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언제까지 충성을 맹세하며 살아야 할까

운영자
2013-04-1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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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인 어제 조업 중 풍랑을 만나 목숨을 잃으면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를 안전하게 지켜낸 선원들에 대하여 북한의 노동신문과 언론 매체들이 일제히 떠들고 나서고 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평안남도 증산군 앞바다에서 파도를 만나 침몰한 'ㄷ-자-91885'호 선원 5명은 죽음의 순간까지 김 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를 습기가 새어들지 않게 포장을 한후 자기들의 생명을 다 바쳐 구해냈다고 우리시대의 영웅들 이라고 평가하고 나섰다.
노동신문은 선원들이 선박 침몰 당시 구조하러 온 다른 배에 "더는 배를 구원할 가망이 없다.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초상화를 안전하게 모시었다. 염려말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들 선원은 사고 15일 후인 지난해 12월 4일 황해남도 룡연군 장산리 앞바다 기슭에서 초상화를 넣은 수지통과 몸을 밧줄로 묶은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이처럼 작년에 일어난 일을 뒤늦게 노동신문을 통해 소개한 것은 대외적인 강경 대치국면에서 내부적으로 최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주민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노동신문은 "보름 동안이나 바다에서 표류했지만 그들이 지켜낸 초상화에는 한점의 물방울이나 습기도 스며들지 않았다"며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실천적 모범으로 보여준 그들의 수령 결사옹위의 모습을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강조 하면서 북한 인민들을 사실상 김정 에 대한 충실성을 보여줄것을 강요한것이나 다름이 없다.
1980년대 때에도 북한에서 박영덕 선장이 바다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를 가슴에 안은채 배와함께 생명을 마감한 사실이 있었을 때에도 당과 조국에 충실한 진정한 영웅이라며 크게떠들고 그것도 모자라 북한의 모든 백성들에게 박영덕 선장의 모범을따라 배울것을 수년동안 교육한적도 있다.
북한의 남포수산연합기업소 에 다니던 박영덕이 1978년 5월 선장으로 부임한 512호는 선장까지 합하여 모두 7명이 타게 되여있는 28톤짜리 나무배였다.
그때당시 북한에서는 "충성의 100일전투" 가 벌어지고 있었느데 6월8일에 출항하여 서해 어장에서 물고기를 잡던중 어한상태의 변동에 따라 6월27일 낮 석도에서 잡은 물고기를 부리우고 또 다시 몽금포 어장으로 가던도중 자욱한 안개때문에 방향을잃고 대한민국 국경선으로 넘어오게 되였다.
투항하라고 확성기를 불어댔지만 박영덕 선장은 항복할 대신에 모든 선언들에게 결사전을 준비하라고 하면서 본국에 무전을 날린후 식칼과 도끼로 선원들을 무장시켰다.
그는 암초에 부딛칠 지언정 남한에 잡혀가지 않겠다는 오직 한가지 생각으로 배의 모든 불을 끄고 최대 속력으로 질주를 벌렸다
그러면서도 그물에 매단 20 킬로짜리 연추 2개와 15킬로짜리 연추 하나를 마저 풀어 양쪽 어깨와 목에 매달고 다른 선원들도 모두 그렇게 하라고 이른후 배에 있던 무선기를 바다에 던진후 김일성, 김정일 의 초상화를 물이새어 들지 않게 비닐로 꽁꽁 감은후 자기 가슴에 품은채 남측 함정과의 추돌끝에 바다에 몸을 던져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잃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불과 36살이였으며 평범한가정의 남편으로 아이 아빠로 직맹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결국 북한에서는 살아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던 조선로동당원으로 공화국영웅 증서와 금별메달 국기훈장 제 1급을 수여하면서 근로단체 출판사에서 는 [우리시대의 영웅들] 과 [영생의길 -남포수산 연합기업소 앙강망선 512호 선장 이였던 박영덕 동무에 대한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책까지 발간해가면서 북한의 모든 사람들이 박영덕 선장의 모범을 따라배워 모두가 당과 수령께 충실한 혁명가가 되여야 한다고 격조높이 호소하고 나선적도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 받았던 교육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들을 그때처럼 총알받이로 내 세워가며 자기에게 충성할것을 강요하고 나서고 있다.
북한은 전쟁 발발 등 유사시에 김정일 위원장과 그 부모의 초상화·동상 등을 보존하도록 하는 원칙을 세우고 주민들에게 교육해 오고 있다.
북한에서는 매 가정마다 일단 화재 가 일어 나거나 뜻 하지않는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우리 대한민국 국기를 넣어 두는 그런 보관통 같은 데다가 3대 김부자들의 초상화를 넣어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그것을 가정의 충실성의 척도로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어린시절부터 쇠뇌 교육을 시키고 있다.
이번에 일어난 사건 역시 똑같은 방법중의 하나이다. 최근들어 남북간의 정세가 극도로 긴장되고 북한에 대한 세계여론이 더 한층 고조됨에 따라 북한의 백성들에게 정치적 자각성을 더 한층 부각시키고 나아가 김정은 권력 통치자에게 자신들의 귀한 생명도 기꺼이 바치면서까지 충성을 맹세케 하려는 북한의 인간 말종들이나 할수 있는 수단과 방법중의 하나인 것이다.
