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무기들 - ⑬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본문
일찍이 손자병법(孫子兵法)은 전쟁에서의 승리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압축 요약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지피지기 백전불태. 知彼知己 百戰不殆)"
손자(孫子)의 이러한 가르침은 약 2천년이라는 엄청난 세월이 지나서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인(武人)이라면 반드시 익혀야 할 불변(不變)의 진리로 자리 잡았다. 18~19세기 유럽 전역을 정복한 프랑스의 나폴레옹(Napoleon)이 손자병법의 애독자였으며, 1차 걸프전 당시 미 해병대 장교들에게 수첩형 손자병법이 지급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2천년 전에도 그러했고, 중세 시대에도 그러했으며, 지금도 그러하듯이 "적을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일선 장병들의 경우가 그렇다. 지휘부야 첩자, 정찰기 등을 통해 어찌어찌 적진의 동향을 파악한다 해도 이것이 일선 부대에게까지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때문에 20세기 이후 일선 부대는 수시로 무전기를 통해 지휘부에 "적의 동향은 어떠한가" "진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물어야만 했으며(통신장비가 발달하지 못한 그 이전 시대의 경우에는 통신용 깃발을 휘두르거나 직접 말을 타고 지휘부로 달려가서 명령을 하달받아야 했다), 자칫 통신이 두절될 경우 그대로 고립되는 상황이 허다했다.
지휘부로부터 적의 동향을 전달받지 못한 부대는 우왕좌왕하다가 매복에 걸리거나, 강력한 포격에 맞닥뜨려 궤멸될 수밖에 없었다. 막대한 국가 재정을 쏟아부어 수년 간 양성한 군사력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경우가 빈번했다.
20세기 이후 제2차 세계대전, 6.25전쟁, 월남전, 미소(美蘇) 냉전에서의 각종 비정규전, 파나마 전쟁, 소말리아 분쟁, 1~2차 걸프전, 아프간 전쟁 등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막대한 병력 손실을 감당해야 했던 미국의 고민은 더욱 컸다. "어떻게 하면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고, 병력 손실 발생으로 인한 국민의 여론 악화를 방지하면서, 신속하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90년대 초 미 국방부는 해답을 찾아냈다. 바로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응용한 '네트워크 중심전(Network Centric Warfare)'의 도입이었다.

<긴박한 전쟁터에서 마치 '게임기'를 조작하는 듯한 병사(맨 왼쪽). 혼자 딴청 피우고 있는 듯 하지만 실은 네트워크 중심전(NCW)의 핵심 장비인 디지털 군장(랜드워리어. Land Warrior)을 작동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인터넷(Internet)'이 실은 군사적 목적으로 미 국방부에서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냉전이 한창이던 1969년 미 국방부는 인터넷의 시초인 '아르파넷(ARPAnet)'을 개발했으며, 이것이 민간에서 상용화된 것이 인터넷이다. 따라서 네트워크 중심전은 이미 60년대 중후반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네트워크 중심전은 한마디로 '병사 개개인이 실시간으로 전쟁의 상황을 한 눈에 파악하는 것'이다. 정찰 위성, 정찰기, 휴민트(HUMINT. 첩자) 등을 통해 수집된 적군에 대한 정보 및 전체 전쟁터의 동향이 인터넷망을 이용한 SNS를 통해 병사 개개인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병사는 지금 자신과 교전 중인 적군의 움직임과 아군 지원병력의 현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으며, 소대나 중대의 경우에는 상급 부대로부터 별도의 명령을 받지 않고서도 스스로 작전을 수립해 전투에 임할 수 있다. 물론 필요시에는 마치 '인터넷 채팅'을 하듯 지휘부와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 과거와 같이 지휘부에 무전을 날려 적진의 상황을 묻고, 전진 후퇴 여부를 물을 필요 없이 신속하게 진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병사 개개인은 '랜드워리어(Land Warrior)'라는 장비를 사용하게 된다. 랜드워리어는 한마디로 '입는 컴퓨터'다. 랜드워리어를 착용한 병사는 다른 병사 혹은 부대와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되며, 음성·문자·사진 등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다. GPS장치를 통해 아군과 적군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도 있다.
애초부터 랜드워리어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5년 동안 무려 1천여억 원을 투입해 시제품을 생산했지만 부피가 크고 무게가 7kg이 넘어 개발사업 자체가 취소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미 국방부는 필요없는 장비는 버리는 과정을 통해 무게를 3.6kg까지 줄임으로서 랜드워리어를 성공시키고, 2006년부터 신속기동여단인 '스트라이커 여단전투팀(Stryker Brigade Combat Team)'에 적용시킴으로서 네트워크 중심전을 본격 가동하고 있다.
