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진상을 만천하에 밝히고 싶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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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북한의 권력 독재자 김정일이 사망하고 2012년에는 그의 아들 햇병아리 같은 철없는 김정은이가 3 대세습의 권력통치를 그대로 송두리채 떠안은 해이다.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김정일이 독재자로 올라서자부터 북한의 현실은 너무도 가혹하였다.
하루에도 몇명씩 싸늘한 시체가 되여 들것에 들리워 나가야 했으며 죽을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오늘 내일 하루하루 죽지못해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수도 없이 많았다.
짐승들도 먹지않는 온갖 풀뿌리로 끼니를 에우기도 하고 웬만큼 독만 없으면 눈에 보이는 시퍼런 풀잎을 마구뜯어먹으며 겨우겨우 목숨을 연명해 나갔다.
하지만 워낙에 사람이 너무도 뜾어먹어 새로 나오는 풀잎 보다도 사람의 숫자가 더 많다 보니 그런 풀 마저도 배불리 먹을수가 없었던것이 북한의 현실이였다.
필자 역시 90년대 북한의 너무도 암혹했던 시절 사람이 먹고 살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걷어 먹으며 죽지 못해 살아왔다.
풀이면 풀 나무껍질이면 나무껍질 무엇인들 못먹어 봤을가? 심지어 사람이 상상도 할수없는 <팽령토>라는 흙까지 먹어야 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까지껏 다 자란 어른들이야 아무래도 괜찮지만 너무도 어린 철부지 어린자식들에게 까지 이런 눈물겨운 고통을 안겨주어야 했던 1990 년대를 죽어서도 잊을수가 없다.
당시 필자는 자기가 사는 마을에서 자그마한 간부사업을 하면서 그 마을에서 매일 같이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시체를 지원나온 교도대 (예비역군인) 원들과 함께 처리하면서 피눈물을 수도 없이 흘렸다.
풀을 잘못먹고 독이올라 온 몸이 퉁퉁 부어오르다 못하여 마지막숨을 색색 몰아쉬면서 살려달라고 두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여 애원하던 사람들을 한사람 한 사람 마주 할때 마다 가슴이 천만갈래로 찢어지는 아픔을 당해야 했다.
또한 <팽령토>라는 흙을 먹고 뒤가 메여 남산만하게 불어나는 아이들의 배를 바라보면서 어찌할 방법이 없어 그 어린것들을 부둥켜 앉고 피눈물을 흘리던 그 모습들을 어찌 잊을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제 집을 쓰고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살면서 이런 가슴아픔을 겪는것도 북한의 그때 실정으로 본다면 그만해도 행복했다고 할수 있다.
배고품을 견딜래야 견딜수 없어 중국이나 한국으로 가기 위하여 탈북을 시도했다가 붇잡혀 들어간 사람들은 그야말로 인간이하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죽지못해 아니 더욱 솔직히 표현을 하자면 죽어지지 않아서 죽을수 없었던 그런 암담한 시절도 겪어야 했었다.
필자가 만천하에 밝히려는 현재 남한에 살고있는 한 탈북민의 가슴터지는, 눈물 없이는 들을래야 들을수 없고 또 믿을래야 믿겨지지 않는 사연을 이제부터 하나 하나 파헤쳐 보려고 한다.
~ 다음호에 이음 ~
[북민전] 최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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