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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무기들(21) - M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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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33세의 젊은 청년 하나가 자동소총(Automatic Rifle) 한 정을 들고 미국 육군성(국방부 산하 육군 행정기구)을 찾았다.
 
소련이 개발한 AK-47 자동소총에 잔뜩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터라 육군성은 이 신형 무기에 큰 기대를 걸었다. AK-47은 이미 북한과 중국, 월맹 등 세계 도처의 공산세력으로 뻗어나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위협하고 있었으며, 미국은 이에 맞설 새로운 제식(制式)소총의 등장을 애타게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한마디로 '실패'였다.
 
원인은 성능이 아닌 '디자인'이었다. '듣보잡'이었던 특유의 '운반손잡이'와 플라스틱 재질, 거기에 3kg도 채 되지 않는 빈약한 무게까지.
 
M-1 개런드(Garand)와 같이 육중하고 박력감 느껴지는 소총에 익숙해져 있던 군(軍) 관계자들은 수년 간의 검토 끝에 이 소총의 채택을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했다. "생긴 게 맘에 안 든다"는 어이 없는 이유였다. 청년은 낙담한 표정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더벅머리의 청년 유진 스토너(Eugene M. Stoner. 1922~1997)가 들고 온 이 '보잘 것 없는' 자동소총이 훗날 소련과의 냉전(冷戰)에서 자유진영을 상징하는 주력무기가 될 줄은.
 
1955년의 어느 날, 이 날은 오늘날에도 미 주(州)방위군 및 대한민국 예비군의 주력 화기로 사용되고 있는 'M-16' 자동소총이 세상에 첫 등장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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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이 끝난 직후 가진 첫 만남에서 서로가 개발한 소총을 바꿔들고 포즈를 취한 AK-47의 개발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Mikhail Kalashnikov. 왼쪽)와 M-16의 개발자 유진 스토너(Eugene M. Stoner)]
 
유진 스토너는 사후(死後)에도 여전히 '천재적인 총기 설계자'로 일컬어지고 있지만 그의 인생이 첫 행보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아말라이트(Armalite)라는 항공기 관련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M-16의 원형(原形)이 된 AR-10이라는 이름의 자동소총을 개발한 그였지만 1955년 첫 시판 이래 매출은 빈약하기 그지 없었다. 특히 최대 고객으로 큰 기대를 걸었던 육해공·해병대마저 그를 외면했다.
 
보다 강력한 위력의 소총을 개발해달라는 육군의 주문에 스토너는 58년 '223레밍턴' 탄환을 채용함으로서 화력 대비 무게·사격 시 반동을 획기적으로 줄인 AR-15를 제작하는 한편 보다 원활한 유통을 위해 미국 최대 총기업체인 콜트(Colt)에 판권을 넘기기까지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반세기의 냉전 기간 동안 AK-47에 맞서 자유진영을 지킨 전설의 무기 M-16이 채 활약도 해보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변화는 찾아왔다. 처음 긍정적 반응을 보인 곳은 엉뚱하게도 육군이 아닌 공군이었다. 1961년 커티스 르메이(Curtis E. LeMay) 당시 공군참모총장은 이 획기적 디자인의 소총이 갖는 잠재력을 꿰뚫어보고 공군기지 방어용으로 8만정 가량을 도입하고자 시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던 르메이 장군의 AR-15에 대한 평가는 국방부가 이 소총에 새삼 시선을 집중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62년 국방과학연구소(ARPA)는 약 1천 정의 AR-15를 구입한 뒤 베트남으로 옮겨 성능 시험평가를 진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월남의 정글에서 목재(木材)로 된 무거운 반자동소총을 들고 월맹군의 게릴라 전술에 맞서야만 했던 미 특수전부대원들은 AR-15에 열광했다. 가벼운 무게에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세련된 디자인, 거기에 높은 초탄명중률과 파괴력까지.
 
특히 AR-15의 파괴력은 엄청났으며 이 소총에 희생된 월맹군의 시신이 크게 손상되는 경우가 많아 시체를 촬영한 사진의 언론 노출이 금지될 정도였다. 어린아이도 사용할 정도의 간단한 조작법에 튼튼한 내구력, 그리고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AK-47 앞에 고전하고 있던 병사들은 AR-15로 말미암아 비로소 반격다운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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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6의 두 번째 시리즈인 M16A2를 들고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는 병사. 가늠자가 특유의 '운반손잡이' 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M-16의 가장 큰 특징이다]
 
1963년, 국방부는 드디어 AR-15의 대량 생산을 스토너에게 발주(發注)했다. 공군이 가장 먼저 이 소총을 채용해 'M16A1'이라는 제식명을 부여했으며, 육군은 내심 못마땅해 하면서도 M-16의 개량형인 'XM16E1'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AR-15를 보병 제식화기로 채택했다.
 
