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위엔에 팔려 간 삶(2)

본문

[자료사진]
도주, 또 도주
한족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8개월 동안 집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것이었다. 북한에서는 그나마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내가 밖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지만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이 집에서 갇혀서 하루 종일 TV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틀 연이어 TV를 보고 있으면 머리도 아프고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중국에 있으면서 많이 울었다. 가을에 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났고, 하늘을 보는 것도 눈물이 났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 보다 심적으로 괴로운 게 더 컸다. 하늘이면 하늘, 달이면 달에게 이 집에서 내보내달라고 빌었다. 단 하루라도 조선 말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결국 참을 수 없어서 장마당에 가는 길에 도망쳐 나와서 전부터 알던 어느 조선 여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녀는 북한에서 아들을 하나 데리고 중국으로 온지 얼마 안됐고 나는 그 아들을 돌보면서 두 달간 있었다.
두 달 후 모자는 시내에 나갔다가 공안에 붙들리고 말았다. 아들이 공동변소에서 앞에서 놀다가 중국 애들과 시비가 붙어 중국 아이를 때렸는데, 아이의 아버지가 달려와 중국말로 말을 걸었다. 아들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중국인은 공안에 신고를 해버렸다. 나는 천만다행으로 잡히지 않았다. 사실 나는 아이를 뒤따라오면서 아이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가 붙잡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북한사람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 곳을 벗어나 주변을 돌았다. 결국 변소 안에 하루 종일 있다가 주변이 조용해질 때까지 있다가 나왔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자 나는 (팔려갔던) 한족 집 고모의 친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녀는 당시 내가 일하던 집 밑에 살고 있었는데 공중전화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보고 어디론가 찾아오라고 하는데 당시 중국어를 잘 못하는 나는 그대로 따랐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내가 식모살이하던 집 가까이로 불렀고, 결국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30살 한족가족 아들이었다. 나는 일부러 도망친 것이 아니라 나쁜 사람들이 잡아간 거라고 열심히 변명했지만 한족 가족들은 나를 한심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다시 한족 집으로
한족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내가 왜 사는지 묻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 집에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온갖 수모를 참았지만 이제는 그런 희망조차 사라졌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 없는 것이었다. 사람이 가치 없이 산다는 것이 느껴져서 괴로웠다.
거울을 보면서 “어? 내가 살았네. 어떻게 용케도 살아있네”라고 물을 때가 많았다. 정신도, 기억도 상실되어 가고 있었다. 중국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북의 친구들과 어머니가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을 훔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멍하니 아무런 감정조차 없어졌다. 그리운 어머니도 생각나지 않았고 집도 양강도라는 정도만 생각이 났다.
“여기가 현실이 맞나. 내가 죽었나? 죽어도 세상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떤 날은 잠도 안 자고 새벽 2-3시에 일어났다. 일도 하기 싫으면 내팽개쳐버렸다. 그러자 그 집 며느리는 내가 밖에서 나쁜 사람에게 맞아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나를 아껴주던 할머니는 “나쁜 놈들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다”라며 안쓰러워서 쓰다듬기도 했다. 내가 그녀의 손을 뿌리치면 “나쁜 놈들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들은 나를 여전히 괴롭혔다.
5월 5일, 중국의 명절이 되자 시내에서 돈을 벌던 아들이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내가 인사도 하지 않자 “왜 그러는가? 한번 도망치니까 또 도망치려고 하는 건가?”라고 비꼬았다. 그 전에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괴롭히지 않았는데 이제는 드러내놓고 못되게 구는 것이다. 내게 “또 한 번 가보지?”라며 시비를 걸었지만 나는 ‘내 심정 누가 알겠나’라는 마음으로 피했다. 그가 일어나라고 소리쳐도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아들은 나를 밀치고 때리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죽고 싶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최영림(가명)
[1992년생 양강도 혜산 출신 2009년 탈북, 2011년 한국입국]
댓글목록0
댓글 포인트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