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김정일 적화통일의 충성스런 하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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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은 북에 5조 퍼주어 미사일 핵개발하고 연합사해체로 적화통일 기반 조성
노대통령은 NLL 폐지, 북 주적 개념 폐지, 급변사퇴 작전계획5029 폐지, 북핵정당성 인정으로 국가 안보 무력화
10.4공동성명 통해 김정일에 적화통일 기반 조성되었음을 보고 적화통일 유도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만들어 공산당과 빨치산 경력자를 민주투사로 둔갑시켜 종북세력 양성
문제인 이재정 김만복 앞세워 김정일과 NLL 문제 거론한 적 없다는 거짓말로 국민 속여
노무현 친가 처가는 빨치산
노무현 전 대통령이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평양방송은 그 위대한 '남조선 빨치산투쟁 영웅'의 사위가 남조선대통령에 당선 되고 했다. 또 빨치산 영웅의 딸이 청와대의 안주인이 되었다며 권오석(권양숙 부친)의 공로와 그 사위와 딸이 남조선대통령이 된 사실을 방송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위대한 김일성수령님의 정신이 승리했다'고 방송했다고 한다. 금강산에 "김일성 수령님이 가장 사랑하는 남조선영웅 권오석동지의 딸 청와대입성" 이라는 내용의 플랜카드까지 크게 만들어 걸어놓았는데 한국국회에서 말썽이 일자 이를 철거했다고 한다.
언론과 인터넷에 떠 있는 노무현 부친과 장인의 빨치산 활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노무현의 고향은 전라남도 강진으로 1953년 노무현이 5살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노무현의 조부가 일제시대 일본 앞잡이가 되어 동내 주민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해방이 되자 주민들의 괄시를 당하였다고 한다. 노무현 부친 노판석(?-1976)은 동네사람들의 괄시에 앙심을 품고 있다가 6.25가 터지자 인민군 앞잡이가 되어 무고한 양민 약 20~30여명의 학살하고 인민군이 후퇴하자 노판석은 동네 사람들의 보복이 두려워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하다 빨치산토벌작전이 시작되자 노판석은 노무현 5살 때 가족을 데리고 경남 진영 오지 마을로 들어가 살면서 호적을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다시 김해로 이주를 해서 경상도출신 행세를 해온 것이라 기사들이 인터넷에 떠 있다.
노무현의 부인 권양숙 아버지 권오석(1921-1971)은 6.25 당시 인민군 앞잡이가 되어 경남 창원군 진전면 치안대장(북한 공산당이 임명한 경찰서장) 역할을 하면서 무고한 마을 사람 11명을 학살한 골수 공산주의자였다고 한다. 양민학살로 수감 중이던 권오석은 1956년 폐결핵등의 질병 때문에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났고, 5.16 이 나기 두 달 전인 1961년 3월27일 재수감됐다가 1971년 감옥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권오석에 의해 학살극이 자행된 창원군 진전면 면장 변백섭(卞百燮)씨 3형제와 마을 사람 8명 등 총11명 희생자 유가족들이 모여 ‘권오석 양민 학살사건 유가족회’를 조직하고 유족대표 변재환(사진, 卞在煥, 57) 박사가 ‘노무현 정권 규탄대회’에 참석 국민들 앞에 반세기 전 그날에 있었던 참살 현장 비극을 생생하게 폭로했다.
일본에서 출판된 ‘미국은 북조선을 핵으로 공격한다’(저자 ,日高義樹)는 책은 “미국 정부의 정보에 의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은 북한 게릴라로 한국 전쟁의 치열한 전투 때 참가해 미군 병사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많은 미국인들은 믿고 있다.”고 폭로 했다. (선데이 타임스 2002.4.12 - 미국발 괴문서 여의도에 충격, 참조) (월간조선 2002. 6월호 참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가와 처가는 대한민국에 한이 맺힌 집안이기 때문에 그 한을 풀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하수인으로 변한 노무현 전 대통령
2007년 10월, 2박3일간의 남북 정상회담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회담 시간을 더 내달라고 일곱 차례 요청한 것이 대화록에 나와 있다고 한다. 김정일에 통사정하고도 한국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도 못하고 “NLL 포기”하겠다고 양보하고 돌아온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니까… 뒷걸음치지 않게… 쐐기를 좀 박아놓자"고 한 말 속에 해답이 들어있다. 공개 된 회의록은 ‘10·4 남북공동선언’이 다음 정권이 건드리지 못하게 대못을 쳐 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임기를 넉 달 남긴 대통령이 북한 독재자와 만난 대가치고는 과다한 청구서였다.
