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무기들 ⑲ - 우주전쟁(Star 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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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유인(有人)우주선 '선저우(神舟) 10호'의 발사가 임박한 가운데 국제사회가 또 한 번 이를 숨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그들이 인류역사상 3번째로 우주왕복선에 인간을 싣고 우주로 보내는데 성공한 것은 지난 2003년 10월 15일. 당시 중국 공산당 수뇌부는 인민해방군 공군 중교(중령)였던 양리웨이(楊利偉)를 선저우 1호에 탑승시켜 우주 진입에 성공시킴으로서 전 세계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중국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함께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양대 축(G2)으로 자리매김하던 시기에 맞춰 유인우주선을 쏘아올린 목적은 단 하나였다. 바로 '우주전쟁(Star Wars)'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중국은 이미 실험용 우주정거장인 톈궁(天宮) 1호를 지구 궤도에 띄운 상태다. 향후 실용적인 우주정거장이 완성될 경우 공산당은 왕복선을 이용해 각종 부품을 정거장으로 실어나른 뒤 우주전쟁 수행을 위한 군사위성(Military Satellite) 전진기지로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북중(北中) 우호협력 상호원조 조약'이 존재하는 한 이는 김정은 집단의 남침(南侵)에 의한 2차 한국전 발발 시 승패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 중 하나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1세기 인류의 새로운 전장(戰場)으로 떠오르고 있는 우주와 이 우주전쟁의 첨병(尖兵) 역할을 하고 있는 군사위성의 세계. 오늘 '한반도의 무기들' 시간에는 현재 개발되고 있거나 운용 중인 각종 군사위성의 세계로 들어가본다.

[우주 공간을 부유(浮遊)하고 있는 은하(Galaxy). 태초(太初)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우주는 머나먼 태고적부터 인류가 동경하는 곳이 되어왔다]
우주에 대한 인류의 동경(憧憬)은 인간이 최초로 두 발로 서서 걷기 시작한 때부터 시작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최초의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가 출현하고 원시적 형태의 집단공동체가 형성될 때부터 인류는 밤하늘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그 모습을 암벽화(巖壁畫)로 남겼다. 중국 네이멍구(內蒙古區) 자치구에서 발견된 암벽화인 인산예화(陰山巖畵)에는 초기 인류가 그린 천체 별자리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Babylonia. 오늘날의 이라크 남부)에서는 별자리를 만들어 천체 지도를 작성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전쟁에 사용되기도 했다. 해군 수병들은 이 별자리를 길잡이로 삼아 군함을 운행했으며, 동양에서도 "전쟁에 나서는 장수는 천문(天文)의 모든 이치에 통달해야 한다"며 우주를 중요시했다.
한반도에서 발발한 각종 전쟁에서도 우주는 큰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신라의 첨성대(瞻星臺)다.
첨성대의 역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신라가 막대한 국력을 기울여 만든 이 첨성대가 비단 한 종류의 역할만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천문 관측을 통한 일기예보로 군대의 진퇴(進退) 여부를 결정하는 역할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렇듯 전사(戰史)상 큰 역할을 했던 우주를 인류가 적극적이고도 본격적으로 개척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다.
1957년 10월 4일, 소련 공산당은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Sputnik) 1호'를 발사했다. 인류가 지구 중력권을 벗어나 처음으로 수백만년 간 동경해왔던 미지(未知)의 공간인 우주로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소련은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국력을 과시했지만 스푸트니크 1호는 순수한 목적의 인공위성이 아닌, 미소(美蘇)냉전에서 승기를 쥐기 위한 목적을 가진 프로토타입(Prototype. 시험체)형 군사위성으로서의 성격이 다분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하늘 너머 머리 위에서 감행될 소련의 핵공격 가능성 앞에 큰 충격에 휩싸였다.
주도권을 뺏긴 미국은 1958년 미 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하고 우주 개척에 박차를 가했지만 1961년 4월 12일, 또 다시 좌절했다. 소련은 공군 장교였던 유리 가가린(Yurii Gagarin)을 최초의 유인우주선 보스토크(Vostok) 1호에 실어 우주 공간으로 발사시켰다.
유리 가가린이 1시간 29분간 지구 궤도를 여행한 뒤 모스크바 인근에 낙하산을 이용해 안착함으로서 무사 귀환하자 미국은 크게 당황했다.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당시 대통령은 60년대 이내에 미국이 달(月)에 인간을 보낼 것을 천명하며 서방세계의 불안감을 씻어내려 했다.

[1969년 아폴로(Apollo)11호에 몸을 싣고 비행한 뒤 달 표면 착륙에 성공한 美 우주인. 두 명이 착륙선을 이용해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디뎠으며, 한 명은 사령선에 탑승한 채 달 궤도를 돌면서 나머지 두 명의 귀환을 도왔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한지 불과 8년 뒤인 1969년 7월 20일, 이번에는 모스크바가 비명으로 진동했다. 어려울 것이라던 당초 예상을 깨고 미국이 인간을 달로 보낸 것이었다.
6.25전쟁 참전자이자 '아폴로(Apollo) 11호' 탑승자였던 미 공군 소속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은 이 날 지구로부터 38만4,400km 떨어진 달 표면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5억2,800만 인류가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이것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라고 당당히 선언함으로서 소련을 경악시켰다.
이는 곧 미국이 소련의 우주항공 기술을 앞지른 것을 의미했으며, 미국이 이를 바탕으로 미소 냉전에서 우위(優位)를 잡게 될 것임을 뜻했다. 60년대 초 미 본토에 핵공격을 가하기 위해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 사태를 일으켰던 소련으로서는 보복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후 미국과의 '우주전력 확충 경쟁' 과정에서 막대한 예산을 감당할 수 없었던 소련이 연방 해체를 선언함으로서 50~80년대와 같은 동서(東西) 간의 치열한 군사적 우주 개척 노력은 사라졌다.