5.56 x 45mm 탄환을 채용하는 한편 M203 유탄(榴彈)발사기를 장착할 수 있게 디자인하는 등 발전을 거듭한 M-16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미 육해공·해병대는 물론 한미(韓美)동맹의 기치 아래 월남전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 박정희 대통령도 M-16의 위력을 실감하고 백악관에 요청해 2만7천 정을 도입했으며, 74년 이후부터는 아예 방산업체인 대우정밀에 생산공정을 설비하고 면허생산(Licence Production)의 형태로 60만 정에 가까운 M-16을 제조했다.
 
67년 2월 15일 발발한 '짜빈동(Tra Binh Dong)' 전투에서 AK-47로 무장한 채 돌격해오는 월맹군 연대급 병력과 맞서 싸워 246명을 사살하고 격퇴시킬 정도로 용맹스러웠던 대한민국 육군·해병대로의 M-16 도입은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었다.
 
월맹군은 백마부대·청룡부대 등 한국군과 마주치면 '따이한(大韓)'이라 외치며 퇴각하기 급급했으며, 지휘부조차도 한국군과의 전면전을 피할 것을 예하 부대에 지시할 정도였다. 한(韓)민족 특유의 용맹스러움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M-16의 위력도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까닭으로 작용했다.
 
M-16이 비단 '파괴적인 무기'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백마부대 장병이 M-16을 든 채 탄환이 빗발치는 전장(戰場)을 뚫고 두 명의 베트남 소년을 구조하는 장면을 담은 한 장의 흑백 사진은 오늘날에도 평화에 대한 자유진영의 염원과 공산주의에 대한 저항정신(Spirit of Resistance)을 상징하는 존재로 남고 있다.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라는 끔찍한 범죄가 자행된 보스니아 내전 현장에서도,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발발한 1차 걸프전에서도 M-16은 마찬가지로 기념비적인 흔적들을 무수히 남겼다.
 
이렇듯 M-16은 70년대 이후 단순한 무기로서의 기능을 탈피해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형상화하는 하나의 심벌(Symbol)로서 점차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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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당시 M-16으로 무장한 채 어린이들을 구조하고 있는 백마부대 장병]
 
길이 100.6cm, 탄알집(탄창) 제외 무게 2.97kg, 최대사거리 2,653m, 유효사거리 460m의 제원(諸元. M16A1 기준)을 바탕으로 분당 750발의 탄환을 쏟아내는 M-16 자동소총이 마냥 성공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최초 월남전에 투입된 M-16은 그러나 잦은 송탄불량 등으로 인해 적지 않은 미군(美軍)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이는 미 의회가 'M-16 스캔들'을 대상으로 국정조사까지 실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구력이 강한 AK-47과 달리 M-16은 '잦은 청소'를 필요로 했으며, 총기를 분해한 뒤 자주 기름으로 닦아주지 않을 경우 고장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당초 국방부가 "청소할 필요 없이 튼튼하다"고 주장한 것과는 상반되는 결과였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당장 M-16을 대체할 제식무기는 없었다. 결국 군 당국은 정치권에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열심히 소총을 닦으면 된다" 이는 월맹군이 AK-47을 뉘여두고 쉬는 사이에도 한미(韓美) 연합군은 M-16을 분해해 열심히 기름칠을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지만 이 마저도 월남전을 추억하는 한 장면으로 남고 있다.
 
M16A1이라는 이름으로 첫 생산된 M-16 시리즈는 오늘날 M16A4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신형 자동소총의 등장, 한국 등 우방국들의 자체 개발소총 채용 등을 이유로 점차 현역에서 물러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개발자인 유진 스토너마저 97년 4월 사망함에 따라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미 육군은 현재 M4 카빈(Carbine)소총을 대거 도입 중이며, 대한민국 육군도 대우정밀이 자체 개발한 K-2 자동소총을 제식소총으로 채택 중이다. 프랑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불펍식(bullpup. 격발·급탄이 개머리판 쪽에서 이루어지는 방식) 자동소총인 파마스(FAMAS)를 사용하고 있으며, 명목상 무기 개발이 금지된 일본마저 자체 생산한 '89식 소총'을 채용하고 있다.
 
FN-SCAR와 같은 차세대 돌격소총의 등장도 M-16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2010년부터 언론에서는 미 군 당국이 FN-SCAR의 채택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 소총은 M-16에 비해 획기적으로 짧아진 총열 등이 특징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M-16이 인류 전사(戰史)에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 소총은 여전히 주 방위군, 예비군 등지에서 사용되고 있다. 2009년 우리 국방부가 북진(北進)통일 시 10만여 예비군을 북한 지역에 투입해 민사작전(民事作戰)을 펼칠 계획을 수립한 점을 감안하면 M-16의 활약상은 21세기에도 꾸준히 기록될 것임이 틀림없다.
 
[겨레얼통일연대 사무국]

댓글목록1

xhTuil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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