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군인들이여, 다시 총(gun)을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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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傭兵).
'용병'의 사전적 의미는 거래처로부터 금전적 보상을 받고 대신 군사적 능력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고대의 한 철학자가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정의(定義)했던가, 인류는 이미 국가라는 존재가 생겨나기 전 부족(씨족) 형태의 집단사회를 이루면서부터 전쟁을 시작했다. 이 역사는 장장 수만~수십만 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심지어 인류가 국가 대 국가의 차원을 뛰어넘어 고도(高度)의 전(全)지구적 평화 체계를 구축한 20~21세기에도 전쟁은 멈추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전쟁'은 한 가지 독특한 직업을 양산했다. 바로 '용병'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대표적인 용병은 중세 유럽의 '스위스 용병단'이다. 장창(長槍)으로 무장한 이 용병단이 특히 유명한 이유는 그들의 '신념' 때문이다.
스위스 용병단은 단지 금전적 보상만을 받고 대신 싸워주는 질 낮은 싸움꾼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지불되는 액수의 크기와 상관 없이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으며, 한 번 '신념'을 바친 존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돌보지 않고 싸웠다.
그 중 한 사례가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발생한 '프랑스 대혁명'이다. 당시 프랑스 왕실에 고용되었던 스위스 용병단은 성난 군중들의 돌격 앞에서도, 심지어 프랑스 정규군은 모두 겁을 먹고 달아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786명에 불과했던 그들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우다 장렬히 눈을 감았다.
이들의 신념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스위스 루체른주(州)의 '사자기념비'는 오늘 날에도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어 있을 정도다(물론 프랑스 대혁명은 민주주의를 위한 인류의 기념비적 사건이었지만, 이 단락에서는 자신이 한 번 충성을 맹세한 존재에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스위스 용병단의 '신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21세기에도 존재하고 있는 스위스 용병단. 비록 각종 화력(火力)이 난무하는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상징적인 의미로 존재하고 있지만 여전히 로마 교황청에 고용되어 장창을 손에 쥔 채 '신념'이라는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용병의 역사는 21세기 오늘 날, 2013년 4월 26일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용병 사업은 나날이 기업화되어 아예 민간군사기업(PMC)이라는 사업 분야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세계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민간군사기업은 미국의 블랙워터(Black Water)이며, 한국 내에도 수많은 민간군사기업이 존재한다. 인텔엣지 등이 그것이다.
인텔엣지는 총기 사용에 대한 제약이 엄격한 국내 대신 해외로 눈을 돌려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라크·아프리카 등 주요 분쟁지역으로 출장을 떠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군사적 보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비록 이익을 전혀 추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기업도 기본적으로 국민의 안녕(安寧)이라는 '신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간군사기업이 활성화된 근본적 이유는 단순하다. '한 번 군인은 영원한 군인'이라는 민간군사기업 종사자들의 생각과 이들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수요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용병+이들을 필요로 하는 수요=국민의 안녕'이라는 기 막힌 공식이 성립되었기에 비로소 민간군사기업은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라크 등 해외 분쟁지역에서 '국민의 안녕'이라는 신념을 이어나가고 있는 인텔엣지 소속 용병들. 북한 육군 주력화기인 자동보총과 비슷한 형태의 AK-47을 겨누고 있는 용병의 모습이 이채롭다>
이쯤에서 한국 내 수 많은 탈북군인들은 생각을 제고(再考)해 볼 필요가 있다.
본시 '한 번 군인은 영원한 군인'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남북(南北)을 막론하고 이는 인간이라면 공통된 현상이다. 제아무리 탄탄한 사회적 기반을 닦아놓았다 하더라도 군(軍) 출신이라면 누구나 군대를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의 군사적 능력이 사회에서는 쓰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기 마련이다.
북한 독재집단에게 고향과 가족을 잃고 머나먼 남한으로 올 수밖에 없었던 탈북군인들로서는 그 안타까움이 더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손으로 김정은을 처단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클 수밖에 없다. 바로 자신의 '신념'을 이룰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말이다.
그러나 '용병'이라면 신념을 이룰 수 있다. 다시금 자신의 군사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나아가 북한 독재집단을 내 손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 바로 스위스 용병단과 같은 '신념을 가진 용병'이 될 수 있다.
이미 한국 내에는 탈북군인들의 단체인 겨레얼통일연대(북한인민해방전선. 북민전)가 있다. 아직 뜻을 정하지 못한 국내외 모든 탈북군인들이 북민전을 중심으로 단합한다면, 북민전을 중심으로 '신념의 용병'이 된다면 북한 독채제체 붕괴와 민족의 안녕이라는 꿈을 달성할 수 있다.
수요는 걱정할 필요 없다. 남북 한민족 전체가 탈북군인들의 고객이기에. 굳이 우선적으로 따지자면 중국 내에서 북한 민주화를 위해 목숨 걸고 활동 중인 선교사들이 고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곧 북한의 민주화를 돕는 것이 된다.
국내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중국에서는 총기 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울 수밖에 없으며, 인텔엣지 등의 민간군사기업들과 같은 합법적 절차를 거친다면 중국 내에서의 총기 소지는 가능하다. 선교사인 故 김창환 씨가 지난 2011년 보위부에 의해 중국 현지에서 독극물 피살을 당한 점을 감안하면 이들에 대한 군사적 보호 서비스 제공은 실제로도 절실하다.
탈북군인들은 비록 대한민국 국군이라는 정규군에 편입되어 북한 독재체제 멸망과 민족의 안녕이라는 신념을 이룰 수는 없다. 그러나 길은 있다. 반드시 있다.
모두 다 같이 떨쳐 일어나 '신념의 용병'이 되어, 다시금 손에 총(gun)을 잡고 신념을 위해 나아가도록 하자.
[겨레얼통일연대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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