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무기들 ⑰ - '핵펀치'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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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13일 남북(南北) 당국회담이 열릴 예정인 가운데 우리 측 참석자들은 금강산 관광 재개의 조건으로 故 박왕자 씨 피살 사건과 같은 참변의 재발 방지를 요청할 예정이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에 나선 고인(故人)은 같은 달 11일 북한군 초병의 총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이로 인해 이명박 정부는 금강산 관광로 폐쇄라는 초강수를 두었으며, 북한 정권은 특유의 '호전(好戰)성'을 더욱 드러내며 남북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갔다.
이번 당국회담에서 우리 측은 구체적으로 ▲진상조사 ▲재발방지 약속 ▲신변안전 보장을 요구할 방침이다. 이 중 특히 재발방지 약속과 신변안전 약속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해진다. 제2의 희생자가 발생할 경우 정부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이 빗발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집단의 독재 자금 확보수단인 금강산 관광이 영구(永久)히 중단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정부가 굳이 재개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우리가 먼저 관광객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조치는 단연 김정은 집단의 총격으로부터 관광객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방탄복(body armor)' 제공이 으뜸이 되어야 할 것이다.
21세기 오늘날 세계 각 국 일반 시민들의 생명은 물론 일국(一國)의 대통령의 목숨까지도 책임지고 있는 방탄복의 세계, 오늘 '한반도의 무기들' 시간에는 그 역사와 미래에 대해 알아본다.

<일본도(日本刀). 이 칼의 위력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져 태평양 전쟁에서 수많은 미군의 목을 베면서 악명을 떨쳤다. 일본은 오늘날에도 사시미(刺身. 생선회)칼 등을 생산하는 도검류 강국으로 자리잡고 있다>
'창과 방패'의 대결의 역사는 깊다.
석기 시대가 지나고 최초의 금속 보급화 시대인 청동기 시대가 도래하자 고대의 문명 도시국가들은 앞다투어 청동기 무기를 만들었다. 돌보다 훨씬 단단하고 날카로운 청동제 창과 화살을 앞세운 거대 세력이 주변 세력을 장악하기 시작하자 군소(群小) 세력들은 이 금속 무기를 막을 단단한 방패와 갑옷을 만들어 대항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철기 시대가 시작되자 청동제 방어구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에 동서양의 국가들은 철제 방어구를 만들어 철기 무기를 막았으며, 이후 보다 더 단단하고 날카로운 무기가 탄생하고 뒤이어 보다 더 튼튼한 방어구가 발명되는 패턴이 근 2천년 이상 지속되었다.
중세 시대에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개발한 국가는 의외로 '일본'이다. 몽골 기마병의 활과 화살을 앞세워 유럽의 절반을 정복하다시피 했을 정도로 군사 강국이었던 중국조차도 일본이 생산한 이 무기 앞에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일본도(日本刀)'다.
수백 수천의 세력이 패권을 다투며 혼란스러웠던 센고쿠(戰國. 전국)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일본 열도를 재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대륙 침략이라는 야욕에 사로잡혀 조선(지금의 한반도)으로 군사를 출병시켜 임진왜란을 일으켰는데, 당시 조선 왕실의 요청을 받아 구원병을 파병한 중국 명(明)나라는 일본도 앞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길이 약 1.5m의 이 칼은 닥치는대로 명나라 병사들의 갑옷을 쪼개고 심장을 꿰뚫어 대지를 붉은 피로 물들였다. 일본군의 대다수는 보병이었으나 명나라 기병대마저 일본도를 상대로 효과적인 공격을 펼치지 못했다. 심지어 명군(明軍) 사령관이었던 이여송(李如松)마저 부상을 입고 부장인 이비어(李備禦)와 마천총(馬千摠)은 전사할 정도였다.
