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재추대.. 조춘룡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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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 회의에서 김정은이 국방위 제1위원장에 재추대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북한은 실질적으로 독재체제이지만 형식적으로는 '민주적인' 체제를 표방하고 있다. 이는 북한체제 출범 초기의 형태에 기인한다.
당초 북한은 김일성·박헌영을 투톱으로 하는 집단지도체제에 가까웠다. 6.25전쟁만 해도 김일성뿐만 아니라 당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었던 박헌영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정적을 모두 숙청한 김일성은 70년대 스스로 주석직에 올라 스탈린식 독재에 가부장적 요소를 섞은 수령독재를 실시했다.
그러나 권력을 세습할 명분은 없었기에 김정일에게 당(黨) 요직을 모두 장악하게 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은 당 총비서, 국방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실질적인 제2의 수령으로 군림했다. 명분을 만들기 위해 주기적으로 '선거'를 실시했지만 그가 권력을 쥐고 있었기에 반대표가 나올 수 없었다.
김정은의 이번 국방위 제1위원장 재추대도 같은 맥락이다.
그나마 소위 '혁명 1세대'와 같은 약간의 견제나마 가능한 세력이 존재했던 김정일 시대와는 달리 김정은 시대에는 장성택마저 처형되었기에 김정은이 주석직 등극을 선포하고 형식적인 민주주의나마 노골적으로 철회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온다.

<김일성(왼쪽)과 김정일. 김일성은 혈통세습을 위해 갖은 수단과 편법을 동원했다>
김정은의 이러한 야심은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에 대한 수정 등에서도 드러난다.
김일성 신격화를 위해 만들어진 이 원칙을 김정은은 '당의 유일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으로 명칭마저 바꿨다. 스스로를 김일성에 견주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다만 '북한의 생명선' 중국이 변수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실시한 70년대 말~80년대 초부터 북한에 세습독재 중단과 중국식 개혁개방 수용을 촉구 중이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러한 진실을 왜곡하고 김정은의 제1위원장 재추대는 "인민의 의지"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11일 "전체 당원과 군(軍) 장병, 인민의 의지"라며 "김정은 동지의 유일영도 아래 하나와 같이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1차 회의에서는 조춘룡이라는 미지의 인물이 등장해 시선을 끌고 있다.

<조춘룡>
북한은 조춘룡을 국방위원으로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정부 당국자는 10일 언론에 "그동안 우리 당국에 포착되지도, 북한 매체에서 언급된 적도 없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조춘룡은 미사일 개발 업무에 몸담은 인물로 추정된다. 김정은은 지난해 "정밀화, 경량화, 무인화 지능화된 무기" 개발 가속화를 관련 당국에 지시했다. '정밀화' '경량화'된 무기는 핵무기·대륙간탄도탄(ICBM)을 가리키는 것으로 분석됐다.
조춘룡의 등장과 맞물려 국방위의 인사 이동도 진행됐다.
12명이었던 국방위원 수가 9명으로 줄어들었으며 김영춘 전 인민무력부장, 김격식 대장, 주규창 전 당 기계공업부장, 백세봉 전 당 제2경제(군수경제) 위원장 등이 탈락했다. 대신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및 조춘룡 등이 발탁됐다. 장석택 숙청에 깊이 관여하면서 2인자의 입지를 굳힌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은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
내각에서도 인사 이동이 실시됐다. 강석주는 내각부총리직에서 물러났으며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시절 그를 돌본 이수용 스위스 주재 대사는 외무상에 기용됐다. 외무성은 김정일이 "나의 외무성"이라 호칭하며 신임했을 정도로 북한 대외관계를 지휘해 온 사령탑이다.
[겨레얼통일연대 정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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