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남조선과 실제 알고 있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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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태어나서 자란 탈북자들은 남한에 입국해서야 북한에서 받은 남한에 대한 교육과 선전이 너무 허황하고 날조된 것임을 안다. 미제의 식민지, 깡패소굴, 썩고 병든 자본사회, 인간이 돈의 노예가 된 사회 등이 북한이 주입한 남한에 대한 인식이다.
어린 시절에는 ‘양코배기 미국놈’ 때려 부수는 군사놀이를 하면서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다. 유치원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지난 조국해방 전쟁 시기 미제 승냥이(늑대)놈들은 아무 죄 없는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를 수만 명이나 학살한 극악한 살인마들이에요. 놈들은 심지어 우리 어린이들도 공산주의 물을 먹고 태어난 빨갱이라면서 총으로 쏘아 죽이고 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죽였어요”라고 했다.
내가 인민학교 시절에 받은 교육에는 ‘꾀죄죄한 옷에 깡통을 차고 다니는 남조선 어린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 가지 못한다. 그들은 미군 구두를 닦으며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으며 미군이 버린 껌을 주워서 먹기도 한다. 미국놈들은 부대 인근 학교에 마구 들어가 어린 소년소녀들을 마음대로 희롱하며 쾌락을 즐기는 인간백정들이며 이것을 보고도 아무 말 못하는 남조선 인민들과 학부모들이다’는 교육을 수도 없이 받으며 자랐다. 중학교 시절에는 ‘남조선은 주둔한 미군에 의해 60만 명 이상의 주민이 에이즈라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병마의 소굴, 학비와 생계를 위해 미성년자까지 몸을 팔고 피를 파는 패륜패덕의 사회, 범죄의 천국이다’는 내용의 교육을 암기할 정도로 들었다.
이런 세뇌교육으로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보낸 후 군에 갔다. 군에서는 더욱 강한 반미・반한 교육을 받았다. 인식의 단계를 초월하여 그 흉악한 적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군인에 있어서 대적교육은 사활이 걸린 문제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은 계급투쟁(적과의 싸움)의 전초선으로 표방된다.
그 전초선에 서 있는 대부분의 군인들은 10년간 집요한 정신교양으로 적에 대한 적개심과 함께 복수심을 불태운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계급투쟁의 전초선에 나간 사람이 학창 시절에 가졌던 대적관을 싹 바꾸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특히 남북 접적지역 주둔 부대에 배치된 군인들 속에 이런 현상이 많다. 10년간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국이 마냥 밉게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방부대 군인은 특별한 선정 기준에 따라 선별된다. 출생성분과 가족 및 친척관계, 학교 청년동맹 추천서 등에서 아무 문제없는 그야말로 미끈한 사람이 선택된다. 하지만 성분이 좋은 사람이라고 유혹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방부대 군인의 남한에 대한 인식 변화의 시작은 남한에서 보내는 대북방송과 전단에서 시작된다. 매일 같이 진행되는 대북방송, 하루가 멀다하게 무심코 줍는 전단이지만 그 과정이 몇 년간 반복되다보면 마음이 끌리는 구석이 있다. 처음에는 ‘대체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하는 호기심으로 시작을 했지만 나중에는 전단 줍는 게 은근히 기다려질 정도다.
1999년 가을, 부대에서 장교 한명을 공개처형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병사 시절을 최전방 민경에서 보냈고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민경 소대장으로 장교 생활을 시작했다. 또한 지휘 능력과 혁명적 계급성을 인정받아 장교가 된지 2년 만에 민경중대장이라는 고속 승진을 했다. 그는 나의 첫 중대장이기도 하다.
대대 상급참모로 승진되어 김일성군사대학 예정자로 뽑혔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범죄자로 처형된 것이다. 공개처형장에서 보위사령부 특별재판소의 총살형이 선고될 때 나는 바지에 오줌을 갈겼다. 그를 아는 모든 군인들도 공포에 떠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의 죄명은 적군과의 내통 및 허위사실 유포 죄다.
최고 검찰소 검사의 조사기록에 따르면 그는 하사관 시절, 공동경비구역 순찰 경계를 담당했던 시절부터 적과 내통을 했다는 것이다. 내통했다는 구체적인 사실 내용을 밝히지 않는 것을 보면 담배 따위를 얻어 피운 것 같다. 게다가 그는 가정용 TV의 주파수를 불법으로 변경하여 남한 TV를 봐왔으며, 적들의 악랄한 반공화국 선전에 동조하여 최고 권위를 욕되게 하는 발언도 꺼리지 않았으며, 공화국의 신성한 존엄을 모욕했다고 한다. 훗날 뒷소문으로 들은 말이지만 그는 가까운 친구들과의 술좌석에서 김정일의 첫 여자가 성혜림이라는 유부녀였다는 사실을 얘기했다는 것이다. 또한 남한의 평가대로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낙후하고 못사는 후진국이라고 자평했다는 것이다.
잠시 후 요란한 12발의 총성이 울렸다. 공개처형을 보고 부대로 돌아온 군인들의 얼굴은 무서움과 공포에 질려 있었다. 배고픔에 시달려 식사 시간 때면 동작이 빨라지던, 그래서 식당에 앉기 바쁘게 밥그릇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던 군인들이었지만 그날은 식사 대열이 절반 정도밖에 안 되었다. 입맛을 잃어 밥을 남기는 군인도 많았다.
남한에 대한 사소한 동경과 환상은 곧 죽음이다. 진실을 알려고 해도, 아는 진실을 말하려 해도 안 된다. 그래서 북한 군인들은 ‘알면 다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또 ‘도수(정도)가 지나치면 죽는다!’는 말을 한다. 말과 진심은 구분해야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북한군인들 속에 남한에 대한 진실을 아는 사람이 예상 외로 많다고 확신한다. 숨길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진실이 그들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많은 진실은 군인 개개인의 인식 속에 묶여 있다. 서로가 함께 할 수 없는 진실, 서로에게 표현할 수 없는 진실이 그들에게 있다. 그것이 바로 북한이 가르친 남한이 아닌 본인 스스로가 인식한 한국일 것이다.
전 조선인민군 소위 신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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