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만 못한 북한주민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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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범죄자라도 되는 듯 그 여인을 에워쌌다. 엊그제 TV에서 보았던 대로 강아지에게 옷을 입히다니, 목걸이를 해주다니, 그런 비난들이 고함으로 번지다 못해 돌까지 날아들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애완견 주인이 자기 남편이 중앙당 간부라며 호통 쳤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간부 사모님이 맞는지 확인해보자며 그 여인을 끌고 분주소(경찰서)로 가게 됐고, 그렇게 되어 그 사건은 김정일에게 까지 보고되었다.
당 조직부는 간부 가족으로서의 품행을 손상시켰고, 고난의 행군시기 적절치 못한 행동을 했다며 처벌을 제안했지만 김정일은 화를 내었다. 애완견을 산책시켰을 뿐인데 뭐가 잘못이냐면서 당 조직부는 사람 잡는 부서가 아니라고 경고까지 주었다.
아마 그 당시 김정일은 조선중앙TV가 “개 같은 세상”이란 제목으로 자본주의 나라들을 비판 방송하고 있는 줄 몰랐던 모양이다. 아니면 평시 강아지를 좋아하는 자신의 취미를 변명하느라 화냈을지도 모른다.
내가 북한에 있을 때 김정일을 만나기 위해 갈마초대소로 갔을 때도 그는 애완견을 끌고 접견실로 나왔었다. 아무튼 북한 역사상 처음으로 발생했던 애완견 산책사건이라 “창광동 개사건” 소문은 하루 만에 온 평양시에 퍼지게 되었다.
개주인은 분주소(경찰서)에 잡혀가고 개는 즉석에서 맞아죽었다는 소문으로 퍼지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 개까지도 용서해준 김정일의 광폭정치 사랑이 다시 알려지면서 참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마치도 김정일이가 허락했다는 듯 창광동의 간부들과 부인들, 자녀들까지 너도나도 애완견을 끌고 산책을 나온 것이다. 그 것들은 모두 김정일이 주었던 선물 애완견들이었는데 그동안 집에서만 감추고 키우자니 사람도, 강아지도 오죽 답답했겠는가? 김정일의 말이 곧 법이라는 신격화를 이용한 개들의 반란인 셈이었던 것이다.
또한 방송에서나 볼 수 있었던 외국의 극심한 빈부격차가 북한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때부터 북한에선 애완견이 권력의 상징처럼 되었다. 애완견을 가진 간부들은 김정일로 부터 개를 선물 받을 만큼, 좋게 말하면 측근이고 나쁘게 말하면 충견이란 의미였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에서 애완견은 부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아무거나 주어먹는 토종개와 달리 일단 애완견이 있는 집은 개도 밥을 먹을 만큼 좀 먹고사는 처지라는 것을 과시하기 때문이었다. 하여 애완견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면서 그때부터 북한에선 애완견 외화벌이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애완견만 전문적으로 수입하여 파는 회사들도 있었다.
큰 강아지일수록 값이 비쌌는데 대부분 장사목적이어서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암컷이 두 배로 비쌌다. 희소성 있는 품종의 수컷 같은 경우에는 한번 교배를 시킬 때마다 100불씩 받기 때문에 돈 주고도 살 수 없을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렇게 교잡된 다양한 잡종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북한은 짧은 기간에 말 그대로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개판이 돼 버렸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 없는 애완견 사기사건도 자주 일어났다. 달러가 없어 애완견 씨도 얻을 수 없는 어떤 집에서는 토종개를 얼룩강아지로 염색하여 팔기도 했다. 그러다 들통나 싸우고, 매맞는 사건도 빈번했다. 그때는 주부들이 모여 앉으면 남편이 아니라 애완견 덕에 집안 살림이 좀 나아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단지 상업적 목적으로만 애완견이 분양되다 보니 2년도 채 안돼 시장이 곧 위축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애완견을 사고팔지 못하도록 제한하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나오면서 애완견 인기는 아예 뚝 떨어졌다. 김정일이 그런 규정을 만들도록 한 계기는 어느 간부의 차가 갑자기 도로로 달려드는 애완견에 놀라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사려는 사람 보다 팔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서 버려지는 애완견들까지 생기게 되었다. 애완견을 버리는 이유는 사람과 똑같이 밥을 주어야 한다는 부담과 그렇다고 식용으로 잡아먹을 수도 없어서였다. 그러자 밖에서 키운 토종개보다 집에서 키운 애완견의 육질이 더 좋다는 설과 함께 애완견 고기만 전문적으로 요리하는 음식점도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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