네트워크 중심전의 개념은 비단 보병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스트라이커 여단전투팀의 핵심 기계화전력인 스트라이커(Stryker) 장갑차에도 도입되었으며, 향후 정찰기·전투기·잠수함 등 육해공·해병대 전역으로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전투기는 적진 상공을 비행하면서 폭격을 쏟아붓는 동시에 수집한 정보를 지상의 병사들에게 전달하고, 병사들은 이 정보를 토대로 폭격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적진의 취약지점으로 돌격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스트라이커 장갑차 내부에서 네트워크 중심전에 필요한 장비인 여단전투정보체계(FBCB2) 단말기를 조작 중인 병사들. 이 단말기를 통해 장갑차는 지휘부로부터 전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내려받을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어린아이 장난'같이 보일 수도 있다. "뭐 이렇게 요란하게 복잡한 기계를 통해 정보를 내려받아? 그냥 지휘부에 무전 한 통 때려서 명령받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장의 범위가 지상, 해상(海上), 해저(海低), 공중을 넘어 우주로까지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고, 군단->사단->여단->연대->대대->중대를 거치는 명령의 하달 속도가 생각보다 매우 느리다는 점을 감안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현대전은 매우 입체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지상은 물론 공중(무인정찰기 등)을 넘어 우주(정찰위성 등)에서까지 전쟁이 치루어진다. 따라서 대대 이상의 지휘부에는 막대한 양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쏟아질 수밖에 없으며, 지휘부 단독으로 이 모든 정보를 검토해 작전을 수립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또 그만큼 하급 부대로까지 명령이 하달되기까지에도 긴 시간이 낭비될 수밖에 없으며, 중대나 소대가 지휘부로부터 전달된 명령의 재검토를 요구할 경우 추가로 시간이 허비될 수밖에 없다. 비교적 후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선 현장의 상황 확인을 정찰기, 정찰위성 등에 의존해야 하는 대대 이상의 지휘본부로서는 일선 현장의 상황을 미처 세밀하게 파악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통신이 두절될 경우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그 사이에 적으로부터 매복 공격이나 집중 포격을 받을 경우 궤멸될 위험이 다분하다.
그러나 네트워크중심전이 활성화되면 이러한 난제는 해결된다.
일선 현장의 상황을 그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일선 부대는 지휘부로부터의 명령을 기다릴 필요 없이 단지 지휘부로부터 전장의 정보만을 내려받아 스스로 작전을 수립해 전투에 임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대대나 여단·사단과 직접 SNS 채팅을 연결해 신속하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 중대·소대간에도 정보를 교환함으로서 신속한 상호 지원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병사 개개인도 스스로 전장의 정보를 파악해 효율적인 전투를 벌일 수 있다. 각종 화력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는 병력이 분산되기 일쑤이며 따라서 소대장의 명령이 각 병사들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 경우에도 병사들은 단독으로 전술을 수립할 수 있게 된다.
지휘부는 지휘부대로 이득을 볼 수 있다. 세세한 작전 수립은 일선 부대에 맡김으로서 보다 큰 틀에서의 작전 수립에 상대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되며, 느리고 잘못된 명령 하달로 인한 병사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게 된다.
네트워크 중심전은 실전에서도 이미 그 능력을 입증받고 있다. 랜드워리어를 착용한 최초의 한 미 육군 중대는 2000년대 중후반 이라크에서 여단 본부가 설정한 주요 목표물의 58%를 불과 한 달만에 모두 잡아들이는 위력을 보이기도 했다.
네트워크 중심전이 거의 완벽하게 적용되고 있는 스트라이커 여단전투팀은 현재 각종 한미(韓美) 합동훈련이 실시될 때마다 한반도에 신속하게 전개되고 있다. 3개 보병 대대, 1개 기갑 대대, 1개 포병 대대 등 병력 3,600~3,700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사시 한반도에 최대 96시간 내에 배치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 부대는 네트워크 중심전을 이용해 최강의 군대로 거듭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 국군도 네트워크 중심전을 도입하고 있다. 이 달 초 국군 지휘통신 사령부는 '제5정보통신단'을 발족하고 정찰위성의 효율화를 높임으로서 네트워크 중심전 구축에 한 발 다가서기도 했다.
북한 독재집단은 네트워크 중심전으로 무장한 스트라이커 여단전투팀이 출현할 때마다, 우리 국군이 21세기형 미래의 전투체계를 발전시킬 때마다 "북침(北侵) 음모" 운운하며 입에 '개거품'을 물고 짖어대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겁먹은 자의 발악일 뿐, '북진멸김(北進滅金)'의 그 날 네트워크 중심전의 매서운 칼날이 김정은을 도륙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겨레얼통일연대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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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dJd님의 댓글
IrhDXU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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