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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김일성의 초상을 불태우고 탈북한 여성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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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사복무 중 뜻하지 않은 돌발사고로 사경을 헤맨 적이 있다. 강원도 평강군 1군단 산하 고사총중대에서 군 복무 중이던 나는 2004년 가을 이유 없이 나를 겨눈 총구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을 경험하였다.

북한의 여성들은 군 복무 5년 기간 그리운 것이 참으로 많다. 먹을 것도 그립고, 여성인 탓에 좋은 생리대나 화장품도 그립다. 군복무 4~5년 정도 되고 전역할 때쯤이면 이성에 대한 생각도 난다. 여성들이 군사 복무 5년 기간 배고픔과 참기 어려운 그리움을 견디면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입당이다. 10년의 군복무를 하는 남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군복무를 하고 입당을 못하고 제대된다는 것은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고 본인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인 것이다.

입당이 보류되어 정치적 사고를 일으킨 사람들이 북한에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나도 입당보류에 인생을 포기한 우리 중대의 한 사람으로 하여 사경의 언덕을 넘었다.

우리 중대는 4개 소대와 대대 운수 중대 소속 견인분대로 되어 있었다. 견인분대는 남성군인들로 되어 있었는데 분대장은 최우성이라는 평북사람이었다. 최우성은 군복무 9년차였고 후보 당원이었다. 이제 1년만 있으면 정당원이 되어 집으로 갈 사람이다. 키는 큰 편은 아니고 보통이지만 눈썹이 억실억실하고 인상이 좋아 여성들의 심성을 괴롭히는 유형이다. 우리 중대 2소대 부소대장 차순경 역시 후보 당원이었고 몇 개월만 있으면 제대될 여성이다. 이들은 미래를 약속한 사이었다.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만나는지 몰랐지만 자주 만난 것은 사실이었다. 주로 중대 대원들이 잠자는 야밤을 이용해 만난 것 같다. 정말 잠이 없는 사람들이구나, 했는데, 나도 사회에 나와 연애를 해보니 그렇게 많던 잠이 온데간데없다.

이들의 문제는 비도덕적이고 자본주의 황색바람에 따른 이색 행위로 취급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하였다. 정치부에서는 둘을 불러 조사를 하였고, 그들은 제대되면 결혼을 약속했다는 진실다운 진실을 실토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진실은 무참히 외면당했고, 결과는 출당, 철직, 생활제대였다.

아직 기억도 생생한 2004년 10월 2일, 저녁 11시, 갑자기 병영 안에서 요란한 연발 총성이 울렸다. 우리 중대 침실은 한 건물 안에 있었고, 2개 소대씩 양옆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병영 오른쪽에는 지휘소대와 1화력소대, 왼쪽에는 2, 3화력소대이다. 먼저 총성이 울린 곳은 오른쪽 병영 안이었다. 나는 그때 2소대 1분대 조촉수로서 오른 쪽 침실에 있었다. 잠기가 그래도 예민한 나는 요란한 총성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나는 순간적으로 비상사태임을 직감했다.

나는 그때 초급단체(청년동맹 조직) 선동원으로서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 정성작업과 보관관리를 담당하였었다. 나는 불현듯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을 내려 가슴에 안았다. 그런데 연속으로 울리던 총성이 갑자기 멎더니 우리 쪽 침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순간 몸이 굳어져 버렸다. 총구가 정면으로 나를 조준하고 있는 것이다. 눈앞에서 섬광이 번뜩이고 육중한 소리가 귀를 짓눌렀다.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 짐승 같은 소리를 질러댔다. 총소리가 멎고 잠시 정적이 깃들자 나는 자신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이 구멍이 난 곳은 없어 보인다. 잠시 주변을 살피니 피 흘리며 쓰러진 전우들의 일그러진 얼굴들이 보이고 간간히 신음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일어서기가 싫다.

이 총격사건으로 우리 중대는 41명의 사상자를 냈다. 16명은 그 자리에서 숨졌고 나머지는 중상과 경상이다. 난 그때 전쟁이 일어났고, 적 특공대의 공격인줄로 착각했었다. 하지만 이는 최우성이 저지른 사고였다. 최우성은 자신에 대한 처벌이 중대 정치지도원(정훈장교)의 소행임을 알았고, 차라리 불명예스럽게 제대되느니, 인생을 포기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중대에 분풀이를 한 것이다.

그는 중대병영을 빠져나와 뒷산에 올랐지만 2일 만에 저격병들에 의해 부상을 입고 자결도 못하고 체포되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총구 정면과 마주하고 있었는데 총에 맞지 않았는가에 대해 의아한 생각은 들었지만, 행운이 따라 살은 줄 알았다. 하지만 최우성의 조사과정에 내가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들고 있은 덕에 살아남았음을 알 수 있었다. 최우성은 인생포기를 하고 총을 난사해 전우들을 살해했지만 김일성, 김정일은 분명 피해간 것이다. 죽어도 김일성, 김정일을 배반한 ‘민족반역자’로 죽기는 싫다는 의도로 초상화를 들고 있는 나를 외면한 것이다.

인생이 망가지고 짓밟혀도 감히 대항을 할 수 없는 불변의 종속의식, 바로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신격화는 항거할 수도 없고 돌아 설수도 없는 북한군의 의식구조였다. 하지만 세상에 불변의 의식구조는 있을 수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불만과 항거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들었던, 그래서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던 내가 김일성의 초상을 내손으로 불태우고 강을 넘었다. 지난 2009년 화폐개혁 이후 김일성의 초상이 있는 북한 돈을 불태우며 김정일을 저주한 북한주민들은 수도 없이 많다.

나는 믿고 있다. 북한 당국이 주장하고 있는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정권유지의 기본 기둥이었던 수령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바닥이 났다고 말이다. 한국에 입국하여 생활하면서 참으로 허무하고 섭섭한 생각이 많다. 이러한 낙원을 북한 주민들이 왜 몰랐는지에 대해, 그 책임에 대해 북한정부에게만 책임을 묻고 싶지는 않다. 먹을 것도 중요하고 의약품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북한 인민들을 깨치는 것이다.

몰랐던 탓에 남한 동포들을 위해 총을 겨누었고 현재도 겨누고 있는 우리의 북녘형제에게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북한에 형제들을 둔 우리 탈북자들에게 민주화 의식의 보급은 의무이기 전에 양심이고, 도덕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지원의 문제가 아니라 동족상쟁을 막고 진정한 하나가 되기 위한 필연의 대업이다.

부탁컨대 우리 엄마, 아빠, 나의 사랑하는 동생들에게 쌀보다 우리의 삶과 노래를 보내게 해 달라.

겨레얼통일연대 회원 장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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