노 전 대통령은 NLL이 "국제법적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위험한 괴물"이라고 했다. 회담이 진행되면서는 "NLL은 바꿔야 한다" "(NLL이) 헌법 문제라고 자꾸 나오는데 헌법 문제 절대 아니다"고도 했다. "남측에서는 이걸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도 했다.
김정일이 한국은 자주성이 없다고 말하자 노 전 대통령은 “남측의 어떤 정부도 하루아침에 미국과 관계를 싹둑 끊고 북측이 하시는 것처럼 이런 수준의 자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북한 독재자 앞에서 “세상에 자주적인 나라가 북측의 공화국밖에 없고…”라고 한 것이다. 그는 자주국방, 주적개념 폐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미 2사단의 후방 배치, 작계5029 폐지 등을 자랑하듯 언급하며 “자꾸 너희들 뭐하냐, 이렇게만 보지 마시고요,…이렇게 보시면 달라지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적장에게 우리는 모든 정책에서 미국을 배제 시켜 가고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한 것은 김정일에 적화통일의 기회를 제공했으니 선처를 바란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을 인질로 삼은 핵에 대해 “핵 문제를 확실하게 이야기하라는 한국 내의 주문은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이라고 매도하고 “세계 정상들을 상대로 북측의 대변인 노릇, 변호인 노릇을 했다”면서 김정일에 알아달라고 애원했다. 정신병자나 할 짓을 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의 비위를 맞추려고 친북반미 성향을 드러냈다. “여론조사를 해봤는데, 제일 미운 나라가 어디냐고 했을 때 그중에 미국이 상당 숫자 나옵니다”라는 대목은 마치 고자질하는 투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내내,… 국제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라는 말이나 국제사회가 합의한 북한제재를 “미국의 실책”이라고 말한 것은 북핵을 옹호한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혁명적 결단” “승인해주셨다”고 치켜세우는 참담한 모습도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이 “남측 방문은 언제 해주시렵니까”라고 하자 김정일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수반으로 갈 수도 있다”며 노 전대통령의 격을 낮추어 버렸다.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김정일에 위탁하고 동맹국 미국을 비하하면서 김정일에 아부하는 노무현의 모습은 참담하다 못해 불쌍한 모습니다.
민주당의 말 바꾸기와 거짓말
민주당은 전문 공개 이전에는 NLL에 대한 대화록은 없다고 하더니 대화록이 공개되자 포기라는 단어가 없다고 주장했가 여론에 밀리자 대화록이 왜곡·짜깁기·조작·짝퉁 이라며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그래도 여론이 불신하자 원본과 다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 또 대화록이 공개되자 “NLL 현실을 인정하도록 설득했다”고 말을 바꾸었다.
문제인의원은 대선 때 대화록에 NLL 문제가 있다면 사퇴하겠다고 하더니 대화록이 사실로 밝혀지자 “평화협력지대 같은 것을 만들어 NLL도 지키고 평화와 경제도 얻자는 노 전 대통령의 구상이 훌륭하지 않으냐”고 말을 뒤집었다.
노정권 때 통일부장관 이재정, 국가정보원장 김만복, 대통령안보실장 백종천은 대선 전과 대선 후에도 계속 해서 입을 모아 대화록에 NLL 문제는 거론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대화록이 공개되자 대화록에 "NLL을 포기한다"는 발언은 없다고 하더니 NLL을 포기한다는 게 아니라 NLL의 성격을 바꾸자는 이야기였다"고 또 말을 바꾸고 있다. 2012년10월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NLL 관련 의혹 제기하자“비밀 녹취록도 없고 회담에서 NLL 이야기는 나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해 12월 민주당사에서는 “국민 앞에 명예를 건다”며 NLL 논의 사실을 부인했다.
남북 정상회담 뒤 열린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우리 군은 NLL 남쪽에만 공동수역을 설정하자는 북측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버티자 양정상이 합의 사항이라면서 노 대통령에게 전화해 물어보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NLL이 존중된다면 공동어로수역 설정도 논의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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