하지만 2003년 공산 진영의 신(新)맹주로 떠오른 중국이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하고 뒤이어 2007년 위성 공격용(ASAT)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함에 따라 우주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구 궤도에서 공전(公轉)중인 다목적 인공위성. 정찰위성과 같은 군사위성은 아니지만 형태는 유사하다]
가장 처음 실용화된 군사위성은 정찰위성(Surveillance Satellite)이다.
대기권 밖의 우주 공간에서 타국의 군사, 정치 동향 등을 감시하는 무기인 정찰위성은 고해상도 카메라를 장착하고 있으며 세계 각 국이 1급 군사기밀로 취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59년 최초의 정찰위성인 KH-1을 필두로 다양한 정찰위성을 운용 중에 있다. 70년대에는 첫 디지털 영상 촬영이 가능한 위성을 띄웠으며, 오늘 날 군(軍)뿐만 아니라 미 국가안전국(NSA)과 같은 시진트(SIGINT. 전자장비를 이용한 첩보) 전문 정보기관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카메라 해상도는 비약적으로 발달해 대기권 밖의 고공(高空)에서 지상의 신문 활자까지 해독할 정도로 진화했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는 물론 일본·중국 등에서도 활용되고 있으며, 자세한 사항은 극비(極祕)에 부쳐지고 있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어디든 촬영할 수 있는 정찰위성의 유일한 단점은 '타이밍'이다.
초속 7.9km(시속 28,440km)의 엄청난 속도로 지구 궤도를 공전(公轉)하고 있는 특성상 위성은 한 자리에 머물 수 없으며, 따라서 지상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위성이 해당지역 상공으로 진입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김정은 집단이나 탈레반(Taliban)과 같은 국제 범죄집단은 이를 악용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이 무인(無人)정찰기를 별도로 운용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근래에는 '방해받지 않는다'는 정찰위성의 장점마저도 위기를 맞고 있다.
2007년 1월 11일 중국 인민해방군은 위성 공격용으로 개조된 탄도미사일 '둥펑(東風)-21'을 발사해 이미 수명이 다한 자국 기상위성 '펑윈(風雲)-1C'를 격추시키는데 성공했다.
아무리 첨단위성일지라도 트럭에서 발사되는 이 볼품 없는 미사일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입증되자 미중(美中) 양 국은 서로의 정찰위성을 견제하기 위해 대(對)위성용 미사일 전력 확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위성 요격에 최적화된 미사일인 '둥넝(動能)-2'의 시험발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레이저(Laser). 민수(民需)용으로 사용되었던 레이저는 21세기 이르러 강력한 군사용 무기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이렇듯 미사일 공격에 따른 정찰위성의 취약점이 드러나자 미중 양 국은 자국 정찰위성을 방어하면서 상대의 그것을 공격할 새로운 위성 개발에 나서고 있다. 바로 '공격위성(Anti Satellite)'이다.
중국의 첫 유인우주선 발사가 임박했던 2003년 2월 미국 콜로라도주(州)의 한 공군기지에서 특이한 '우주전쟁 시뮬레이션(Simulation. 가상훈련)'이 실시되었다. 이 훈련에서 발사된 가상의 적국 미사일은 미 정찰위성에 채 도달하지도 못한 채 바다로 추락했다. 미국이 연구 중인 신(新)병기 '레이저(Laser) 공격위성' 때문이었다.
레이저 무기는 이미 실용화 단계에 이르렀으며 근래 미 해군은 시험발사에 성공하기도 했다. 우주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운동하는 물질인 빛(光)을 이용한 특성상 레이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목표물에 도달하며, 초고온으로 목표물을 녹여버린다. 이 레이저를 사용할 경우 정찰위성을 향해 음속의 10배 이상으로 다가오는 탄도미사일도 충분히 격추시킬 수 있다.
공격위성 중에는 미사일 요격뿐만 아니라 직접 적국의 정찰위성을 공격하는 종류도 있다. 근래 연구되고 있는 '대(對)위성 공격위성'은 목표물의 근처 궤도까지 다가간 뒤 스스로 폭발해 파편을 뿌리는 방식이다.
레이저와 파편을 갖춘 두 가지 종류의 공격위성을 모두 보유할 경우 그 국가는 자국 정찰위성을 안전하게 지키면서 적 정찰위성을 공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레이저 공격위성의 경우 정찰위성으로 다가오는 미사일뿐만 아니라 자국 본토로 향하는 미사일을 격추할 수도 있다.
우리의 정찰·공격위성 기술 수준은 아직 미약하다. 나로호 발사 실패로 인해 위성 운반체를 아직 확보하지 못했을 뿐더러 박근혜 정부 들어 정찰위성의 전력화를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정찰기에서도 저공(低空) 정찰기인 '금강'만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다행인 점은 비록 늦었지만 올해 군(軍) 정보자산 강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점이다. 방위사업청은 최근 정찰위성 개발 예산으로 11조 9천억 원을 국회 국방위에 요청했으며, 국방부는 '2013 업무계획 대통령 보고'에서 정찰위성 확보를 위한 계획 실행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종북(從北)야당들의 반발이 걸림돌로 작용하기는 하지만 정찰위성, 나아가 공격위성 등의 우주전쟁 전력이 모두 갖춰질 경우 핵실험과 같은 불장난에만 매달리고 있는 김정은 집단에게 치명적인 위기로 작용할 것임은 분명하다.
[겨레얼통일연대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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