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도호 납치' 日 적군파 사진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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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좌 테러리스트 집단인 적군파의 일부 요원들이 1970년 3월 31일 민항기 요도호를 납치해 북한으로 끌고간 사건이 있었다.
당시 무려 129명의 일본인이 북한으로 끌려갈 뻔 했다. 9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김포공항 비상착륙 뒤 승객 전원을 석방하는 대신 야마무라 신지로 당시 운수성 정무차관을 인질로 잡고 끝내 북한으로 넘어갔다.
9명 중 1명은 1988년 북한 공작기관 요원으로 포섭돼 일본에 잠입해 활동하던 중 체포됐다. 또 다른 1명은 2000년 6월 태국에서 달러 위조혐의로 체포돼 일본에서 5년 징역을 살고 석방됐다. 3명은 사망했다.
그러나 나머지 4명은 여전히 북한에 생존하면서 일본 정부에 의해 송환을 요구받고 있다. 일본 측은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독재집단은 일본의 대북제재를 풀기 위해 납치범 가족의 귀국을 몇 차례 허용했을 뿐 이들의 송환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7일 일본 산케이 신문이 평양에 거주 중인 적군파 요원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신문이 교도통신 보도를 인용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생존 요원들은 대단히 노쇠한 모습이다. 그러나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등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7일 공개된 와카바야시 모리아키의 모습. 70년 3월 당시 요도호를 몰고 월북한 적군파 요원 중 한 명이다. 사진=산케이>
신문에 의하면 이들은 평양 중심부에서 차로 약 40분 정도 떨어진 대동강변 산림에 지어진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파트 외 사무소, 손님용 숙소, 식당 등도 갖춰져 있다.
북한 당국은 일반 주민들과 이들의 접촉을 막기 위해 이 같이 격리시킨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발전상이 소위 '혁명의 심장부' 평양 시민들에게 알려질 경우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정권의 주장이 거짓임이 단박에 드러나게 된다.
사진은 요원들의 초청을 받아 4월 말 방북(訪北)한 영화감독 모리 타츠야 등에 의해 촬영됐다. 모리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요원들이 북한 정권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이들이 일본인 납치 관여를 부정하고 있다며 귀국 후 결백함을 밝히길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모리의 주장은 큰 설득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우선 그의 방북이 적군파 요원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알려지다시피 북한은 김정은과 노동당이 지배하는 독재체제다. 적군파 요원들이 자의적으로 외국 손님을 초청하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이번 방북은 일북(日北) 회담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점해야 할 필요성을 가진 정권에 의해 의도적으로 이뤄졌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예를 들어 요원들의 생활상과 '일본인 납치 관여 無'를 부각시킴으로써 일본 내 공산진영 및 맹목적 반정부 운동에 나서고 있는 세력의 대북(對北)적개심을 누그러뜨려 이들이 반(反)자민당 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유도할 수 있다.

<모리 타츠야>
모리 자체의 성향도 그의 주장이 갖는 설득력을 낮추고 있다.
지난 2012년 3월 탈(脫)원전 운동에 서명한 바 있는 그는 대표적 반 자민당 성향의 인물로 알려진다. 일본 내 좌우대립 수위는 한국의 그것과 견줬을 때 결코 낮지 않다. 이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가 난무하는 환경 속에서 모리는 자민당의 납치자 문제 해결 의지에 자연스럽게 반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게다가 2006년 4월 28일 YTN 보도에 따르면 그는 장기수들의 북한 송환을 그린 한국 독립영화 '송환'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친북적 성향을 갖고 있거나 적어도 '평화적 북한문제 해결'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셈이다.
김정은 독재집단은 모리의 이러한 성향 외에 그의 인지도를 이용해 일본 내 친북여론 조성을 시도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논픽션작가이기도 한 모리는 1999년 발간한 저서 '방송에서 금지된 노래'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일본 사회에 적잖은 영향력을 가졌던 인물로 알려진다.
[겨레얼통일연대 NK사이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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