비록 각종 화포(火藥)와 같은 중화기를 활용한 덕분에 명나라는 끝내 일본군을 조선 땅에서 몰아낼 수 있었지만, 이 전쟁에서 막대한 국력을 소모한 명나라는 훗날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 출신의 누르하치(努爾哈赤)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다.
일본도와 같은 다양하고도 강력한 신(新)무기들의 등장 앞에 방어구도 자연스럽게 진화를 거듭했지만 이러한 '창과 방패'의 싸움을 주도한 것은 창, 즉 무기였다. 아무리 튼튼한 방패와 갑옷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곧 그것을 뚫을 무기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철제 방어구에 있어서 '튼튼하다'는 곧 '무겁다'를 의미했기에 현실적으로도 별 쓸모가 없었다. 실례로 20~30kg의 갑옷을 입은 유럽 기사들은 움직임이 둔하디 둔했으며, 한 번 넘어질 경우 일어서지를 못해 그대로 포로가 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1920년대 방탄복 실험 장면. 방탄조끼를 입은 사람에게 근거리에서 권총 사격을 가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그야말로 목숨 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20세기로 들어서면서 '창과 방패'의 싸움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접전 양상으로 돌입했다. 바로 방탄복의 등장 때문이다.
사실 총기류가 인류 전쟁사에 처음 등장했을 때 명중률 수준에 관계없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무적(無敵)의 병기'로 각인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병사들도 일본의 조총(鳥銃)을 두고 '귀신 같은 무기'라 표현할 정도였다. 인간인 이상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탄환을 발사하는 총을 피할 도리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총기류에 대항하는 방어구 개발에 그 누구보다 발빠르게 움직인 국가도 조선이었다. 1866년 프랑스의 강화도 공격을 시작으로 발발한 병인양요(丙寅洋擾) 당시 조선군 병사들에게는 면(목화)으로 만든 옷인 '면제배갑(綿製背甲)'이 보급되었는데, 이 옷은 가벼우면서도 총탄을 막아낼 정도로 튼튼했다. 그런 점에서 사실 방탄복의 원조는 우리 한민족인 셈이다.
근대식 방탄복이 첫 선을 보인 곳은 미국이다.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할 방안을 모색하던 중 섬유화학 기업인 듀폰(du Pont)이 1972년 미 국방부에 납품한 '케블라(kevlar)' 섬유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어놓을 획기적인 신소재였다.
케블라는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무려 5배 이상 더 튼튼하면서도 철제 방어구보다 가벼웠다.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케블라 방탄조끼는 이 케블라 섬유를 이용해 만들어졌으며, 대부분의 총격을 그대로 방어했다. 케블라 섬유로 짠 천을 수십겹 겹쳐 조끼를 만들면 촘촘한 섬유 사이에 총알이 걸려 뚫지못하고 정지하는 원리다.
물론 완벽한 방어는 가능하지 않다. 음속의 2.87배(시속 약 3,000km) 안팎의 속도로 발사되는 소총탄은 때때로 방탄조끼를 뚫고 인체를 관통하기도 한다. 막는다 하더라도 탄환과의 충돌로 인한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지는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의 철제 방어구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점이다.
갑옷의 경우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며 방패의 경우 고난위도의 사용 기술을 요구한다. 그러나 방탄복은 입고 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 공격을 막아낸다. 총기류의 공격이 제아무리 거세다 하더라도 아무런 군사 훈련을 받지 못한 일반인조차 방탄복을 입으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창과 방패'의 싸움이 접전으로 돌입했다고 표현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방탄조끼를 착용한 채 작전 중인 美 병사들. 가장 핵심 장기(臟器)인 뇌가 위치한 머리는 철모로 방호한다>
70년대 미국 경찰을 시작으로 비(非) 군사분야에서도 방탄복의 인기가 급증하자 미 법무부 법무연구소(NIJ)는 방탄복의 종류를 강도에 따라 5레벨로 나누었다.
