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뒤에서 실질적 조정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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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노동신문’은 음력설을 맞으면서 연이어 김정은에 이어 두 번째로 장성택을 거론하고 있다.
지난 1월23일‘노동신문은’“김정은이 허철용동무가 사업하는 기계공장을 현지 지도했다”고 보도했다.”그러면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이며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 장성택동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이며 당중앙위원회 비서인 박도춘동지, 조선인민군 대장들인 김명국동지, 김원홍동지, 박재경동지, 조선인민군 중장 리두성동지가 동행하였다."고 했다.
장성택은 역시 김정은 다음에 그 이름이 북한에서 보도되고 있다. 이런 점을 볼때 김정일 사망이후 장성택이 드디어 권력 정면에 나섰고 김정은을 조정하는 실권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미 장성택 중심의 집단지도체제가 시작됐다는 것을 사실상 대내외적으로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지난기간 장성택은 핵심 측근들을 전면 배치함으로써 막강한 힘을 키웠다. 1946년 강원도 천내군에서 비교적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장성택이 출세길에 들어선 건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에 입학한때부터였다.
이곳에서 장성택은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를 만나 사귀게 됐고 1972년에 결혼했다. 당시 김일성에게 미움을 사게 된 장성택은 강원도 원산경제대학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후 김정일과 김경희의 고집을 꺾지 못해 결국 장성택을 복귀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김정일의 측근으로 사업하게 되었다.
이후 장성택은 김정일의 후계구축에 깊숙이 참여하면서 승승장구했고 3대혁명소조운동을 추진하는 등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권세를 부렸다. 1995년에는 최고 요직인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올라 당,군,정의 고위급 인사를 총괄하게 되게 된다.
그러던 장성택은 2004년 초 '권력욕에 의한 분파 행위'를 의심받아 업무정지 처벌을 받았고,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부인인 김경희가 김정일을 설득해 장성택은 다시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권됐고 2007년에는 공안과 사법을 총괄하는 당 행정부장에 기용되면서 다시 권력의 핵심으로 복귀했다.
2010년 6월 그는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일의 제의에 따라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삼남 김정은의 후계구도를 주도하고 있다는 견해가 나돌았다. 이때부터 사실상 노동당은 물론 군부까지 장악하는 2인자로 부상했다고 볼수 있다.
장성택과 김경희는 오래전부터 김정은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었으며 그 역할을 뒤에서 조정하였다. 장성택의 힘은 물론이고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우기까지는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가 있다는 것이다.
김경희는 김정일이가 제일 신뢰하는 여동생였기 때문에 김경희는 막대한 권력을 가지고 장성택과 김정은을 내세워주고 밀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알수 있다.
결국 북한에서 3대세습 독재체제가 이어지는 근본요인은 김정은의 뒤에는 김경희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목할 수 있다. 김일성시대, 김정일시대, 김정은시대가 과연 언제까지 갈것인가, 그 종말은 멀지 않았다.
[북민전] 최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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