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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연예인들의 명예칭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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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연기자
2012-06-03 14:34 76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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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서의 명예칭호의 기준과 척도

북한에서 명예칭호는 당에 대한 충실성의 척도이며 수령옹위정신의 귀감으로 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명예칭호이다.
그러나 당, 군부 및 정권기관, 과학, 교육, 문화의 모든 부문에 따라 명예칭호의 척도는 서로 다르게 규정되고 실시되는 것이 북한이다.

당 기관들에서의 명예칭호는 김일성이 주장하는 이른바 ‘빨찌산 줄기’의 혈통에 따라 정의 되고 결정되는 것이고 그 뿌리는 2세대. 3세대를 넘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다.

 군부에서의 충실성의 척도는 물론 ‘줄기’에 의한 것도 있지만 북한의 김부자를 위해 얼마나 목숨 걸고 피를 흘렸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북한에는 전쟁영웅도 많지만 남한의 대남전략 관철 수행에서 헌신한 사람들에게 수여되는 영웅칭호들이 대 부분을 이룬다.

정권기관, 과학, 교육, 의학, 언론, 체육기관들에서의 명예칭호는 김부자의 현지지도나 현지시찰 과정에 얼마나 만났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실지 김부자의 현지시찰 과정에 단 한번이라도 만나고 손 한번 잡아보는 사람들에게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령’으로 에외 없이 다음 날이면 ‘노력영웅’칭호가 수여 된다.

문화예술분야에서의 명예칭호는 정해진‘ 빽‘에 기초하여 수여된다.


 

-  명예칭호의 구분과 형성과정

북한에서의 명예칭호는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특히 북한에서 가장 먼저 출연한 명예칭호로서는 해방후 부조선 임시인민정부가 수립될 당시 처음으로 제정된 ‘모범 농민’이라고 볼 수 있다. ‘모범 농민’이라는 것은 황해도의 한 농민이 토지개혁이후 처음으로 농사지은 땅에서 생산한 쌀을 김일성에게 주면서 ‘김일성 종합대학’건설에 바쳐달라고 호소한 일을 계기로 생겨난 것이다.

그 이후 6.25전쟁 발발 후 이른 바 전쟁에서 목숨 바쳐 싸운 사람들에게 수여한다고 하면서 ‘공화국영웅’칭호를 만들어 낸 것이다. 명예칭호에서의 ‘인민’과 ‘공훈’칭호는 1952년에 제정되었다고는 하나 실질적으로는 전쟁 시기 남한의 문화예술인들과 과학자들을 거의 랍치하여 들여오는데 필요한 하나의 정치적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전쟁시기 유엔군에 의한 북한군의 후퇴는 남한의 귀중한 문화예술인들과 과학자들에 대한 전문적인 랍치 및 회유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 공작반들의 활동에 보다 큰 의의를 부여하게 하였다. 그들의 지위를 높여주고 정치적인 선전의 도구로 이용해야 하는 중대한 임무는 그들의 명예를 일신시키고 확산시켜주기 위한 새로운 도구를 필요로 하였다. 그리하여 북한에서는 처음으로 인민배우로 ‘문예봉’을 선택했고 ‘신분이나 출신의 차별을 문제시하지 않는 진정한 조국’이라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 하였던 것이다. 대내외적인 선전에는 이처럼 위력한 무기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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