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진상을 만천하에 밝히고싶다.(5)

본문
비록 집으로 가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어려웠던 가난한 탓에 억이 막혔다. 다시는 남의 나라 땅을 넘보지 않겠다고 손을 높이 쳐들고 맹세문을 읽고 김정일 만세를 부르며 감옥에서 벗어나 세상 밖을 나왔지만 한번 외국에서의 자유를 맞본 나로써는 도저히 독재의 궁핍으로 하여 또다시 그 땅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방송 매체에서는 항상 김정일의 군부대방문이 지속 되었고 인민생활은 안중에도 없는 그 꼴이 보기실어 졌다. 그 독재자의 나라에서 이렇게 살다가 언제 어느 때 굶어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며 아등바등 사느니 차라리 북한을 아예 떠나기로 결심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사품 치는 두만강을 건너 드디여 중국으로 들어가 장장 6년 동안이나 숨어 살게 되었다.
하지만 중국에 들어와 숨어 살면서도 마음속에는 항상 나를 낳아 키워준 어머니의 고향으로 가야 한다는 마음의 의지만은 잃지 않고 모진고통도 온갖 멸시를 다 받아 가면서도 억척같이 살았다.
오직 그것만이 나의 어머니에 대한 생존의 유언을 지켜드리는 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였기 때문 이였다. 저의 어머니는 6.25 전쟁 3 일만에 서울까지 들어온 인민군의 진격으로 좌파학생들의 모집으로 강당에 모이게 되었고 처녀로써 싸움터에 나가는 것이너무도 무섭고 부모가 그리워 학생들 속에서 빠져나와 도망치려 하였다.
하지만 이미 인민군이 포위하고 강당을 감시하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의용군>으로 입대하여 인민군을 따라 다녀야 했는데 38선이 생기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북한의 평북도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더는 꿈에도 그리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지금의 저의 아버지 (북한의 장교)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저의 아버지는 남한의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 근거로 하여 강제이혼을 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이혼을 한 후로는 아버지의 소식을 전혀 알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나 나혼자 만이라도 어떻게 하나 살아남아 저의 어머니의 고향인 충청도 공주에 찾아가 보리라 굳게 다짐 하군 하였다.
~ 다음호에 이음 ~
북민전 최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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