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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TV에 월드컵이 등장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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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2014 브라질월드컵 주요 경기들이 녹화중계되고 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18일 러시아 국영 러시아의소리(VOR) 방송은 "(북한) 현지 시청자들이 일부 시합을 녹화중계로 국가 텔레비전을 통해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개막식 외에 스페인-네덜란드 전, 브라질-크로아티아 전, 영국-이탈리아 전 등이 중계됐다. 각 공공기관 등 여러 장소에서 주민들에게 공개됐다. 다만 월드컵 중계가 평양에만 국한된 것인지 북한 전역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소위 '음악 정치'를 추구했던 김정일과 달리 '유학파' 김정은은 스포츠를 대대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김정일은 2002년 2월 무렵 음악정치를 처음으로 공표했다. 용어 자체만 들으면 음악을 통한 주민교양으로 얼핏 해석될 수 있지만 실상은 음악을 통해 1인 독재자 우상화 선전을 펼치고 세뇌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김정일은 보천보전자악단 등 각종 악단 운용을 강화하는 한편 북한 전역에서 선전대 활동을 보다 폭넓게 만들었다. 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당시 최대 수백만 명이 아사(餓死)했기에 독재를 위해서는 대(對)주민 세뇌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나아가 '북극성메아리악단'이라는 비공개 악단을 운용했다. 복장, 발성을 한국식으로 하고 한국 가요에 북한식 가사를 붙여 연주한 이 악단은 평양방송 등 대남(對南)방송을 통한 선전용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반도 적화 아욕에까지 이용할 정도로 김정일은 소위 '음악정치'에 광분했던 것이다.
 
'음악 정치'의 근간에는 일제(日帝)시대의 전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 말 제국주의로 치닫던 일본에서는 1888년 가요 장르 중 하나인 엔카(演歌)가 생겨났다.
 
반(反)천황을 주장했던 엔카 세력은 음악을 통해 군중을 선동했으며 천황 숭배가 제1가치로 꼽히던 당시 일본 사회에서 공산세력이 태동해 오늘 날까지 존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물론 오늘 날의 대중가요 엔카에서는 정치적 요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당시 생겨난 공산세력은 60~70년대 '요도호 납북사건'을 일으킬 정도로 엄청난 세력을 형성했다. 전 세계를 자기 발 아래 두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던 김정일로서는 이러한 효과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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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과 달리 스위스 유학 시절 서구 문화를 접하고 특히 농구를 즐겨했던 김정은은 일컫자면 '스포츠 정치'를 하고 있다.
 
실제로 스포츠가 정치적 측면에서 갖는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정치나 사상에 큰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은 축구나 농구, 야구 등 스포츠 앞에 하나로 단결한다. 그 위력이 얼마냐하면 1969년 7월 중남미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축구시합 결과를 두고 전쟁까지 벌였을 정도였다.
 
이 같은 스포츠의 위력을 체감한 김정은이 개인적 취향까지 더해 스포츠 정치에 나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인 데니스 로드먼을 수시로 북한에 초대함으로써 미국 내 NBA 팬들을 친북(親北)성향으로 만듦은 물론 북한 주민들까지 스포츠로 단결시키려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
 
국제대회에 북한 선수단이 출전할 경우 주민들은 이를 응원하며 하나되어 체제에 대한 불만을 잊고 도리어 북한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게 된다. 북한에 대한 충성심은 곧 북한을 실질 지배 중인 김정은에 대한 충성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김정은은 막대한 정치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혹여 주민들이 외부 세계를 접하고 반체제 성향을 더욱 높일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이미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DVD 등을 통해 외부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를 과거 수준으로 강도 높게 막으려하기 보다는 아예 정권 차원에서 소위' 은덕'으로 포장해 베푸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김정은은 스포츠 정치를 통해 세습독재의 권좌를 공고히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국 북한의 1인 독재가 장기화됨을 뜻하며 선전선동·대내외 폭력을 제외하고는 경제 등 모든 면에서 무능한 독재자에 의해 북한 주민들의 삶이 더욱 파괴될 것이라는 점을 뜻한다.
 
따라서 월드컵 중계를 두고 "북한의 변화" 식의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김정은이 정말로 변화를 원했다면 애초부터 세습독재를 거부하거나 또는 집권 후 일부 반대세력의 위협을 무릅쓰고 체제를 개방한 뒤 외자를 유치해 경제를 살리는 데 몰두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경제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는 '아비'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여기저기 농장·기업소나 찾아다니며 실무와는 전혀 거리가 먼 지시만 내놓는 것이다.
 
자신이 경제 전문가가 아닌 이상 전문가를 기용해 맡기는 것이 당연함에도 김정은은 오로지 자신의 권위를 높이는 것에만 혈안이 돼 되지도 않는 지시들을 내리고 있다.
 
상술했지만 그가 유능함을 보이는 것은 선전선동, 핵무기개발, 대남도발, 주민탄압 뿐이다.
 
인류역사상 독재자가 그 스스로 권좌를 내려놓은 사례는 전혀 없다. 그리고 김정은은 권좌를 내놓을 뜻이 없음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진실을 바탕으로 북한의 겉만 보고 안까지 해석하려 드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겨레얼통일연대 정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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