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테러 악몽에 시달리는 김정일 경호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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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 높은 독재자 김정일의 가장 큰 특징은 언제나 자신의 신변안전을 첫째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잔인한 독재통치로 죄를 너무 많이 지은 김정일이 항상 자기의 신변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 관계로 북한에서 김정일의 경호는 신비로울 지경으로 베일에 가려져 있다. 김정일은 북한의 수도라고 하는 평양중심지역에서도 항상 신변에 대한 테러가 두려워 차 이동도 특이한 방법으로 진행한다.
필자가 북한에서 목격한 사실. 김정일은 인민무력부 청사(국방부)에 들어올 때에는 무(無)번호를 단, 스타일이 똑 같은 형의 차 8대가 8자형을 지으며 본 청사까지 진입한다. 무력부 청사는 평양시 서성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서평양역 앞 네거리를 벗어난 김정일의 차 행렬은 그때로부터 8자형을 그으며 청사 기본호동까지 진입한다.
또한 평양시내로의 주행은 새벽에만 진행하며 초저녁이나 낮에는 신변이 두려워 무(無)번호 아닌 216-3333 번호를 탄 차 1~2대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김정일의 지방순찰은 절대비밀로 되여 있다.
일단 새벽에만 움직이는데 그때에는 비행기와 1호 행사열차(3개 편대), 육로는 차들이 동시에 움직인다. 겁이 많은 김정일은 사고의 위험성이 있는 열차나 비행기 편이 아니라 철저하게 방탄시설이 구비된 고급차로 움직이지만 비밀유지와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비행기와 열차를 동시에 운행시킨다.
그러므로 북한의 모든 방송 매체는 김정일의 지방현지 시찰 소식을 3~4일 지난 후, 김정일이 평양에 완전히 귀대한 후에야 언론에 공개한다.
또한 북한 호위총국은 1호위부와 2호위부로 나가는데 1호위 부는 김일성 호위, 2호위 부는 김정일의 호위다. 그들이 왼팔에 달고 다니는 배지도 서로 다른데, l호위 부는 만경대 생가를 2호위 부는 백두산 생가를 형성한 배지이다.
김일성이 죽은 후 1호위 부는 기본적으로 김일성의 영구가 있는 금수당의사당에 주재하고 있으며 2호위부가 김정일의 호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김정일은 1997년부터 ‘체제수호’에 악명을 떨친 무력부 보위사령부를 더 신임한다고 하면서 보위사령부에 자기를 특별히 경호하는 장교출신들로 구성된 10처라는 기구를 따로 만들어놓고 그들이 자동보총을 소유하고 김정일의 주변을 에워싸게 하였다.
또한 김정일의 예고 없는 시찰인 경우에는 군부대나 주민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근처의 건물이나 창고에 갇히게 되는데 어떤 경우에는 김정일이 돌아갈 때까지 하루 이틀씩 갇혀있어야 한다.
박대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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