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장성택 숙청은 김일성-김정일때 부터 진행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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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2월 8일 김정은의 참가하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이며 북한의 2인자 였던 고모부를 숙청하는 놀음을 벌리였다.
왜 갑자기 그런숙청바람이 불었는지는 세상이 다 모르는 사실도 있다.
장성택 숙청은 김일성이 김정일을 후계자 내세울 때 부터 시작되였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김일성이 1991년12월 김정일을 북한 군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하면서 비공식적으로 김일성은 김정일이 한데 국가안전위원회(국가안전보위부)위원장직을 누구 한데 맡겼으면 하냐고 물었을때 김정일은 매제인 장성택을 지명하자 김일성은 책상을 치면서 분노 하였다.
그러면서 히틀러가 자신의 친위대인 SS 첩보대 와 게스타포 를 밑고 세계대전을 하였다고 하면서 북한의 1인자가 존재하자면 국가안전보위부 와 보위사령부는 그누구 한데도 넘겨줘서는 안된다고 당부하였다.
그러면서 김일성은 매제와 처남사이가 그렇게 가까운지 몰랐다고 하면서 사망직전까지 김정일을 돕기위해 당과 군부내에서 특히 보위부와 보위사령부에서 "가족주의 뿌리근성을 없애고 당과 혁명의 통일단결을 강화하자" 는 구호를 내걸고 신원확인을 극비비밀사업으로 보위부와 보위사령부 간부사업(인사사업)을 다시진행하였다.
그후 김일성은 김정일앞에서 장성택을 넘 밑지말고 경제담당분야만 맡기라고 부탁했다.
김일성 사망이후 김정일은 북한의 경제난국에 매제인 장성택을 경제분야에 앞세워 어려운 국면을 열어보려고 노력하였으며
김정일은 자기가 집권하던 당시 매제인 장성택 세력이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것을 알고있으면서도 그를 이용하여 북한의 경제를 회복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북한주민들의 사상동향에서 김일성이 주석을 할때는 주민들이 좀 괜찮게 살았는데 김정일이 집권하면서 "고난의 행군" , "강행군" 을 한다고 하면서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장성택을 이용한것이다.
경제권을 장악한 장성택은 김정일의 병적증상을 알고 자기 세력을 확보할려고 하였지만 보위부와 보위사령부는 확보하지못한 상태에서 김정은 시대를 맞게 되였다.
김정일도 사망직후에 김정은이 한데 모든권력을 넘겨 주면서 국가안전보위부 와 보위사령부는 가정보다 중요하다는 당부를 남기고 사망하였다고 한다.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숙청은 북한내에서 당연히 있을수 있는 일이다.
[겨레얼통일연대 정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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