[겨레얼통일연대 최영옥 기자]
이 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평안남도 증산군 앞바다에서 파도를 만나 침몰한 'ㄷ-자-91885'호 선원 5명은 죽음의 순간까지 김 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를 습기가 새어들지 않게 포장을 한후 자기들의 생명을 다 바쳐 구해냈다고 우리시대의 영웅들 이라고 평가하고 나섰다.
노동신문은 선원들이 선박 침몰 당시 구조하러 온 다른 배에 "더는 배를 구원할 가망이 없다.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초상화를 안전하게 모시었다. 염려말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들 선원은 사고 15일 후인 지난해 12월 4일 황해남도 룡연군 장산리 앞바다 기슭에서 초상화를 넣은 수지통과 몸을 밧줄로 묶은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이처럼 작년에 일어난 일을 뒤늦게 노동신문을 통해 소개한 것은 대외적인 강경 대치국면에서 내부적으로 최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주민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노동신문은 "보름 동안이나 바다에서 표류했지만 그들이 지켜낸 초상화에는 한점의 물방울이나 습기도 스며들지 않았다"며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실천적 모범으로 보여준 그들의 수령 결사옹위의 모습을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강조 하면서 북한 인민들을 사실상 김정 에 대한 충실성을 보여줄것을 강요한것이나 다름이 없다.
1980년대 때에도 북한에서 박영덕 선장이 바다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를 가슴에 안은채 배와함께 생명을 마감한 사실이 있었을 때에도 당과 조국에 충실한 진정한 영웅이라며 크게떠들고 그것도 모자라 북한의 모든 백성들에게 박영덕 선장의 모범을따라 배울것을 수년동안 교육한적도 있다.
북한의 남포수산연합기업소 에 다니던 박영덕이 1978년 5월 선장으로 부임한 512호는 선장까지 합하여 모두 7명이 타게 되여있는 28톤짜리 나무배였다.
그때당시 북한에서는 "충성의 100일전투" 가 벌어지고 있었느데 6월8일에 출항하여 서해 어장에서 물고기를 잡던중 어한상태의 변동에 따라 6월27일 낮 석도에서 잡은 물고기를 부리우고 또 다시 몽금포 어장으로 가던도중 자욱한 안개때문에 방향을잃고 대한민국 국경선으로 넘어오게 되였다.
투항하라고 확성기를 불어댔지만 박영덕 선장은 항복할 대신에 모든 선언들에게 결사전을 준비하라고 하면서 본국에 무전을 날린후 식칼과 도끼로 선원들을 무장시켰다.
그는 암초에 부딛칠 지언정 남한에 잡혀가지 않겠다는 오직 한가지 생각으로 배의 모든 불을 끄고 최대 속력으로 질주를 벌렸다
그러면서도 그물에 매단 20 킬로짜리 연추 2개와 15킬로짜리 연추 하나를 마저 풀어 양쪽 어깨와 목에 매달고 다른 선원들도 모두 그렇게 하라고 이른후 배에 있던 무선기를 바다에 던진후 김일성, 김정일 의 초상화를 물이새어 들지 않게 비닐로 꽁꽁 감은후 자기 가슴에 품은채 남측 함정과의 추돌끝에 바다에 몸을 던져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잃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불과 36살이였으며 평범한가정의 남편으로 아이 아빠로 직맹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결국 북한에서는 살아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던 조선로동당원으로 공화국영웅 증서와 금별메달 국기훈장 제 1급을 수여하면서 근로단체 출판사에서 는 [우리시대의 영웅들] 과 [영생의길 -남포수산 연합기업소 앙강망선 512호 선장 이였던 박영덕 동무에 대한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책까지 발간해가면서 북한의 모든 사람들이 박영덕 선장의 모범을 따라배워 모두가 당과 수령께 충실한 혁명가가 되여야 한다고 격조높이 호소하고 나선적도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 받았던 교육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들을 그때처럼 총알받이로 내 세워가며 자기에게 충성할것을 강요하고 나서고 있다.
북한은 전쟁 발발 등 유사시에 김정일 위원장과 그 부모의 초상화·동상 등을 보존하도록 하는 원칙을 세우고 주민들에게 교육해 오고 있다.
북한에서는 매 가정마다 일단 화재 가 일어 나거나 뜻 하지않는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우리 대한민국 국기를 넣어 두는 그런 보관통 같은 데다가 3대 김부자들의 초상화를 넣어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그것을 가정의 충실성의 척도로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어린시절부터 쇠뇌 교육을 시키고 있다.
이번에 일어난 사건 역시 똑같은 방법중의 하나이다. 최근들어 남북간의 정세가 극도로 긴장되고 북한에 대한 세계여론이 더 한층 고조됨에 따라 북한의 백성들에게 정치적 자각성을 더 한층 부각시키고 나아가 김정은 권력 통치자에게 자신들의 귀한 생명도 기꺼이 바치면서까지 충성을 맹세케 하려는 북한의 인간 말종들이나 할수 있는 수단과 방법중의 하나인 것이다.
[겨레얼통일연대 최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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