였다. 아무리 똑같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을 추구 하는 공산주의라고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 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시대 독립군으로 싸우다 돌아가셨으며 아버지는 구역에서 일 잘하고 ‘당’을 위해 헌신 하는 애국자로 소문나 있었다. 그렇게 당을 위해 헌신 하시던 아버지가 40대 중반에 암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전에는 독립군 집안이여서 국가에서 선물과 상장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 이였다. 그때부터 어린 4남매를 살리기 위한 어머니의 몸부림이 시작 되었다.
어머니는 시골에서 시집오셨으나 손재간만은 동네에서 인정 하였다. 동네 아주머니들 머리도 자르시고 파마와 염색도 해주었다. 특히 옷 수선(재봉)과 디자인을 직접 제작 하시면서 남다른 패션 감각을 가지고 계셨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녀들이 다른집 자녀들보다 짝지울가봐 옷,신발,가방,을 항상 눈여겨 살피신다.
외가 쪽이 모두 시골에 살아서 집안 의 기둥이고 생계의 버팀목인 아빠가 돌아가셨어도 어머니의 수입과 외가 쪽이 틈틈이 보내주는 식량 (조, 콩, 쌀, 기장, 녹두) 으로 인해 아빠가 살아 계실 때 생활형편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없어도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없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생활을 하였으며 집안이 시끌벅적 하게 뛰 놀곤 하였다.
특히 필자는 아빠대신 집안의 기둥으로 불리며 어려서부터 어른대접을 받았다.
먹는 것도 다른 형제들보다 더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으며 항상 우선시 되었다.
그러던 그의 집안에도 풍파가 닥친다.
전문사기꾼들에게 누나가 잘못 걸려들어 집안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재봉기와 재물들이 약탈당했다.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호소하여 사기꾼들로부터 재물들을 지킬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으셨다. 이제 22살 밖에 안 된 자신의 맏딸이 사기꾼들에게 농락당했다는 소문이 두려웠고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집안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하였다.
어머니는 유일한 락이었던 재봉기를 사기당하시고 식음을 전폐하시더니 화병에 걸리셨다. 그때부터 가족을 먹여 살리려는 누나의 몸부림이 시작 되었다.
(다음에 계속)
탈북자 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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