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반도로 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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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63년, 천년 왕국을 구가(謳歌)했던 백제가 멸망했다.
그런데 역사서를 살펴보면 한 가지 특이할만한 점이 있다. 백제 멸망 직전에 일본, 당시 야마토(大和) 정권에서 수많은 군사를 한반도로 출병시킨 것이다.
일본이 한반도로 군사력을 투입한 목적은 침략도, 약탈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일까? 왜 일본은 먼 나라로 3만이나 되는 대군(大軍)을 400여 척의 군함에 실어 보냈을까?
이유는 바로 일본의 본국(本國)인 백제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국내외 역사학자들의 오랜 연구와 고증(考證)에 따르면 일본은 한민족이 건설한 국가다. 백제 왕족이 일본으로 건너가 원주민들로 구성된 야마타이(邪馬臺) 정권을 가볍게 무너뜨리고 야마토 정권을 세웠으며, 이후 고구려와 신라에서도 많은 백성들이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향했다.
이를 입증하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인종적 유전자와 한 자루의 검(劍)이다.
원래 일본 원주민은 몸에 털이 많은 체형에 비(非)문명화 된 삶을 살고 있었다. 심지어 밥그릇을 만들 기술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야마토 정권 하에서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오늘 날의 체형으로 변화했으며, 한반도에서 건너온 각종 문화·기술을 토대로 훗날 화려한 아스카(飛鳥) 문화를 꽃피웠다.
실제로 오늘날 전 세계 다양한 민족 중 한민족과 유전적으로 가장 흡사한 민족은 일본인들이며, 언어적으로도 일본어 억양과 신라(경상도)어 억양은 흡사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의 증거는 칠지도(七支刀)라는 검이다. 백제 왕이 일본 왕에게 하사한 이 검은 야마토 시대 당시 일본이 백제의 속국(屬國)이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단서로 남고 있다.
이렇듯 한민족에 의해 국가가 세워진 상황에서 7세기경 일본은 한반도에 군사력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백제가 신라에 의해 멸망당할 위기였더라면 뿌리가 같은 민족(고조선 배달민족)이라는 점에서 일본은 출병을 보류했었겠지만, 당장 중국 당(唐)나라 병력에 의해 백제 수도가 함락될 지경인 가운데에서는 당연히 출병할 수밖에 없었고, 또 출병해야만 했었다.
다만 일본의 출병은 무위(無爲)로 끝나고 말았다. 3만 병력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사비성은 당나라 군대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고 말았다. 그러나 머지 않아 통일신라가 당나라와의 전쟁을 통해 중국의 속지(屬地)로 전락한 백제 땅을 회복함에 따라 일본의 염원은 이루어질 수 있었다(물론 1천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면서 한반도를 모국(母國)으로 여기는 풍조는 일본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북한에는 더 이상 한민족이 존재하지 않는다. 김씨(氏) 3부자에 의한, 3부자를 위한 수령 세습독재 체제 때문에 한민족은 사라졌다. 대신 '김일성 민족'이라는 해괴한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북한의 한민족이 멸망한 것은 아니다. '민족의 얼'은 사라지지 않았다. 갖은 탄압과 억압 속에서도 많은 주민들이 수령독재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면서 남녘의 동족(同族)을 그리워하고 있다. 얼마 전 소위 '3대 우상화 모자이크 벽화'가 무너진 것이 단적인 예다. 외부인들에 의해 무너진 것이라 해도 주민들의 묵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사건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마땅히 북녘의 동족, 한 겨레를 구하기 위해 거국(擧國)적인 운동을 펼쳐야 마땅하지 않을까. 서기 663년, 일본 야마토 정권이 현해탄의 거센 풍랑(風浪)도 마다하지 않고 3만의 대군을 출병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겨레얼통일연대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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