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마지막 유언

운영자
2013-04-1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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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세상에 태어났다가 언제인가는 떠나는 것이 인생이다. 그리고 울며 태어나는 모습은 거의 같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서로가 다르다. 그래서 울며 왔던 인생 웃으며 마감 하자는 말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 인생이 이 어두울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있다. 바로 탈북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폭압에 항거하여 인생의 대용단으로 탈출하여 남한에서 새로운 삶의 희열을 느끼며 산다고 해도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항상 저 멀리 두고온 고향과 부모 형제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가슴 한 가운데 깊이 남아 있다.
2001년에 탈북한 저의 아버님도 북에 두고온 자식과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국생활이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았다.
맛있는 밥상을 마주할 때나. 거리를 산책하며 평화로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실 때도 문득 떠오르는 고향에 두고 온 자식으로 하여 찢어지는 아픈 가슴을 달래야만 했던 아버님이시었다.
그때마다 아버님은 두 눈에 촉촉한 눈물을 고이시며 저에게 고향이 그립다고, 또 만약 이 아버지가 고향에 돌아 가지 못하고 이대로 눈을 감는 다면 통일이 된 다음에 라도 꼭 내 고향에 보내 달라고 당부하군 하셨다.
억울한 인생을 강요하고 안좋은 추억만을 새겨준 고향 이지만 못다한 그 무언가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다정한 유년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곳이어서인지 탈북민들은 누구나 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픈 가슴을 쓸어 내릴 때가 많다.
지난달 아버님께서 그렇게도 가보고 싶어 하셨던 고향에 가 보시지도 못한채 한 많은 세상을 떠나셨다.
별세하기 며칠 전 저를 불러 앉혀 이런 말을 했다. "고향에 가게 되면 네 누나한테 아버지가 그동안 너무 미안했다고 전해주거라. 그리고 누나가 여기 오지 않겠다 하는걸 걸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말거라. 고향을 지키는 형제가 있어야 앞으로 고향에 돌아가면 그래도 널 반길 사람도 있는게 아니겠느냐. 너만이라도 살아 있을 때 통일이 되면 고향에 가 보아야 할텐데 "라고..
장례를 치루고 아버님의 유골 함을 집에 모셨다. 그리고 나는 아버님께 굳게 약속 했다. "꼭 아버님의 유언을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고향을 떠난 것이 아니라 고향을 잃으신 것이다.
그리움을 안고 살면서도 가 보고싶어도 갈수 없고 , 가서도 안되는 인권불모의 북녘땅을 우리는 자랑스러운 내 고향으로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바야흐로 때는 왔다. 우리는 우리에게서 고향을 빼앗아간 김정일 독재자에 이어 그의 아들 김정은과의 결사전을 각오 해야 한다.
그래서 억울하게 고향을 빼앗긴 2 만 6 천명의 탈북민들을 비롯하여 3/8선이 가로 막혀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 가지 못하고 억울하게 고향을 잃어버린 우리 한 겨레 , 한 민족 모든 사람들의 사무친 원한을 기어이 풀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것만이 오매 불망 우리의 선조들이 그토록 갈망하고 21 세기 현 시대에 새롭게 태여난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마련해 나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 북민전 길명호 ]
하지만 마지막 인생이 이 어두울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있다. 바로 탈북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폭압에 항거하여 인생의 대용단으로 탈출하여 남한에서 새로운 삶의 희열을 느끼며 산다고 해도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항상 저 멀리 두고온 고향과 부모 형제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가슴 한 가운데 깊이 남아 있다.
2001년에 탈북한 저의 아버님도 북에 두고온 자식과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국생활이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았다.
맛있는 밥상을 마주할 때나. 거리를 산책하며 평화로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실 때도 문득 떠오르는 고향에 두고 온 자식으로 하여 찢어지는 아픈 가슴을 달래야만 했던 아버님이시었다.
그때마다 아버님은 두 눈에 촉촉한 눈물을 고이시며 저에게 고향이 그립다고, 또 만약 이 아버지가 고향에 돌아 가지 못하고 이대로 눈을 감는 다면 통일이 된 다음에 라도 꼭 내 고향에 보내 달라고 당부하군 하셨다.
억울한 인생을 강요하고 안좋은 추억만을 새겨준 고향 이지만 못다한 그 무언가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다정한 유년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곳이어서인지 탈북민들은 누구나 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픈 가슴을 쓸어 내릴 때가 많다.
지난달 아버님께서 그렇게도 가보고 싶어 하셨던 고향에 가 보시지도 못한채 한 많은 세상을 떠나셨다.
별세하기 며칠 전 저를 불러 앉혀 이런 말을 했다. "고향에 가게 되면 네 누나한테 아버지가 그동안 너무 미안했다고 전해주거라. 그리고 누나가 여기 오지 않겠다 하는걸 걸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말거라. 고향을 지키는 형제가 있어야 앞으로 고향에 돌아가면 그래도 널 반길 사람도 있는게 아니겠느냐. 너만이라도 살아 있을 때 통일이 되면 고향에 가 보아야 할텐데 "라고..
장례를 치루고 아버님의 유골 함을 집에 모셨다. 그리고 나는 아버님께 굳게 약속 했다. "꼭 아버님의 유언을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고향을 떠난 것이 아니라 고향을 잃으신 것이다.
그리움을 안고 살면서도 가 보고싶어도 갈수 없고 , 가서도 안되는 인권불모의 북녘땅을 우리는 자랑스러운 내 고향으로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바야흐로 때는 왔다. 우리는 우리에게서 고향을 빼앗아간 김정일 독재자에 이어 그의 아들 김정은과의 결사전을 각오 해야 한다.
그래서 억울하게 고향을 빼앗긴 2 만 6 천명의 탈북민들을 비롯하여 3/8선이 가로 막혀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 가지 못하고 억울하게 고향을 잃어버린 우리 한 겨레 , 한 민족 모든 사람들의 사무친 원한을 기어이 풀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것만이 오매 불망 우리의 선조들이 그토록 갈망하고 21 세기 현 시대에 새롭게 태여난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마련해 나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 북민전 길명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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