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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 고통에 침묵한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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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특정 종교의 지도자다. 그는 가톨릭의 적폐를 개혁하고 사제들에게 가난하고 소외된 자에게 다가가라고 주문한다. 한국에 와서는 순교자 124명에게 복자(福者)의 칭호를 내렸다. 음성 꽃동네에서는 오랜 시간 장애인들과 함께했다. 교황의 언행은 신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을 것이다.  


교황의 방한을 한국은 교계(敎界)를 넘어 국가 차원에서 다루었다. 국가원수는 세 번이나 시간을 내어 공항·청와대·명동성당에서 그를 만났다. 시복식이란 종교 행사는 수도 한복판의 넓은 공간에서 열렸다. 연인원 수십만 경찰이 교황의 행사를 지켰다.  

교황 방한을 한국이 국가 차원에서 대할 수 있는 건 그의 언행이 특정 종교를 넘어 인류 보편적인 문제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다른 종교나 일반인이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기대는 제대로 충족되지 않았다.  

교황은 ‘소외되고 고통 받는 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역설했다. 그렇다면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그런 처지에 있는 이들이 누구인가. 북한 주민 아닌가. 북한 주민은 폐쇄된 우상숭배의 나라에서 자유도 인권도 없이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산다. 종교라도 있다면 위안을 받건만 그런 건 꿈도 못 꾼다. 도피하거나 체제에 저항했다가는 끔찍한 수용소에 가야 한다.  

북한 주민은 21세기 인류 중에서 가장 불쌍한 집단이다. 한국인에게는 더욱 비극적인 게 그들이 동포라는 사실이다. 그런 한국 땅을 밟았는데 교황은 왜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았는가. 북한 정권은 두려워하고, 주민은 힘을 얻으며, 세계인은 주목하는, 그런 ‘하나님의 정의’를 왜 말하지 않았는가.  

교황은 남북문제에 대해 다른 메시지를 내놓았다. 먼저 통일의 희망을 말했다. 세계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뭉친 것을 언급하며 남북이 형제임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그는 남북화해를 얘기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77번의 용서’를 인용했다. 형제의 죄를 얼마나 용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예수가 답한 내용이다.  

‘77번의 용서’는 남한의 많은 이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인 관용이 옳은 것인 양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용서는 개인 간에도 어려운 일이지만 국가 간에는 더욱 그렇다. 아니 어려움을 떠나 아예 옳지 않은 것이다. 국가와 개인은 영역이 다르다.  

교황이 거론한 이스라엘만 해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용서하지 않는다. 지금도 가해자를 추적해 법정에 세운다. 서독은 통일이 된 후에도 호네커를 비롯한 동독의 인권 가해자를 재판에 부쳤다. 이들이 이렇게 한 것은 성급하고 허술한 용서보다 단호한 단죄가 정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만약 용서가 더 정의로운 거라면 한국이 일본에 침략행위와 위안부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건 근거가 약해진다.  

훗날 남북이 통일되더라도 정의의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천안함 폭침 같은 국가테러는 물론 북한 정권이 저지른 끔찍한 인권탄압의 증거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남북을 떠나 인류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유엔 특별위원회가 조사하고 책임자의 처벌을 건의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종교의 사회적 책임에 관해 커다란 숙제를 남겨놓았다. 세계사에서 많은 경우에 종교는 인간에 대한 억압에 저항하면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대표적인 지도자가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년)다.  

그는 1979년 조국 폴란드를 방문했다. 당시 폴란드는 공산주의 소련의 위성국가였다. 100여만 명이 모인 집회에서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을 촉구했다. 그의 연설은 공산주의에는 불길한 기도였다. 교황의 촉구가 자극제가 되어 이듬해 폴란드에 자유와 인권을 요구하는 통일노조가 결성됐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자유연대(Solidarity)’다. 레흐 바웬사가 이끌면서 노조원은 1000여만 명으로 늘었고 운동은 동구 공산권을 무너뜨리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말에만 머물지 않았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핫 라인(hot line)을 유지하면서 공산주의에 대처했고 바티칸 은행을 통해 비밀리에 폴란드 자유노조에 지원금을 보냈다. 소련에 이런 교황은 위험인물 1호였다. 교황은 1981년 암살범의 총탄을 맞았다가 극적으로 살아났다. 이탈리아 조사위원회는 배후에 소련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5년 그의 장례식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다. 세계의 거의 모든 지도자가 참석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성인(聖人)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올바르게 불의에 맞서 인류의 삶을 개선한 종교 지도자에게 인류가 바친 헌사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는 북한 주민의 신음이 들리지 않는가.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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