가장 낮은 레벨인 'ⅡA'는 9mm 탄환을 사용하는 권총에 대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다. 한 단계 위인 'Ⅱ' 레벨은 357 매그넘 권총탄에 대한 방어력을, 레벨 'ⅢA'는 44 매그넘 권총탄에 대한 방어력을, 레벨 'Ⅲ'는 7.62mm 소총탄에 대한 방어력을, 가장 높은 레벨인 'Ⅳ'는 철갑탄에 대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다.
레벨 'ⅢA'부터는 옷 위에 껴입는 형태로 착용하게 되며 통상 군용 방탄복은 이 레벨 이상이다. 방탄복의 특징은 주요 장기가 밀집한 몸통만을 방어한다는 점이며, 이는 전신(全身)을 감싼 중세시대 갑옷과 매우 다른 차이점이다. 레벨 Ⅲ' 이상부터는 케블라 등 섬유뿐만 아니라 외피와 하드플레이트(hard plate. 방탄판) 등으로 구성되지만 형태는 하위 레벨과 마찬가지다.
방탄복이 이러한 형테를 갖춘 까닭은 '신속한 기동'이다. 두꺼운 방탄복을 온 몸에 두르고 느릿느릿 움직이다가 행여 섬유를 뚫고 들어온 총탄에 목숨을 잃느니 주요 부위만을 방어하면서 대신 신속한 기동을 가능케함으로서 생존성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전신을 완전히 보호하는 방탄복이 전혀 개발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피나클아머(pinnacle armor)라는 업체에서 만든 '드레곤 스킨(dragon skin)'이라는 이름의 방탄복은 하드플레이트를 2인치 직경의 디스크로 만들어서 온 몸을 방어하도록 만든 형태의 제품이다. 하지만 NIJ 기준을 충족하지 못함에 따라 아직 실용화 단계에는 접어들지 못하고 있다.

<탄소나노튜브(CNT) 섬유를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모습. 이토록 작디 작은 미시(微視)세계의 물질은 인류 사회와 같은 거시(巨視)세계를 발전시키는 원천이 되고 있다>
21세기로 들어서면서 방탄복은 한 층 진화하고 있다.
국내 섬유화학 기업인 코오롱이 20년 연구 끝에 수년 전 개발한 신소재 '헤라크론(Heracro)'은 케블라 못지 않은 성능을 갖추고 있으며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비록 같은 아라미드(aramid) 계열의 섬유인 케블라를 생산 중인 듀폰이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다소 위기를 맞고 있지만 작년 9월 미 연방 항소법원이 코오롱의 생산 재개 요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여전히 인기 품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1조원대 시장을 두고 세계 최고의 아라미드 섬유업체인 듀폰이 코오롱을 견제하는 것은 그만큼 국내 방탄섬유 기술이 크게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전단농화유체(STF)'라는 특수물질을 이용한 방탄복 개발도 국내 연구기관이 주도하고 있다. 평소에는 젤리처럼 말랑말랑하지만 충격을 받는 순간 강하게 굳어지는 STF 방탄복은 사용자의 활동성을 보다 높인다는 장점이 있다.
케블라 등 딱딱한 소재 대신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함으로서 이용자가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이 방탄복은 소재 1kg에 100만 원이라는 높은 가격 때문에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었지만,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바이오나노섬유융합연구그룹 유의상 수석연구원팀이 STF를 기존의 10분의 1 가격으로 제조하는 기술을 만듦에 따라 실용화의 길을 걷고 있다.
'탄소복합재료(CCCs)'를 이용한 방탄복 개발연구도 한창이다. 한국, 미국, 중국 등이 이미 개발에 성공한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tube)' 섬유는 굵기가 사람 머리카락의 100분의 1일 정도로 가볍지만 강도는 강철보다도 더 단단하다. 한국표준연구원의 남승훈 책임연구원팀이 개발한 탄소나노튜브 섬유는 강도가 강철의 100배일 정도다.
[겨레얼통일연대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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